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디버, <소녀의 무덤>


소녀의 무덤

A MAIDEN'S GRAVE
제프리 디버 Jeffery Deaver

거장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몰랐네요. 스릴러 쪽에선 꽤 유명한 사람인가본데, 저는 이 책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글 참 잘쓰네요. 훌륭한 작가입니다. <소녀의 무덤> 같은 경우는 책이 꽤 두꺼운 편인데, 앞에서는 루즈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뒤에서는 정신이 없을정도로 빠르게 진행된 덕에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실 이 책에 도전한건 세 번째였고 겨우 완독했어요. 제가 책을 못읽는 편은 아닌데 책 두께도 두껍고 앞쪽이 조금 루즈하다보니 처음 접했던 재수 시즌 때는 결국 놓고 말았어요. 없는 시간 쪼개서 볼 때는 이렇게 두꺼운 책은 조금 그렇잖아요. 제가 책을 한 번 잡으면 길게 보는 스타일이지 또 쪼개서 보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더더욱. 물론 핑계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다른 책에도 관심이 생겨요. 책을 볼 때 작가를 꽤 많이 보는 스타일이라. 물론 <밤의 피크닉> 이후로 읽었던 온다 리쿠가 제 스타일과 조금 거리가 있었듯이 다른 작품은 조금 아닐 수도 있겠지만, 한 번 도전해보고는 싶습니다. 

소설은 참 치밀하고 뭔가 사람 애간장타게 하는 부분이 있는 소설이었는데, 마지막 멜라니의 변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건지 모르겠는 부분도 있어요. 솔직히 이런 저런 해석을 붙이자면 불가능한건 아니지만 역시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론 멜라니라는 캐릭터는 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이고, 소심하기 짝이없었던 작품 초반의 멜라니는 마지막에 핸디와 프리스를 직접 죽여버릴 정도로 적극적이고 강렬한 캐릭터로 급변합니다. 물론 단박에 바뀌는건 아니고 작품 중반에서도 인질을 탈출시키는 등의 과정을 통해 멜라니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그 계기는 분명히, 수잔의 죽음이었을 겁니다.

이 소설에서 유일한 인질의 죽음임에도 아주 크게 다뤄지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수잔의 죽음은 그러나 멜라니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침으로써 인질극의 판도를 사실상 바꿔놨다고 해도 무방할겁니다. 핸디의 인질극은 그가 수잔을 죽이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성공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멜라니의 급변은 없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니, 아마도 없었을테죠. 

다른 한 편으로 인질협상가로 나오는 포터라는 캐릭터에도 집중해볼만한데.. 왠지 미국 드라마나 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스런 캐릭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능력이 있지만, 어떤 사건이 있은 뒤에 굉장히 비관적이거나 염세적으로 변한 중년 아저씨. 포터의 이미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캐릭터입니다. 멜라니와 사랑에(?) 또는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지면서.. 조금은 다른 캐릭터가 되는 것 같지만, 그런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이 포터라는 아저씨는 '정답'입니다. 롤랜드 막스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 깊이 얕은 동정 등에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그는 자신의 지식을 베이스로 한 정석적인 인질협상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은 인질을 다룬 영화 등에서 보기 어려울 정도로 디테일해서 더더욱 관심이 가기도 했구요. 사실 이 소설의 매력포인트는 숨가쁜 인질극, 이라는 몰입감 이상으로 디테일하고 치밀하게(또는 그렇게 느껴지게; ㅋㅋㅋㅋ) 묘사된 협상 과정이라고 봅니다. 

다른 인상깊었던 점이라고 한다면.. 청각장애인들이 나온다는 거? 소설 자체에선 인질이 농아라서 인질극 자체의 한 요소로 크게 작용하고 그것 역시 인상깊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제가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와 지금은 꽤 많이 달라졌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접할 때만해도 청각장애, 수화는 다른 사람 이야기였고 관심도 별로 없었으니까요. 대학에 들어와서, 우연히 친구가 회장을 맡고 있었던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동아리가 수화동아리였고... 저는 수화에 관심이 있어서 동아리에 들어온 것보다(전혀 아닌 것도 아니지만) 동아리에 들어와서 수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편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으니 조금 신기한 기분이기도 했습니다. 

한층 더 작품 밖으로 빠져나가보자면, 표지 이야기를 꼭 한 번 하고 싶어요. 한국판 표지는 매우 강렬한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저 이미지를 가져오다가 본 원서 표지는 밀밭에 노란 버스가 놓여져있는, 작품 그 자체에 대한 묘사와 같은 표지였어요. 개정판 표지로 보이는(14년 2월 예정이라고 알라딘에 뜨던데요) 녀석은 버스는 사라졌지만 분위기 묘사에 치중하고 있는건 확실합니다. 


그에 비해 번역본의 경우 굉장히 강렬한, 소녀의 모습인데.. 처음엔 수잔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끝나고나니 멜라니겠거니하는 생각이 듭니다. 딱히 그런걸 염두에 두지 않는 표지 설정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근데 저 표지의 여자는 누군가요. 뭔가 느낌은 엠마 왓슨 비슷한 느낌도 드는데. 어쨌든 원서보다 표지만큼은 훨씬 예쁘네요. 그렇다고해서 작품 내용과 지나치게 거리가 먼 것 같은 느낌도 들지 않고. 적절한 표지선택이었다고 봐요. 


쨌든 군생활 시작후 처음으로 완독한 소설인데 만족스럽네요. 책 많이 읽는 군생활이 되었으면 합니다. >_<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이미지 맵

    서평/소설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