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2000)

메멘토

Memento

2000

크리스토퍼 놀란의 걸작이라고 불리던 메멘토, 이제야 봤습니다. 조금 늦었네요. 생각했던 거보다 반전이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마지막 반전이 소름돋기는 하더라구요. 컬러 화면은 역순으로, 흑백 화면은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데, 시작점과 끝점도 모두 달라서 처음부터 하나 하나 납득하면서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와... 복잡해... 하면서 보고 나서, 영화가 끝나고 머릿속으로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다시 정리해보면 퍼즐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느껴볼 수 있죠.

조금 귀납적이라고나 할까? 결론을 알고(테디가 죽는다) 그 결론을 되짚어 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끊어지는 단위는 대충 주인공인 레너드의 기억이 끊기는 단위니까 한 10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부분 부분 짤라서 가운데 작은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역순으로 쫙 늘어놓았다고 보면 되는데요. 이건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 살인범을 쫓아나가는 레너드의 생각을 따라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뭐 결국은 레너드의 사기극이지만.

기억손실증, 그러니까 어느 시점 이후의 기억을 유지할 수 없는 병을 가진 레너드는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존G를 쫓는다. 이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플롯입니다. 반전을 위해서 영화의 순서를 섞어 놓지 않았다면 꽤 진부한 설정이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포인트는 반전이고 또 그 반전을 위해 역순으로 배치한 부분과 시간순으로 배치한 부분을 섞어 배열한 곳에 있습니다. 어떻게, 왜 테디를 죽이게 되었는가. 라는 큰 문제를 쫓는 과정에서 장면 부분 부분 별로 왜 그가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가, 에 대한 수없는 수수께끼가 쏟아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수수께끼들은 지워지기 이전의 기억에 의해서 (적어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해결됩니다. 작은 반전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큰 문제의 반전을 직면하게 되는, 그런 구조인 거죠.

새미의 이야기, 왜곡된 기억..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을 왜곡시키는 모습에서 여러모로 조금 무서웠네요. 어느새 레너드의 머릿속에서 복수가 모든 것을 장악한 거죠. 거기에는 아마, 존G에 대한 분노보다도 아내를 결국 실질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자신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었을겁니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분노를 풀 곳을 찾은 것이 존G였던 거겠지요. 

한편으로는 기록에 대해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했는데.. 레너드는 기억이 사실(Fact)이 아니라 해석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 라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기록하려고 하는데, 결국 자신이 그 기록에 손을 댐으로써 자신의 사실상의 '기억'이나 마찬기지인 모든 것을 왜곡시켜 버립니다. 기록이라는게 그렇죠. 우리는 항상 기억을 보완하기 위해서 기록을 합니다. 그런데, 예컨대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에서처럼, 어떠한 힘에 의해서(물론 실제로 그럴 일이 일어난 확률은 매우 희박하겠지만) 그 기록들이 왜곡되어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해석으로서의 기억일까요, 아니면 왜곡되었을지도 모르는 기록일까요? 우리는 어떤 것을 신뢰해야하는 걸까요?

한마디> 영화의 구조가 포인트. 소름끼치는 반전. 해석인 기억과 왜곡되었을지도 모르는 기록. 그의 복수는 존G를 향해 있는게 아니라, 어쩌면 스스로를 향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