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 주사위, 스펙

얼마전에 네이버 웹툰 <다이스>를 몰아서 봤다. 아직 완결까진 한참 남은 것 같고 중간에 갑자기 이능력 배틀물? 이라고 해야하나... 뜬금없는 장르로 넘어가는 것 같아서 아쉬운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소재 자체는 흥미롭다. 다이스. 운명을 바꾸는 주사위. 뭐, 운명을 바꾸는 주사위..같은 거창한 설명은 사실 필요도 없다. 그건 일종의 스탯 찍기, 스펙 올리기다. 단순한 이야기다. 그건 일종의 RPG다.

 

 


 

 

원래 한 게임을 오래 못하는 편이라서, 어릴 땐 이 게임 저 게임을 많이 손댔다. 물론 손만 많이 댔다. 게임을 오래하지 않으니 그렇게 '높은 스펙'을 가진 게임도 별로 없었다. 솔직히 한 게임에 50시간 이상을 투자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어릴 때 그 정도로 열심히 했던 게임은 디아블로2 정도였을까. 그런데 아직도 주사위하면 생각나는 게임이 있다. 메이플스토리.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어릴 때 했던 메이플은 시작할 때 스탯을 주사위 던지기로 정했다. 결국 모두가 원하는 스탯은 똑같았는데, 우연에 한껏 기대고 있는 그런 시스템을 끌어다 썼었다. 사실 다이스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그리고 운명을 바꾸는 주사위니 뭐니 하는 설명을 들었을 때 처음 생각났던 주사위는 메이플 스토리의, 내 기억이 맞다면 주황색이었던, 그 주사위였다. 물론 알고보니 개념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결국은 다이스는 포인트를 모아서 스탯을 찍는다는 참 단순한 시스템이다. 다이스라는 작품 자체는 이미 초능력을 끌어다 쓰고 있고, 뭔가 거대한 흑막(엑스; X)이 있는 것 같지만, 개념 자체는 그렇다. 우리의 생활을 단순화하고 그걸 운영자(엑스) 입맛에 맞는 퀘스트로 바꾸어놓는다. 달성하면 포인트(다이스)를 준다. 그 포인트를 자신이 원하는 곳에 투자해서 더 강해지고, 더 예뻐지고, 어쨌든 더 나아진다. 여지없는 RPG의 스펙쌓기다. 문득 요즘 한창 즐기고 있는 디아블로3가 생각났다. 스펙쌓기가 목표일 뿐인, 뭐 그런 게임.

 

결국 이런 스탯 찍기와 같은거다. 스크린샷은 플레이시간 30시간도 채 되지 않은 글쓴이의 확산악사... 우와 비루해...

 

흔히 말하는 '디피'(DPS; Damage per Second; 초당 가할 수 있는 피해량)와 강인함(체력? 이라고 보면 된다. 체력, 방어도, 속성 저항 따위를 싸그리 합친 것)이 강함의 주요 척도로 통용되는 게임. 다이스는 여러 면에서 이 게임을 닮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RPG를 해본 사람들은 다들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특히나 디아블로3같은 게임이라면.

 

나는 JRPG니 뭐니하는 세세한 분류는 잘 모르지만.. 디아블로3는 스토리를 중시하는 JRPG류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사실 시작이었던 디아블로1이 가장 스토리와 거리가 멀었지만 동시에 가장 목표가 명확했던 게임이었다. 디아블로를 잡아라. 사실 게임이 던져주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확장팩이 나오기 전 모든 디아블로 시리즈의 목표는 디아블로를 잡아라였다(불쌍한 디아블로는 시리즈 때마다 수없이 죽어줬다. 대악마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디아블로2와 디아블로3는 그랬던 디아블로1보다 훨씬 더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고, 세계관을 늘어놓는 게임이 됐다. 사실 그건 디아블로3에 이르러서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디아블로3의 목표는 그런게 아니다. 디아블로3의 최종 목표는 소위 말하는 '졸업템'을 찍는거다. 그걸 위해서 끊임없이 때려잡는거다. 디아블로를 잡아라? 그건 딱 첫 플레이의 목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개발사의 의도를 벗어난 플레이가 아니다. 개발사에서도 그런 플레이어를 위해서 동영상 자동 스킵 기능을 넣어놓는가하면, 통계 중에 잡은 몬스터 수를 제공하기도 한다. 끝도 없이 강해져라. 그런 게임이다.

 

이런 게임을 하는 심리는 간단하다. 강해지고 싶은 심리. 조금은 진부하고 또 설득력도 부족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강해지고 싶고 남들보다 앞서고 싶은 그런 심리를 자극하는 게임이다. RPG는 말 그대로 '롤 플레잉'이다. 그러라고 있는 게임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다이스가 이야기하는건 바로 그런 내용이다. 인생이 롤플레잉이 된다면 어떨까? 내가 투자한만큼, 내가 뭔가를 해내면 그게 확실한 결과를 낳는다면.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달리는게 아니라 단기적인 목표만을 보고 계속 달리면 그 때마다 결과물을 얻을 수가 있다면. 이런 생각을 자주했던건 학교에서였던 것 같다. 특히 재수 때. 모의고사의 연속, 그런데 당장 모의고사 한 번 잘본다고 뭐가 되는게 아니라는 사실은 굉장히 버거웠다.

 

실제로 이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제안하는 방법이 '자신만의 목표 설정'이다. 다이스의 시작도 뭐 비슷하다. 작품에서는 그 원동력으로 '욕망'을 꼽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르긴 했지만. 뭐 요즘의 대학생도 별반 다를 것은 없는 것 같다. 당장은 학점에 도움이 되는 책을 찾아 읽고, 그 학점에 덧붙여 취직에 보탬이 될만한 자격증, 어학점수, 해외연수같은 여러 경력을 쌓아간다. 좋은 말로 표현하자면 커리어고 요즘 부쩍 부정적이 된 말로 표현하자면 '스펙'이다.

 

 


 

 

사실은 뭐 거창하게 썼지만 그냥 설정이 마음에 들어서 글로 써보고 싶었던 것 뿐이다. 글을 하도 오랫동안 안썼더니 글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색해졌다. 그냥 대충 끄적이면서라도 감을 좀 찾고 싶다. 요런 글들은 그 연습 과정에 있다고봐도 무방할 것이다. 은근히 요즘 한창 하고있는 디아블로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 디아블로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좀 더 자주 하게될 것 같다. 그것도 그럴게, 요즘하고 있는 일에서 부대 일을 빼면 태반이 디아블로라서ㅋㅋㅋㅋㅋ

 

흥미로운 작품인데 내가 말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면에서는 <진격의 거인>과 닮았다. <진격의 거인>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줘버렸지만, 다이스는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흥미로운 판타지물 웹툰으로 잘 흘러갈 것 같으니까. 사실 처음에는 내가 생각했던 저런 생각을 근간에 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원동력을 '욕망'으로 꼽으면서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다이스>의 원동력이 욕망이라면 <다이스>라는 시스템 자체가 어떤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조금 보는 관점이 다른 셈이다. 뭐라고 말로 표현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이스>는 그림체도 예쁘고(사실 그림체는 핑크레이디 시절부터 좋아했는데... 작가에게 '핑크레이디'는 흑역사 그 자체라서;) 내용도 흥미롭다. 요즘 부쩍 보는 웹툰이 늘고 있는데 개중에도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다들 한 번쯤 봐보시기를. :)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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