무라카미 하루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가본 시립도서관에서 왕창 빌려온 책들은 의외로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류였다. 얼마전에 부탁을 하나 받은 적이 있는데, 어떤 목적을 위해서 수필 몇 개 중 고등학생이 읽을만하면서도 작품성이 떨어지지 않는 작품을 추려야한다면서 수필집 몇 권을 받고 체크되있던 열 작품 정도에서 서너작품을 골라달라는 부탁이었다. 사실 그 때까지 나는 그다지 수필을 열심히 읽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내가 좋아하는 책의 장르는 소설이었다. 활자중독, 이라는 뭔가 중2병틱한 이 말이 좋아서 블로그에도 내걸고 쓰고 있고 약간 잡식성인 경향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자로 되있으면 다 좋다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책을 읽는 스펙트럼이 그런 '진짜 활자중독인 것 같은 사람들'과 일반인 사이 정도의 범위여서 묘하게 오해를 많이 받는 것 같긴 하지만.


여튼,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2권,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에 관한 피해자와 옴진리교 신도였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은 르포집 <언더그라운드> 2권, 그리고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나라 요시토모의 <나라노트>. 다섯 권 모두 크게 분류하자면 논픽션. 아마 위에서 받았던 부탁 때 읽었던 수필들이 워낙 수작이어서 갑자기 수필에 꽂혀있었던 것이리라. 사실은 열 작품 정도의 수필만 읽고 책을 전부 빌려주셨던 분들께 반납해서 그 때 읽었던 수필들을 읽고 싶어서 갔었는데 결국 발견하지 못했고, 소설이나 읽을까 하고 일본문학 쪽을 오가다가 눈에 보여서 뽑기 시작하다보니 어느새 다섯 권이 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사실 에세이라서 뭐라고 쓸 만한 말 조차 별로 없다. 번역이, 작가가 원래 그렇게 쓴 거라서 그렇게 옮긴 것인지 존댓말과 반말이 좀 두서없는 느낌으로 섞여있어서 조금 읽기 불편했다는게 제일 기억에 남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인데, 결정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무언가 영감을 줄 수는 있는데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뭐랄까,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거리낌없이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긴 하고 실제로 이 책도 술술 잘 읽히기는 했지만 뭔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뭐 내가 저번에 읽었던 수필들이 너무 좋아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고(우선 이 수필들은 모두 한국수필이었으니까, 일본수필보다 공감대라거나 이해도가 높아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내 스타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잘 안어울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듯이 아직 빌려온 수필집이 한 권 남았는데... 역시 읽어봐야겠지. 그나저나 수필집들 책 제목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다 참 ㅋㅋㅋ


......


대신 다른 잡지에다 썼거나 또는 별 목적 없이 썼다가 내던져둔 에세이를 벽장에서 한 보따리 꺼내, 쓸 만한 것 여덟 편을 손질해 추가했습니다.

──작가의 말 中

이렇게, 별 목적 없이 에세이를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멋진 사람인 것 같기도 하지만. 하긴 일기도 잘 다듬으면 에세이 한 편이 될 수 있으려나.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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