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무라 미즈키, <밤과 노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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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츠지무라 미즈키의 두 번째 책. 사실 이렇게 유명한 작가인줄도 몰랐다. 앞서 읽었던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는 스릴러이긴 스릴러지만 전반적으로 부드러웠던데 비해, <밤과 노는 아이들>은 사람들이 픽픽 죽어나가는 진짜 스릴러다. 그것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우울해질정도로 무겁고 힘든, 그런 이야기. 나름 애착을 가지고 볼만한 캐릭터가 갑자기 죽거나 하는. 물론 니시오 이신처럼 주인공급 캐릭터를 죽이지는 않지만, 주연에 가까운 조연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마지막에 작가가 츠키코를 살린걸로 봐서는 니시오 이신처럼 막가파로 죽일 생각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일반적인 이야기를 조금 비틀어놓는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바았다. 그러니까 뭔가 아주 큰 일이 아닌 비밀을 엄청난 비밀인양 포장하고 포장해놔서, 나중에 열어보니 어 뭐야... 별거 아니네... 이런 느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뭐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이 책의 재미였지만. 어쨌든 이야기 자체는 참 비극적이고, 주인공들 모두가 상처를 끌어안고 있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천재의 숨겨진 상처, 라고 표현하면 너무 뻔한 스토리라인인 것 같긴 하지만, 사실 읽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우선 아사기의 긴박한 심리가 잘 드러나는 것도 매력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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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음침한데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음산하고 긴장된 분위기 때문에 책을 잡고 있는 내내 되게 묘한 불안함이 느껴진다. 이런 비슷한 책으로는 <어나더>가 있었는데, 그건 대놓고 호러물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이쪽은 글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그렇다. 가끔 보면 책을 읽은 내내 그저 읽고있을 뿐인 나까지도 침울해지게 만드는 책이 있는데, 이 책도 비슷한 종류의 책. 물론 내가 멘붕한건 이것과 별로 상관없는 이유였겠지만, 차라리 멘붕하는동안 조금 더 밝은 책을 읽었더라면 멘붕을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생각보다 책이 두꺼워서, 읽다 조금 지친 느낌도 있다. 소설 읽다 지쳐보는건 오랜만인 것 같은데.. 아마 그만큼 흡입력이 없다는 이유보다는, 오랜만에 잡은 소설이 너무 두꺼웠던 탓이 아닐까. 옛날에는 2권짜리 책도 잡은 그 자리에서 쭉 읽어나가서 하루만에 다 끝내기도 했는데.


"하기노 선배. 고즈카 군이 나를 그렇게 불러 주거든. 다른 대학원생들이 아니라 나한테 말을 걸어주는 게 기뻐. 그래, 난 고즈카 군을 좋아해. 너무 좋아서, 지금의 관계를 잃는 것이 무서워.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지금 이대로가 좋아. 어색한 관계가 돼서 얘기도 제대로 못 나누게 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나아." from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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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가장 좋았던 문구는 저거다. 하기노가 죽기 전에, 자신이 고즈카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대목. 뻔한 이야기고 흔한 이야기지만, 공감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조금 장난스럽게들 말하면서 고백해서 실패하고 나면 다시 Go Back할 수 없다고들 하지 않던가. 바로 그런 느낌. 지금의 최소한의 관계마저도 무너질까 겁나서 고백다운 고백조차 할 수가 없는, 그런 짝사랑의 한계. 상대방이 눈치채길 바라면서도 눈치채고 나서는 감당할 자신이 없는, 나약한 마음. 어차피 안될거라는 생각은, 겁쟁이 같은 생각이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하기노의 경우처럼 더이상의 여지가 없다면, 선뜻 말을 꺼낼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상대방에게, 내가 이성다운 이성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거다. 새삼 공감이 가는 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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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은, 정말로 변두리 캐릭터나 마찬가지인 i도 아니고, 세타를 자처한 아사기도 아니었다. 물론 모두의 사랑을 받는 고즈카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사건의 시작과 끝은, 결국 츠키코로 수렴한다. 사실 고즈카와 츠키코의 남매 반전은 정말로 읽다가 "헉.."했었던건데... 현실적으로 가능한건가 싶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할만한 일인데.. 우리나라는 같은 김씨라고 해서 서로 형제일거라고 손쉽게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이 소설에선 아예 츠키코의 성별을 아사기가 몰랐다는 설정인데.. 물론 타인에게 한없이 무관심했던 아사기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참 미묘한 결말. 


결국 생각해보면 자의식의 한계라고나 할까. 아사기는 츠키코와 고즈카를 여지없이 커플로 생각하면서, 츠키코는 항상 자신을 타인으로 대한다는 생각에 결국 마지막에 츠키코를 공격하게 된다. 그렇지만 알고보니 츠키코는 아사기를 좋아했어, 라고 정리되는 순간, 아사기의 생각은 그저 자의식에 갇혀 자기 편한대로 해석했던 것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렸다. 나도, 이런 오류를 범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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