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케네디, <빅픽처>

빅 픽처 - 10점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밝은세상

1. 첫느낌이라면, 아주 재미있는 건 아닌데 왠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이었음. 작가의 문체는 아주 매력적이라고 평가할만큼 수려한 종류는 아니지만(애초에 번역본에서 그런걸 느끼는게 쉬운 일도 아니고), 적어도 막힘없이 술술 읽게 되는 문체라는 점은 확실하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책을 골라야하는 상황에 부담없이 고를 수 있는 그런 작가인 것 같다. 싫지 않다. 굳이 문장의 수려함에 집착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오히려 이런 작가의 책이 좋다. 문장 따지면서 장황해지고, 읽기 힘든 글보다는, 이런 글이 좋다. 


2. 책의 내용을 말하자면, 상업소설이다. 뭐 딱히 철학적 메시지를 담거나 한 건 아니고, 말 그대로 즐겁게 읽도록(아니, 이 소설의 소재가 즐겁지는 않으니 재밌게 읽도록.. 이라고 해야하나) 만들어진 책이다. 실제로 꽤 두꺼운 책인데 술술 읽혔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깔끔한 문장도 문장이지만, 스토리의 진행이 손을 못떼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두꺼운 책인데도 뒷부분에서 너무 급작스럽게 마무리한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중간 부분을 조금 더 줄이고 결말을 다듬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은 결말이 중요한 책이 아니라 그 과정이 중요한 책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3. 주인공인 '벤 브래드포드'는 결국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만 추려보자면, 우선 불쌍한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범죄자다. 결국 과정 생략하고 요약하자면, 엔딩은 벤 브래드포드가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깨어나서 생각해보면, 그러기에는, 그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이건 냉정하다기보다는 어딘가 비뚤어진 생각인 것 같지만, 왠지 그런 찝찝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뭐랄까, 작가가 결말을 원래 이렇게 정해놓고 쓴건지 어쩐건지는 모르겠지만, "중간 과정 그런건 됐고 주인공은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 중간에 죽으신 분은 나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찝찝함.


4. 그렇지만 소재 자체는 굉장히 흥미롭다. 우리는 어디선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인가. 빅픽처의 주인공 브래드포드는 미국 동부에서 북서부까지 도망쳐와서도, 과거의 자신과 완전한 단절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그건 그가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신이 죽여버린 게리 서머스의 신분을 자신이 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겠지만, 실제로도 그렇게 어디론가 '잠수'타버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좁은 나라에서라면 더더욱. 무엇보다 그 본인은, 벤과 같은 경험을 계속하면서 살지 않을까. 자신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된다는 강박과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수능공부를 하면서 읽었던 영어 지문 중에, 그런 지문이 있었다. 여러가지 통신수단, 소셜 네트워크가 강화되면서 우리는 익명성을 지닌 새로운 '온라인 상의 신분'을 만드는 것은 가능해졌지만, 동시에 그러한 수단들에 의해 현실 속에서 새롭게 신분을 얻는 것, 즉 신분 세탁을 하는 것은 어려워졌다고. 이건 좋은 일이기도 나쁜 일이기도 하겠지만, 조금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도망칠 곳 하나 없는, 그런 느낌. 위에서처럼 비뚤어지게 보자면, 굳이 도망칠 곳을 만들어야할 이유가 없는 인생을 살면 될 일이지만. 뭐, 그런 느낌이다, 실제로 어떠한가와는 상관없이 상황이 그러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답답함.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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