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카와 히로 - <사랑, 전철>

아리카와 히로라고 한다면... 역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하늘 속>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그녀의 작품 속에서 가장 좋았던 커플링이라고 한다면 아직도 미키와 타카미 조합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비교적 라이트노벨 색채가 강한 작품들(아니 다 라이트노벨이었나?)이었던 데 비해서 이 <사랑, 전철>은 그것보다 더 가벼운 듯 하면서도 제대로 된 소설의 구색을 다 갖춘 이야깁니다. 독특한 구성, 어디에나 있을 법 하면서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 바로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한큐전차 이마즈 선인데.. 저로서는 잘 모르는 영역이라 뭐라고 하기는 어렵겠네요. 한국 철도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데 일본 철도 사정이야 잘 모르겠고.. 어쨌든 저같은 사람이 읽기에는 그냥 짧은 노선 하나에서 일어나는 사소하고 풋풋한 이야기들을 담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제목은 <사랑, 전철>이지만 별로 사랑과는 상관 없잖아? 싶은 이야기들도 있고(물론 절대 다수가 사랑이 주제지만).


사소한 인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이 책의 백미입니다. 전철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지금에야 순천에 와서 별로 탈 일이 없었지만, 서울에서는 (물론 학교다닐 땐 학교 바로 앞에 집이 있었으니 별로 탈 일은 없었지만) 지하철을 자주 탔고.. 특히나 재수할 때는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를 타고 돌았으니 보는 얼굴은 자꾸 보게 되더군요. 저같은 경우는 거의 1년 내내 같은 시간, 같은 코스, 같은 칸에 탔으니까요.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것도 하나의 인연이었을까... 싶기도 하고. 사실 그렇게 수많은 인연과 스쳐지나가는게 서울 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이 소설 속에서는 좀 더 유의미하게 이어지는 거죠.


각각의 이야기도 그렇게 사람들의 인연을 통해 이어집니다. 한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서로 다른 사람, 한 사건을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 그런 인연이 얽히고 얽혀 하행선에 이르러서는 다시 자신들에게까지 돌아옵니다. 인연의 신비로움이랄까, 지금까지 봐온 여러가지 장치들 중에서도 꽤나 마음에 드는 구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이고 가장 풋풋한 이야기였던 게이이치와 미호 이야기가 제일 좋았던 것 같고..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다들 따뜻하고 좋은 이야기였죠.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그 가벼움의 의미가 소위 말하는 '라이트노벨'과는 다르달까. 그냥, 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끝. 이런 느낌. 흐지부지 끝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경쾌하고 기분좋게 읽을 수 있단 소리입니다. 


한편 지금까지 읽어왔던 아리카와 히로의 작품들이 대개 SF적 요소들이 강했던 작품들이라 그런지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애초에 그녀의 작품의 중심에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있긴 했지만, 이 소설에서는 아예 그것만을 무기로 내세웠네요. 그녀의 단편소설집 <고래 남친>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 쪽의 경우 스핀오프라는 느낌이 강했으니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쿠라바 가즈키와는 또 다르게, 그녀도 변하고 있구나.. 싶은 소설이었네요. 뭐, 이렇게 말하기에는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도서관전쟁> 시리즈도 읽어보질 못했지만요.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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