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마 하지메, <진격의 거인> 1~8

정말 오랜만에 본 만화책. 웹툰은 많이 봐도 기회가 안되서랄까, 요즘 통 만화책을 안봤었는데.. 얼마전에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네이버 인기 검색어 순위에 계속 올라있길래 아니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만화책이길래 그런건가.. 싶어서 한 번 봐보기로 결심. 애니메이션은 조금도 안 봤지만(요즘은 왠지 애니메이션이 잘 안봐지기도 하고) 만화책은 오랜만에 보는 거기도 하고 해서 술술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대충 간간히 만화책 곳곳에 나와있는 설명을 보니 나름 설정도 탄탄하게 잘 짠 것 같아서.. 한창 판타지 소설 쓸 때 설정놀음 하던 때가 기억나기도 했고.


간단히 총평을 내려보자면 재미는 있는데 흐름은 뭔가 내가 기대햇던 방향 밖으로 벗어나고 있다.. 정도. 나는 주인공이 갑자기 거인이 되는 시점에서 조금 묘한 느낌을 받아서.. 그런거 말고 그냥 인간이 거인을 상대하기 위해서 나름 열심히 설정도 잘 짜고 했던데. 어차피 거인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을 기대한 것은 애초에 아니었지만 주인공을 괴물로 변신시켜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낼 줄은 몰랐다고나 할까. 뭐 그렇다고 해서 만화가 재미없다는 건 아니고 재미는 확실하다. 그냥 내가 바라는 대로 스토리 진행이 안되었고 이렇게 됐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정도일 뿐이다. 사실 설정에서 싸우는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었었기 때문이지만.


진격의 거인도 흔하다면 나름 흔한 <대응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세력 VS 그들에 의해 밀려난 인간>의 구도를 취하고 있다. 다만 그런 만화들이 주로 상대방의 세력을 물리치고 다시 본래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그린다면 진격의 거인은 그러한 내용에 <주둔병단>, <헌병단>, <조사병단>을 비롯해 군이나 사람들의 '정치적인 면모'까지 그려내고 있다. 물론 그게 주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내용을 잘 녹여내고 있다는 점은 칭찬할 만 하다. 


물론 자기 목숨을 위해 안전한 길을 택했다가(<헌병단>) 어떤 사건을 겪고 위험한 길을 택하는(<조사병단>) 주변인물 등은 이제 전형적인 클리셰지만, 그러한 점이 진부하지 않다. 오히려 그게 왜 클리셰가 되었는지 잘 알 것 같다고나 할까? 과연 우리라면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재미를 위한 작품에서 무언가 메시지를 억지로 끌어내는 건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에게 반문해도, 내가 과연 조사병단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여기서 조사병단은 단순히 조사병단이라는 조직 하나가 아니라, 인류에게 있어서는 '비난받기를 감수하고 인류에게 있어서(현실에 적용하자면 국가나 민족, 특정 조직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을 대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 편으로 능력있는 자가 자신의 능력을 가장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구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은 꽤나 흥미로웠다. 즉 성적이 높은 자가 최전방이 아닌 최후방 헌병단에 편성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야긴데, 이건 비단 <진격의 거인> 안에서만 나타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개 능력있는 사람은 승진하고 일선의 위험한 일로부터 벗어나 안전하지만 자신의 능률을 100% 살리지 못하는 곳에 편성된다. 사실 이 부분은 이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지도 모른다. 예컨대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전투 능력은 우수하지만 그만큼 후방에서의 역할도 더 잘 수행할 수 있고 여기에 비교우위를 가진다고 하면 적어도 경제학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화 속에서, 그리고 현실의 몇몇 장면에서 우리는 부패와 맞물린 모순을 경험하게 된다. 즉 가장 우수한 자가 최전방에 서지 못한다는 모순이, <헌병단>의 부패처럼 후방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과 결합되는 것이다. 능력이 없는 자는 전방에서 죽고 능력이 있는 자는 계속 퇴보하는, 최악의 구도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어찌됐든 앞으로 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다음 권은 언제 나오나를 기다리게 될 작품인 것 같다. 아직도 작가가 던져만 주고 회수하지 않은 떡밥은 무수하다. 작가가 더이상 떡밥을 던지지 않을리도 없고. 무엇보다 도대체 그 거인은 어디에서 왔고 왜 사람들을 '살육'하는가?(만화에서도 나왔지만 그들에겐 소화기관이 없고, 따라서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인간을 공격한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사실 이 만화의 행방은 이 '살육의 이유'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뜬금없이 배후세력이 나타날 수도 있고. 사실 나는 어떻게 해야 이 거인의 뒤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얼 설정해야 합리적일지도 모르겠고. 왠지 이런 부분은 에반게리온의 사도였지만 에반게리온처럼 거대한 철학메시지를 끌어올 것 같지는 않은데. 작가가 얼마나 뛰어난 역량으로 이 부분들을 풀어나갈지 기대해봐야겠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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