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쓰리와 대학교




#1. 

고쓰리. 언제부턴가 내 고3 시절을 회상할 때 자주 쓰던 말이 됐다. 출처 불명. 인터넷에서도 쓰이는걸 보니 인터넷 어디선가 주워먹은 단어인 모양인데, 어쨌든 저런 정체불명의 단어가(분명 어떤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깨름칙하고 민족 문화를 깨부수는 행위이겠지만) 가지는 미묘한 느낌은 제대로 된 단어가 따라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고3과 고쓰리가 가지는 어감의 차이랄까.


#2.

군대 생활과 고쓰리의 생활에는 묘한 비슷한 점이 있다.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수많은 제약들이다. 생활에 제약이 엄청나게 많다는 거. 그리고(아직 군생활이 끝나지 않아 전자는 잘 모르겠지만) 끝나고 나서 회상하면 재밌었다고 회상된다는 것. 군대 생활은 대개 돌이켜 생각하기도 싫다고들 하는 것 같지만, 나처럼 동원병을 했던 한 선배가 내게 향방 대신 군상근을 가는게 재미는 있을거라고 했던 이유가 어딘가엔 있으리라.. 싶다. 그리고 실제로 내게 고쓰리는 더없이 재밌었던 때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재밌었던 해를 꼽으라면 (절반 뿐이지만) 분명히 대학교에 막 들어왔던 1학기였지만, 그 다음은 여지없이 고쓰리였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혹시? 하며, 이런 생각도 들었다. 왜, 어디선가 주워들은건데, 사람은 자기 방어기제(맞는 표현인가?)로 아픈 추억은 잊어보리고 좋게 기억하려고 한다고들 하는데, 그런걸까 싶기도 하고. 근데 생각해보면 내 재수는 고쓰리보다 100배는 더 힘들었는데, 재수는 왜 이렇게 힘들고 아팠던 기억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정말로 내가 고쓰리를 재밌게 다녔던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그만큼 또 공부를 안했다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게 있어서 고쓰리는 그렇게 아픈 기억은 아니다. 실제로 꽤 재밌게 다녔으리라. 그 때는 그저 이 모든게 끝났으면 했고, 또 내게 한 번더 해보자고 하면 절대 안할 짓이긴 하지만.


#3. 

갑자기 고삼 시절을 되돌이켜보게 되는건, 요즘이 바로 입시철이기 때문...일까. 요즘 우리 학교는 시끄럽다. 오르비에선 서성한 훌리들이 제각각 나타나서 훌리짓을 휘날리고 있고.. 그걸 보면서 답답해하는 나도 그렇지만 우리 학교가 다른 학교보다 못났다거나 지는 학교라거나 하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그 깊숙한 곳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학력에 있어서의 우월감, 나는 이 정도 학교를 다니고 있는 사람이야, 하고 말하고 싶은 느낌. 가끔 나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마인드, 그렇지만 고치기는 쉽지 않은 마인드. 


내가 겨우 이 학교밖에 못다녀, 우리 학교 왜 이래, 하는 학교에 대한 반감과, 나 이 정도 되는 학교 정도는 다니는 사람이야, 하는 학교에 대한 자부심, 그런 애증의 관계. 이상하게 우리 학교는 그런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사랑방같은 곳을 둘러보면 서망대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접한다. 그러면서도 다니는 사람들은 서강대라는 타이틀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들이고(사실 그걸 중요시하니까 서망대니 뭐니 하는 이야기도 나오는 거겠지만). 그러니까, 어차피 오면 어딜 가든 별로 차이없단 이야기는, 적어도 대학 생활 절반이 넘어가기 전에는 옳은 소리가 아닙니다. 뭐,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거다. 그렇다고 해서 오르비처럼 개판이 되는 분위기는 아니다(솔직히 오르비는 도를 넘었다). 어쨌든 대학이란게 우리나라에선(그리고 어느 나라나)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분기점이니까. 나같은 경우야 원서를 조금 낮게 써서 학교를 3개 다 붙었고, 그 중에 하나만 희망대로였고 나머진 안정지원이었어서 별로 고민없이 지금 다니는 학교를 붙자마자 낼름 나머지를 다 등록포기해버렸지만.. 그렇다보니 별로 잘 알아보지도 않고 포기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4.

학교를 다니고 싶은 요즘이다. 한 학기는 정말 즐거웠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학교 생활은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선 안됐는데.. 싶은 행동도 많이 했다. 새내기의 패기였다면 패기였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옳다는 걸 실감했던 한 학기였고(물론 그 때는 그게 무식한 건지도 몰랐지만), 내게 다시 1학기를 보낼 수 있게 해준다면 다르게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한 학기이기도 했지만, 그건 즐거운 한 학기였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행복한 때가 기다린다"는 말은 한 80프로 정도는 사실이었다. 20프로 정도가 사실이 아니었던건 그저 내가 1학기 때 여러가지 멘붕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이고. 그래서, 딱 한 학기 하고, 체험판처럼 끝내고 나온 내 새내기 생활이 아쉽기도 하고, 그것과 상관없이 군생활이 군생활이니만큼 학교로 휘릭 하고 돌아가버리고 싶은 마음이기도 한 것이다.


왠지 학교를 다니던게 한참 오래전의 일인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과연 내가 복학을 하더라도 즐거웠던, 행복했던 1학기만큼 즐거운 학기수가, 여섯 학기든 일곱 학기든 남은 학기동안 과연 한 번이라도 있을까? 싶기도 하고. 얼마전에 내 1학기의 전부였다고 해도 좋을 동아리 활동을 되돌이켜봤는데.. 민망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그랬던 때였다. 내 1학기의 태반을 동아리에 던졌으니 그게 동아리 클럽에 올라온 사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는데... 왠지 민망하고 부끄럽고 내가 왜그랬지 싶은 일이 8할은 되는 것 같아 다 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역시 즐거운 한 학기였구나 하고 생각하니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아, 남은 군대생활과, 또 남은 학교 생활동안, 그런 시기가 1년이라도 다시 있었으면 좋겠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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