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바 가즈키 - <토막난 시체의 밤>

사쿠라바 가즈키라고 하면, 일단 <GO SICK>.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는 <사탕과자 탄환은 궤뚫지 못해> 정도가 될 것 같네요. 적어도 제 머릿속에서는요. <아카쿠치바 전설>이나 <내 남자>에 대한 평가도 좋은 편이고 오히려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그 쪽일지도 모르겠지만, 제 머릿속에서의 임팩트는 오히려 <사탕과자~>나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쪽이 더 큰 것 같습니다(실제로 두 작품의 느낌은 굉장히 비슷했죠). 이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어두움, 굉장히 뿌옇게 그려지는 듯한.. 뭐 그런 느낌을 주는 묘사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것이라, 어느 순간부터 작가 이름만으로도 부담없이 선택할 수 있는, 한 마디로 "믿고 보는" 작가가 되어 있더군요. 물론 고식은 1권까지 밖에 읽지 않았고, 사실상 라이트노벨을 끊어가고 있던 시점이라 먼지만 쌓여가고 있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토막난 시체의 밤>은 앞서 말했던 두 작품과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른 작품입니다. 뭐랄까, 작품의 느낌은 꽤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뭔가 불쾌하고, 뭔가 어둡고, 뭔가 세상의 막장까지 몰리는 듯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흐뿌옇게 그려지는 묘사 역시도 비슷하다고 봐야하지 않을지요. 무엇보다 세 작품을 연결하는 가장 큰 공통점은 안정되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에 있다고 봅니다. 굉장히 불안불안한 느낌이라, 읽는 사람까지 다 초조해지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죠. 이번 작품도 그렇습니다. 사토루와 사바쿠의 심리는 시종일관 불안하고, 안정되지 못하고, 탐욕적이며, 또 충동적이죠. 그런 주인공들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세상이 안정될 리가 없습니다. 이 소설 속의 세계는, 책의 표지처럼 붉거나, 또는 검다는 느낌. 안정되지 못하고,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그런 분위기로 묘사됩니다.


반면 전작들이 하나같이 그런 분위기를 이어나가면서 세속적인 것과 거리를 유지했던 것과 달리 이번 작품은 세속적인 '돈', '빚'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아예 대놓고 '돈의 폭력성'을 언급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허세로 시작했던,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대책없는 수준을 넘어서서 보는 사람이 다 아찔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바쿠가,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다 조립하고 나니 나사가 몇 개 남았다..라는 느낌이 드는 사토루는, 반대로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이죠. 덕분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찾으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고... 또 아니라고 한다면 사쿠라바 가즈키 특유의 느낌(이라고 하기에는 아카쿠치바 전설 같은 작품과는 영 딴판이지만)이 잘 묻어나는 소설으로 읽을 수도 있는, 그런 소설입니다. 


딱 한 권 밖에 안읽어봤지만, 나름 고식같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물론 고식의 캐주얼함에 비하자면 이 이야기는 지나치다 싶으리만큼 잔혹하고 끔찍한 이야기지만, 고식 1권에서처럼 "누가 범인인가?"보다는 "왜 그가 범죄를 저질렀나?"에 주목하고 있는 작품이죠. 이건 또 흔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설명할 때 달라붙는 단어인 '사회파 추리소설'과는 묘하게 느낌이 다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명과 영혼의 경계>의 역자 오근영 씨는 역자후기에서 사회파 추리소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종래의 추리소설이 트릭을 앞세워 탐정놀이의 미로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여 등장한 것이 사회파 추리소설인데 범죄의 사회적 동기와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리얼리즘을 담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그런 소설이라고 해야할지, 어떨지 모르겠네요. 굳이 말하자면 사회파는 아니고요. 트릭, 탐정놀이에 힘쓰는 작품이 아닌 것은 분명하죠. 오히려 르포타주라고 해야할까,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다, 라고 하는 이야기에 가까운 종류죠.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없고(애초에 이 작품은 추리의 주체도 없고).. 기껏해야 독자 개개인이 누가 범인일까 생각하는 정도겠죠. 물론 이 작품은 애초에 그 '범죄'라는 것이 소설의 최후반부에나 드러나고, 이야기의 종국은 또 정작 초반에 밝혀버리니 이야기는 "왜 죽였나?"에 주목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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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가진 폭력성. 옳은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이렇게 거창하게 소설의 틀을 빌릴 필요 없이도,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 돈, 이런 단어들이 그다지 긍정적인 어조로 사용되는 경우는 없어졌습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세력에서는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돌리고 돌려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체제와 결합시켜 설명하곤 하죠. 그렇지만 돈이 가지는 폭력성을 모르는 사람은 사실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드러나는 폭력성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사쿠라바 가즈키가 썼던 두 작품, 그러니까 앞서 말했던 <소녀에게는~>과 <사탕과자~>에서 느껴지는 붕 뜬 느낌, 신비감이라고 하기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미묘한 느낌에 세속적인 돈이라는 단어를 비교적 잘 녹여낸 작품...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역시 뭔가 성에 찬다는 느낌은 또 아닌게 조금은 미묘하군요. 뭐 세속이고 뭐고를 떠나서 소설에서 묘한 이질감이 있었어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그나저나 선정적인 표지는 조금 아쉬웠어요. 책 제목이나 내용에 굉장히 잘 어울리는 표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하다못해 일본어판 표지 정도만 되었어도 가지고 다니면서 읽는 데에 부담은 안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너무 선정적인 표지는... 가지고 다니기에 부담되는게 현실이죠.. ㅠㅠ



이렇게 깔쌈하게 뽑아줬으면 훨씬 더 나았을텐데...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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