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리(swiri, 1999)

쉬리
Swiri
1999


이야, 정말 오래된 영화를 봤네요. 이렇게 오래됬으리란 생각은 못했고, 그저 제가 어릴 적에 개봉해서 엄청난 열풍을 끌었던 영화라는 기억만 남아있었는데, 1999년 작이면 12년이 된 작품이란 소리. 벌써 그렇게 되어버린 작품인데도, 여전히 보면서 푹 빠져 있었던 영화입니다. 지금 살짝 흥분해있는 상태인데, 정말 장난 아니네요. 이걸 다시 봐야할 정도의 작품일까, 요즘 우리나라 작품들 질이 얼마나 올라왔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정말 대작이에요.꼭한 번은 봐야할 정도로, 장난아니게 대작입니다. 남북 분단, 사랑, 그 어떤 것도 빠짐없이 다 챙겼네요. 이런 수작이 우리나라에서 나왔었군요.

사실 보면서 연기하시는 분들 정말 연기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은 안했어요. 사실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져 있었거든요. 영화가 다 끝나고 나니까, 정말 연기 잘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와.. 과연 이런 기분으로 리뷰를 제대로 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아래부터는 조금 딱딱하지만 편한 반말로 쓸게요. :D

남북 분단의 현실과 사랑의 이질적인 조화

어찌 보면 이런 영화가 탄생해야하는 배경 그 자체가 씁쓸할지도 모른다. 쉬리라는 영화가 메인으로 삼고 있는 소재는 남북 분단이다. 그것도 북한의 급진파와 남한 첩보부간의 충돌이라는, 굉장히 민감한 소재다. 이 영화의 흥행 요인 중 하나는 그런 애국적인 코드였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최초의 제대로 된 블록버스터, 영화다운 영화가 처음으로 태어난 것이다. 엔하위키에 써진 설명처럼, 눈요기에 집중하지 않고 스토리 진행에 치중해 스토리도 굉장히 뛰어났고, 그렇다고 해서 눈이 심심했던 영화도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전투씬이 많았다. 그런 장면들은 하나같이 긴장감이 넘쳤다. 내 눈이 그런걸 잘 못잡아내는 까닭도 있겠지만.

중원과 무영의 대립구도에 주목했던 한국 포스터와 달리 중원과 명현의 애절한 사랑에 주목했던 일본판 포스터


그러고보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남북 분단이라는 차가운 현실, 그리고 급진파의 전쟁 시나리오, 그 사이에서 1년간 꽃피웠고 결국 분단에 짓밟히는 중원과 명현의 사랑이 이질적이지만 더할나위없이 잘 섞여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질적인 만남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더 잔인하게 만든다. 개인의 사랑과 그 것이 짓밟히는 과정은 결국 한 가족이, 한 마을이, 한 사회가 쪼개져 살아가고 있는, 넘을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 외국보다도 더 먼 사이가 되어 서로를 바라보고 있어야만하는 남북의 수많은 사람들의 축소판과 같다. 결국 그것은 비단 그들의 이야기 뿐만은 아닌 것이다.
중원씨와 같이 있었던 지난 일년...그게 내 삶의 전부야.. 그 순간 만큼은 이명현도 이방희도 아닌 그냥 나였어.. 나 이해해달란 말 안할께. 중원씨! 지금 중원씨 너무보고싶어. 꼭 보고싶어..
자신의 연인이 간첩이라는 사실에 대한 복수극이 펼쳐지지 않은 것이나, 결국 자신들의 계획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명현의 인간성은 비인간적인 전쟁 논리 사이에서 아직 살아 숨쉬고 있는 휴머니즘의 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고상한 개념을 끌어올 것 없이, 명현과 중원은 더없이 사랑했고, 그 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밀 수 밖에 없는 사이, 그것은 얼마나 끔찍한 관계인지 모른다.
잠시 어리석은 혼동을 했었죠. 이명현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 결국 돌아온건 자신의 남자를 저격해야되는 이방희란 사실이었죠. 알맹이까지 바꾸는 데는 실패한 셈이죠.
그녀는 단순히 간첩으로서, 남파 요원으로서의 자격을 본다면 철저한 실격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주저함이 쉬리 계획을 실패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방희라는 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이방희는 진짜 자신인 이방희와 가짜인 이명희의 인생을 동시에, 그러나 확실하게 선을 그어 살 것을 강요받았다. 그녀는 둘 모두를 잃지 않기 위해 달려왔었다. 그러나 중원과 만나고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를 차지하고 있던 '이방희'라는 진짜 자신을, 자신의 주도권을 '이명희'라는 가짜에게 침식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중인격같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무엇보다 끔찍한 '혼동'이었을 뿐이다. 그런 그녀는 처음에는 굉장히 차가운 캐릭터로 그려졌다. 물론 타인을 암살하는 것 자체가 차가운 것을 넘어서 잔혹하기 그지없는 캐릭터이지만, 처음 포로(로 보이는 사람)들을 상대로 했던 훈련 따위를 보여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살인 기계'였다. 그 때까지 그녀는 어쩌면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랬던 그녀는 이미 유중원을 만난 순간부터, 인간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작전은 여기서부터 실패하고 있었다.

결국 이뤄질 수 없는 사랑, 그리고 그보다 더 잔인했던 것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눠야만 했던 남북 분단의 현실, 그리고 그보다 한층 더 잔인했던 것은 방아쇠를 당겨야했던 중원의 현실이다. 만약 중원이 먼저 통화를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녀를 막을 수 있었을까. 그녀 속의 주저는 과연 중원을 향한 것이었던가, 계획을 향한 것이었던가. 결국 총을 집어들고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뛰쳐나왔던 그녀 속에 주저함은 살아있었던가, 죽어있었던가. 명현이 죽을 때, 쓰러지기 전, 묘한 끄덕거림과 같은건,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쓰러지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일지라도, 묘한 느낌을 준다.

중원은 그녀를 설명할 때 '히드라'라고 설명한다. 남북분단이 낳은 이 시대의 히드라. 이 영화는 벌써 10년이 넘게 지났고, 지금 현실은 어떤가. 남북 분단은 어떻게 풀어가야할 문제인지,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1999년, 김대중 정권으로 조금씩 햇살이 비쳐오던 한반도와, 지금 이명박 정권에서, 북한의 도발과 남한의 차가운 대응으로 다시 흔들리는 남북의 두 나라, '조선'과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묘한 씁쓸함이 남는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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