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학제 개편 논란을 바라보며

시끌벅적한 서강대를 만들겠다는 총장님의 의지가 투영된 것인지, 올 한해 서강대는 조용할 날이 없다. 학교를 휩쓸었던 각종 논란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번 논란만큼 학교에 치명적인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이건 이전에 한 번 학교를 시끄럽게 했던 서강대 남양주 캠퍼스(학교에서 '광개토 프로젝트'라는 도대체 개연성없는 이름을 붙인 그 프로젝트다) 논란과 이어지는 문제다. 이번엔 서강대가 학제 개편 논란에 휩싸였다. 어째 많이 들어본 논란이다. 다른 학교들에서 이미 몇 번 시끄러웠던 '인문학부 통폐합 논란'. 그리고 동시에 서강대는 이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랑스러웠던, 그런 문제. 드디어, 그게 서강대에서도 터졌다.


다만 한가지 확실하게 해두고 가야할 것은, 이러한 문제가 학교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이는 국제인문학부 56인의 성명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총장님의 의견은 현재의 논란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이 56명의 교수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기초로 성명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반론에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56명의 교수님은 무엇을 위해 그런 성명을 발표했는가? 국제인문학부 교수진이 학교를 논란 속에 빠트리고 무엇을 바란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없는 한, 이러한 반론은 전혀 설득력이 없으며 진정으로 제대로 된 반론을 하고 싶었다면 논리를 갖춘 말로, 충분한 설명으로 대신했었어야했을 것임이 자명하다.


교수진의 성명서에 따르면, 주요 학제 개편안은 다음과 같다.

하나, 현재 3개로 나뉘어져있는 학부를 통폐합한다. (국제인문학부, 사회과학부, 커뮤니케이션학부)

둘, 국제인문학부의 정원을 축소한다.

셋, 기초교양과목을 축소한다.


우선 학교가 이번 논란에 대해 다시 공지한 내용을 참고하건대 현재의 학제 개편이 어떻게든 추진되고 있는 것은 사실으로 보인다. 또한 이 공지 역시 학교가 오랫동안 보여주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이 역시 지적되어야할 내용 중 하나로 보이며 이것은 현재의 유기풍 총장님 하의 학교본부 이전부터 답습되어온 방식이다(물론 그 때 내가 이 학교의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투명성 0%의, 자신들만의 행정을 추진하다가,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이번 사건을 예로 든다면 국제인문학부 교수진의 성명 발표와 같은) 이게 학생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면 처음엔 사실이 아니라고 하다가 나중에 "그 문제는 학생들 그리고 모든 학교 구성원들과 충분히 협의할 것임. 걱정할 것 없음."이라고 말한 뒤 입닦아버리는 방식. 소통을 주장하며 페이스북 계정까지 만들고 저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총장님과는 전혀 맞지 않는 방식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학교가 해당 공지에서 학제 개편의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을 요약하자면, "대학은 항상 변화해야하며 부족한 자원을 적재적소에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대학 본연의 임무인 연구 능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항상 변화해야하는 대학이,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변화하지 않은 덕에 위기에 처했으며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학교가 바로 서강대학교다. 그리고 유기풍 총장님 하의 서강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소위 광개토 프로젝트라는, 남양주 캠퍼스 신축과 함께 여러가지 개편을 추진했고 이번 학제 개편 역시 그러한 것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건대 나는 서강이 과연 "부족한 자원을 적재적소에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고쳐서 얼마나 좋은 학교로 만들 수 있을지에 깊은 회의감을 품을 수 밖에 없다. 현재의 서강은 어떤 학교인가?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경영학부와 경제학부 두 학과를 합쳤을 때 위에 언급된 사회과학부, 인문학부를 합친 것보다 압도적으로 큰 단위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그동안 이토록 기형적인 구조를 만들어온 것은 누구인가? 인문학부 학생인가? 아니면 경영학부 학생인가? 이러한 현실은 학교에서 정원을 조정하면서 경쟁력 확보라는 이름으로 기초학문을 짓밟아오다시피 한 서강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이 '전인교육'과 '예수회 정신'을 주장했던 서강의 현실인 것이다. 실제로 학교의 규모가 그토록 작은 서강대학교에서 경영학과만큼은 다른 학교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학교의 현실이다. 학제 개편만으로 서강이 얼마나 훌륭한 연구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학생들이 직접 느끼고 또 교수들이 직접 느끼는 서강의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다. 이제 소수정예라는 말로 옹호해주기도 지칠 지경이다. 소수정예고 자시고를 떠나서 학교의 교수1인당 학생수 등의 객관적 지표가 현재 서강이 얼마나 척박한지를 보여주며, 이것은 곧 서강이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학생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서강대의 등록금은 결코 싼 편이 아니다. 여러 지표가 말하듯이[각주:1] 학교가 장학금을 평균 이상으로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체감컨대 시설물에 대해 전폭적인 투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교수의 수는 적을 수 있지만 학생수 대비 교수의 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당장에 일본문화학과라는, 교수는 1명뿐이고 시간강사들이 나머지 수업을 뛰고 있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현재 학교의 현실을 정말로 헤쳐나가고 싶다면, 남양주 캠퍼스를 더 뒤로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현재 서강의 자원을 보충하는 것이 우선이다.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겠다, 가 아니라 그 부족한 자원을 부족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당연히 우선시되어야할 문제다. 있는 집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그 잘못을 집의 기둥과도 같은 인문학부에 돌리고, 그러면서 또 새로운 집을 하나 더 짓겠다는 발상을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 학교의 말대로 현재 서강은 자원이 부족하다. 그런데 분명히 다른 학교만큼 학생 1명에게서 등록금을 받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턱없이 부족한 1인당 지표. 뭔가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이러한 부분이지, 국제인문학부를 걸고 넘어진 이번 문제에 뜬금없이 나올 이야기가 아니다.


학부 축소의 문제도 그렇다. 내가 국제인문학부가 아니라서 국제인문학부의 현실은 잘 모르겠지만, 사회과학부만 놓고 본다면 사회과학부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그 정원이 작다. 그렇다고 해서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경영과 경제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자원이 쏠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학교의 경쟁력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학교도 그러고 있으니 이해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우리 학교의 규모를 생각할 때 과잉투자라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 않나 싶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인문학부를 축소하고 사회과학부 및 커뮤니케이션 학부와 통폐합하겠다는 것은 어디에서 나온 발상인지가 먼저 궁금해진다. 


기초교양과목의 축소 같은 경우는 더욱 충격적이다. 그동안 서강이 내걸었던 전인교육은 어디에서, 무엇을 통해 이루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장에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읽기와 쓰기 등 기초교양과목만 해도 그 내용과 구성에 비해 그 규모가 결코 작은 편이 아니다. 시간강사까지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기초교양과목 수업시간 인원 구성은 타이트하기만 하다. 애초에 영어I, 영어II와 같은 어떻게 보면 어학과목인 중핵필수는 20명 안팎으로 한 반을 구성하면서 읽기와 쓰기나 계열별 글쓰기처럼 전인교육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중핵필수는 40명에 가깝게 한 반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부분부터가 과거부터 지적되어왔다(물론 영어I, 영어II의 경우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도 많은 편이라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그런데 지금보다 이러한 수업의 규모를 더 키우고 그 수는 더 줄인다고 한다면 사실상 이러한 과목의 운영은 파행에 가까운 상태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글쓰기센터를 만들었고 무엇을 위해 이러한 과목을 교육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인교육의 메카라던 그 말은 학교 홍부 수단에 지나지 않았었단 말인가?


이번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또다른 이유는 국제인문학부로 대표되는 '인문학'에 대한 학생들의 현실에 굉장히 뼈아팠다는 점이다. 더 넓게 생각해보면 기초학문이라 할 수 있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대충 기억나는대로 끄적여보자면 이런 내용이다. "설마 취직하려고 경영경제같은거 복전하시면서 그런 소리하는 건 아니겠죠? " 이것이, 지금 학교본부를 비롯해 국제인문학부 학제개편에 대해 시큰둥하거나 찬성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논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취직이라는 현실과 인문학의 가치는 같은 선상에 두고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다. 인문학은 인문학이다. 사람은 취직만으로 먹고 살 수 없고(즉 돈으로만 먹고 살 수 없고)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은 그러한 금전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요소와는 완전히 다른 요소로서 존재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이 경영학처럼 실용학문의 위에 서있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선에서 존재하고 따라서 완전히 나누어져서 판단되어야한다. 저 논리는 이런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설마 마 학교 공부 열심히 하셔서 수능 성적 잘 받아놓으시고 현재의 학교 교육을 비판하시는건 아니죠?"


다른 이야기도 비슷하다. 유망 학문에게 그 자리를 비켜줘야한다고 말한 사람이 있던데,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가치는 그 자리를 내어주고 어쩌고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애초에 경영학은 어떻게 이루어진 학문인가?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 행정학, 사회학 등 여러 사회과학에서 필요한 부분을 모아 만들어진 학문이 아닌가? 나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과 같은 학문에게,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 자리를 비켜줘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기초학문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 않나 싶다. 기초학문이 서야 응용학문이 선다. 그건 단순하고도 자명한 이치다.


솔직히 말해보자. 나는 서강대가 조금은 더 기업적인 마인드를 갖추었으면 했다. 내가 1지망했던 학교는 아니었으되 내가 서강이라는 틀에 들어간 순간부터 지금까지 서강 그 자체를 싫어하거나 부끄러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새내기로서 한 학기만을 보내고 군대에 왔다. 그 한 학기동안 나는 서강의 한 사람으로서 즐거웠고 자랑스러웠다. 그랬던 내가 서강에게 기업적인 마인드를 조금은 더 갖추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기업으로 무장한 성균관대, 중앙대, 그리고 자체적으로 기업적 마인드를 충분히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연세대, 고려대와 같은 쟁쟁한 학교들 사이에서 서강이 침체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인식은 학교 본부도 분명히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나는 그 기업적 마인드가 이런 식으로 나오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차라리 그냥 옛날의 서강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사랑방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기업화가 되면, 이런 부분은 양날의 칼이라고. 니가 바라는대로 좋은 면만 기업화가 될 것 같으냐고. 그래, 어쩌면 내 바램일 뿐일지도 모른다. 난 기업화가 아니라 기업적 마인드를 아주 조금만 가져줬으면 했다. 아니, 거창하게 기업적 마인드라고 부를 것도 없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으면 했을 뿐이다. 조금 더 학생의 처우 개선에 나서고, 장학금을 보충하고.. 내가 바랬던건 그런 부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자랑스러워했던 서강은 오히려 학교 측이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 서강이었다. 전인교육의 메카, 공부하는 학교, 학문이 꽃피는 학교. 내가 공부나 학문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그 쪽에 엄청나게 몰두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좋아하고 또 그 가치를 굳게 믿는 사람으로서 그랬다. 그런 서강이 흔들리고 있다.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오래된 서강에서 새로운 서강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 새로운 서강이 과연 어떤 모양을 갖추고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떨쳐낼 수가 없다. 과연 새로운 서강은 어떤 서강일 것인가. 나는 새로운 서강이 인문학과 같은 '소중한 것'을 버리고 취직율이니, 어디 시험 합격율이니 하는 '현실적인 것'에만 몰두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여 혹시나 해서 하는 이야기지만, 이러한 비판 하나 하나에 "이렇게 논란을 만들어서 좋을게 없다"는 둥, "이런 글을 쓰는게 학교 이미지에 안좋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그게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는 굳이 내가 힘들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사실 이 문제, 이 논란이 얼마나 큰 논란인지는 유기풍 총장님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답이 나온다고 본다. 지금까지 그렇게 시끄러운 사건이 여러번 터지는 동안 누구도 유기풍 총장님의 페이스북에 당당하게 입장을 요구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 인문학부 논란에서는 봇물터지듯 올라오는 글들만 봐도, 우리는 지금 서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할 순간에 봉착했음을 알 수 있으리라고 본다.



  1.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당장에 대학알리미가 들어가지지가 않아 자세한 지표를 첨부하지 못한다. [본문으로]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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