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미 코슌, <배틀로얄>

1. 우리나라에선 영화로 더 유명한 작품, <배틀로얄>. 사실 나도 원작 소설이 있는지도 모른 채로 영화 두 편을 다 봤다. 물론 원작을 따라간건 1편뿐이고 2편부터는 완전히 산으로 갔지만. 2편은 정말 끔찍하게 재밌었고, 1편은 재미는 있었는데 무서웠다. 중학교 때 친구들끼리 모여서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때는 설정 자체가 너무 파격이었고(물론 어찌됐든 소설보다도 더 개연성이 없는 설정이긴 했지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기도 했다. 영화 자체느 굉장히 선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 작품성이나 뭐 그런거 다 떠나서.


2. 소설로 돌아와서, 생각보다 괜찮았고 생각보다 훨씬 평범한 소설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생각했던 것처럼 싸이코패쓰틱한 소설은 아니었다는 이야기. 여전히 설정은 충격적이지만, 영화보다는 훨씬 개연성있는 설정, 개연성있는 결말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뭐 그러고보면 결국 영화에서 표면상의 이유로 내세워지는 '실험'(물론 소설 중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결코 진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소설 상의 실험은 군사적인 통계 정보를 획득하는 목적의 것이었지만, 어쨌든 군사적인 통계랑은 별개로 심리학적으로라면 어느 정도 뽑아낼만한게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프로그램'을, 그것도 정기적으로 계속 돌린다는 것이 제대로 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만한 발상은 아니지만.


이런 프로그램과 더불어, 소설 속 일본의 모습인 '대동아공화국'은 정말 미친나라다. 소설에서는 대놓고 미친 나라로 그려내고 있는데,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되었다면 저런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음. 물론 소설 속에서는 한국이 (어째 남북의 진영이 뒤바뀐 채긴 하지만) 통일된 독립국가로 그려지지만. 소설 속의 대동아공화국은 파시즘, 전체주의의 끝을 달리는 국가다. 소설 속에서 '부분적인 통제는 필요하다'는 투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미 부분적인 통제를 한없이 벗어나있음. 거의 생활 전체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고, 거기에 국민들이 왜 반대하지 않느냐의 이유로 나오는게 '어쩌면 현재 체제에 대해서 나름의 만족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지금 체제를 무너뜨리는건 그것 나름대로 일종의 모험이자 도전이고, 현재 체제에서 다른건 몰라도 경제는 나름대로 잘 굴러가고 있으니, 굳이 그런 모험을 해야겠냐는 이야기다.


여기서 필립스 쉬블리의 <정치학개론>에서 나온 말이 문득 생각났는데, 어쨌든 통계적으로는 경제적 성장을 위해 민주주의를 포기해야한다는 개연성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야기. 어찌되었든 이런 논리는 은근히 독재, 전체주의, 파시즘 등 일련의 흔히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정치체제를 위한 변명으로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이게 다 경제를 위한거다, 라는 것. 소설 속에서는 좀 극단적으로 다루어졌지만 정치학에서 다루어지는 '비합법적인 경로로 세워진 정권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꽤 잘 녹아들어 있었다. 물론 그게 주제가 아니라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면에서 굳이 꼽자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 중 하나는 파시즘에 대한 극렬한 반대다. 한 발 더 나아가자면 그런 파시즘 속에서 '통제의 편안함'을 얻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나) '우매한 대중'에 대한 비판. 물론 소설이 아니라 진짜 나라에서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분명 혁명을 시도하는 누군가가 있겠지만..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에 그런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지도.


3. 뭐 내가 볼 때 작가가 굳이 저런 거대한 메시지를 풀어내려고 이 소설을 쓴 것 같지는 않고. 어디까지나 이 소설은 재미를 위해 쓰여진 소설이라고 보는게 나을 것 같다. 나름 자기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작품에 메시지를 담아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건 사실 요즘이나 옛날이나 일본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봐도 꽤 잘 쓰여진 소설. 사실 교과서스런 말투로 오글오글거리게 하는 번역의 퀄리티, 그리고 번역의 퀄리티를 떠나 미묘하게 붕 떠있는 서술자 시점이 조금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차피 문학성을 따질 작품도 아니고, 소설 자체는 술술 잘 읽히기도 하고 재미도 있다. 영화 내용이 하도 오래전에 본 거라서 확실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어쨌든 영화보다 각 캐릭터들의 깊이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고.


사실 따올만한 문구들이 가끔 몇 개 보였는데.. 곧 이어서 죽이고 죽는 장면이 계속 이어져서 사실 와닿는 문구가 별로 없었다. 묘사 자체는 아주 끔찍한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니까 살짝 속이 메스껍기도 했다. 그래도 그로테스크하다싶은 정도도 아니니 아예 면역이 제로인 사람만 아니면 봐도 무방할 정도였음. 그나마 따온 문구는 아래 정도.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이따금 모든게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가 있어. 왜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있는가? 그런거 먹어봐야 어차피 똥이 될 뿐이지 않은가? 왜 나는 학교에 가서 공부 같은 걸 하는 걸까? 그리고 만약에 커서 성공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는 법. 좋은 옷을 입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돈을 번다고 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다. 완전히 무의미하다. 하긴 말도 안되는 나라에는 그런 무의미함이 잘 어울릴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그러나 말이야, 우리들에겐 즐겁다거나, 기쁘다거나, 그런 감정도 또 있을 거야. 하찮기는 해도 틀림이 없지. 그렇지만 우리들의 허무를 메워줄 수 있는 것은 그런 거 아니겠어? 적어도 나는 그 이외의 답은 몰라. (P.250)

그럴까? 히로키는 고토하키 가요코를 좋아했던 걸까? 어째서 치쿠사 다카코 같은 B반 최고의 미인과 친한데, 어째서 가요코처럼 아주 평범한 여자애를 좋아한 걸까? 

그렇지만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은. 빌리 조엘이 부른 "너무 평범하다고 스스로 생각할 필요 없어요.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대가 좋아." (P.273)


4. 이 작품이나, 우리나라에서 드라마 스페셜을 통해 방영되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나, 그 나름의 설정이나 내내 유지되는 긴장감, 그리고 내세워진 캐릭터성 덕분에, 작가 팬덤이 아니라 작'품' 팬덤을 충부히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배틀로얄 팬카페가 있는 것 같던데. 어쨌든 둘 다 내가 직면하고 싶지는 않은 설정이지만. 사실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비해 배틀로얄은 작품 그 자체로서도(비록 드라마와 소설을 직접 비교할 수 없다고 치더라도) 깊이가 훨씬 얕고, 던지고 있는 메시지 자체도 얕다. 그러고보니 학교 도서관에 화이트 크리스마스 대본집 들어와있길래 그거 빌려볼라 그랬는데 미루고 미루다보니 7월 말을 향해 달리고 있네..


그러고보니 캐릭터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이 소설에서 악역 베스트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미츠코와 기리야마인데, 은근히 소설은 기리야마에게는 앵글을 맞춰주지 않는다. 미츠코에게는 잔뜩 앵글을 맞추지만. 어떤 거냐면, 미츠코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대목은 꽤 많고, 어쨌든 미츠코의 자기 합리화 과정이나 다른 학생들의 살인에 대한 자기 합리화, 또는 그 죽음에 대해서는 꽤 많은 대목을 할애하는데, 기리야마에게는 그런 분량이 거의 전무하다. 결국 기리야마는 그냥 이상한 놈, 선천적으로 이상한 놈이라는 평가만 받고, 굉장히 허무하게 결말을 맞는다. 미친듯한 냉정함과 전투력을 보면 뭔가 뒷설정이 있었을 법도 한데.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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