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가 필요해

얼마전에, 페이스북에서 그런 글을 봤다. 스페이스 클리어링. "주변을 정리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것. 공간과 상황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정화시키는 것". 지금의 나에게 더없이 필요한 게 이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기는 했는데, 별로 실천한 건 없다. 그 때부터 뭔가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보려고 했고 뭔가 조금이라도 더 정리해보려고 했고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해보려고 했고 조금 더 건설적이 되어보려고 했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걸 돌이켜보려고 했고 그러나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뭐 그런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뒤집을 수 없는건, 어쨌거나 나는 정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업무의 늪에 빠지고 빠지다보니 퇴근하고 나면 적당히 게임이나 하고 시간이나 보내면서 하루 하루를 소비, 아니 낭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또 하루는 가는구나, 이렇게 또 한 주가 가는구나, 이렇게 또 한 달이 가는구나,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까지 그다지 막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 물론 완벽하게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아니겠으나 김두식 교수님이 썼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어디까지나 '계(戒)의 사람'이었다.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성이 풀리고, 뭔가 꼼수를 쓰거나 거기서 튕겨져나가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큰 불안감, 불쾌함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한계에 부딪혔던 것 같다. 그 한계가 바로 내 한 학기 뿐이었던 입대전의 봄학기, 학교생활이었다. 나는 그 때가 아마도 태어나서 가장 자유롭게, 막 살았던 시기였을 것이다(물론 나름 대학원을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학점관리 정도는 했지만). 밤새 술도 마셔보고, 술먹다 뻗어서 아는 선배 집에서 잠도 들어보고. 아마 그런 학기는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간 이후에도 경험해보기 힘들 것이다. 그 때, 그 당시는 너무 즐거웠기에 다시 한 번 그래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나, 왠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만큼 막 살았던 나는 곧 한계에 부딪혔다. 아마 그런 자유로움, 그리고 또 1분이라도 뭔가에 투자해보고 싶었던 내 '계의 사람'으로서의 면모, 뭐 그런게 부딪히기도 했고, 또 글이나 보고 공부나 하다가 갑자기 부딪혔던 대학 생활에 대해 너무 깊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을거다. 인간관계에 큰 부담을 느꼈던 한 학기였기에 더 심했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그 이후에 학교를 떠나고 입대를 하면서 머리는 깔끔하게 지워졌지만... 요즘 다시 그 한계를 느낀다. 아마도 서울에서 다시 대학 사람들을 만난 이후부터... 아마 그 즈음부터 다시 여러가지로 생각이 복잡해졌던 것 같다. 내가 학교 생활을 할 때 느꼈던 가장 큰 불쾌함이었던 "어쩌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나는 그렇게 소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군생활을 하면서 많이 무뎌졌던 감정이 조금은 살아나서이기도 했고, 단조로웠던 생활 패턴에 갑자기 생긴 변화, 업무의 늪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10일을 통째로 받고 나서 갑자기 텅 비어버린 시간 속에서 복잡해졌던 생각들.. 뭐 그런 변화에 공헌했던건 많을거다.

 

그래서 정말로 스페이스 클리어링을 한 번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아마 이 블로그도 그 '클리어링'의 대상에 포함하게 될거다. 나는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다. 기록을 남기는걸 좋아하는 것도 결국 그런 소유욕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내가 기록해서, 내 과거에 대해, 내 옛날에 대해, 내 경험에 대해 무언가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가 글을 쓰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는 차마 지우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떠안고 있었던 수많은 글들이 있다. 그런 글들을 찾고, 또 지워나가고. 내 상황을 정리함과 동시에 이 블로그도 조금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말로 내가 보기 부끄러운 글들은 이미 많이 지워버렸다. 실제로 그래서 블로그에 그다지 성의도 보이지 않고 거의 불펌 블로그 수준이었던 네이버 블로그 초기 시절의 글들은 단 하나도 내 블로그에 남아있지 않다. 그 때 바리바리 싸들고 왔었는데도. 아마 이번에 정리하는 글들은 주로 그런 글을 지우는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어정쩡한 마음가짐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계속 뒤로 미루고 미뤄왔던, 블로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 아마 그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진 내가 글을 쓰고 싶으면 그 글 하나 때문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그러다보니 블로그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젠 그러지 않아야지.

 

뭐 이렇게나 글을 장황하게 쓰긴 했지만, 결론은, 그렇다. 블로그 정리하겠다는거다. 한 번 허세부려보고 싶었던 생각이 절반, 진심이 절반이다. 실제로 내 지금 생활이 내가 어떻게 정리해본다고 정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내 주변을 정리하고 상황을 정리할 필요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또 다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을지는, 겪어봐야 아는 일이겠지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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