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 - 구해줘;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소설


※치명적 스포일러 있음

기욤 뮈소는 그동안 자주 들어왔는데, 기회가 닿지 않아서 그동안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었습니다. 어떤 작가인지도 몰랐고, 그러다보니 꼭 읽어야겠다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구해줘>를 읽으면서도 설마하니 중간부터 그렇게 갑자기 환상적인 요소들이 개입할거라고는 읽는 내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죽은자라니? 솔직히 중간까지만 하더라도 줄리에트와 샘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로 흘러가는구나... 싶었어요. 공항에서 체포당하는 순간부터 뭔가 이미 비틀어져있긴 했지만.

수능문학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처럼 '긴밀한 내용구성'이라고는 생각하기는 어렵다... 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대놓고 뒤를 암시하는 부분은 몇 번 있었지만, 사건 자체가 큰 흐름을 가지고 체계있게 나아가는 모습은 아니었어요. 특히 읽다보면 어? 어느새 얘가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래도 소설 자체는 재밌고, 남자인 제가 봐도 샘 갤러웨이는 매력적인 남자이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의사가 정말 그렇게 가난한 직업인가.. 에 대해서는 미국의 분위기를 모르는 저는 넘기도록 하고.. 

주인공 샘과 줄리에트, 그리고 부주인공(?) 마크와 그레이스. 샘과 그레이스에 푹 빠져서 읽었던 소설입니다. 샘과 그레이스 커플이라면 또 매력적인 조합이 하나 나올 수도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마크 루텔리는 '망가진' 사람이지만,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이죠. 이렇게 주인공부터 가장 불쌍한 캐릭터 중 하나인 조디.. 그리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쓰였던 캐릭터이자 역시 불쌍한 캐릭터 중 하나인 안젤라까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가득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앞서 말했지만 역시 초반까지 전 로맨스 소설을 생각하면서 읽고 있었끼 때문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이 소설의 속도감이 굉장합니다. 이야기가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리면서 사건 전개도 빨라지고, 작가의 문체가 굉장히 흡입력 있습니다. 이쯤되면 이미 '영화'에 가까운 소설입니다. 다 읽고나서도 실제로 재밌었다,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기도 하구요. 샘의 눈에서 보는 파트가 많은 편인데 그의 눈에 그려지는 그레이스가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자꾸 변해가는 것도 재밌습니다. 결국 그레이스는 자신에게도, 샘에게도 좋은 선택을 한 셈이 되지만, 과연 그래도 괜찮은 걸까요? 그리고 애초에 이 소설이 전제로 깔고 있는 사후세계란 도대체 무엇인걸까요?

작가가 직접적으로 그레이스의 입을 빌려 사후세계에 대해 논하는 부분이 있는데, 읽으면서 조금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레이스는 자기에게 죽은 10년은 없는 기억과도 같다, 라고 말하지만, 그 뒤에 덧붙이면서 알려지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뭐 그런 느낌의 말을 합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나요, 그레이스?"
"그 후라니요?"
……(중략)……
"그 세계에서 보낸 그 10년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럼 죽음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인지하지도 못하는 거대한 블랙홀인가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나에게 그 10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건 그 세계에 아무것도 없어서도 아니고, 내가 거기에 없었기 때문도 아니에요. 난, 죽음의 사자로 지상에 보내졌지만 죽음의 신비만큼은 온전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살아 있을 때, 사후에 어떻게 될지 결코 알 수 없어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난 단지 인간이 그저 우연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요."


저기서 말하는 '10년'이란, 그레이스가 죽어있던 10년을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샘은 소설 초반엔 사후세계에 관해 전혀 믿지 않다가, 후반에서 그레이스와의 사건을 겪으면서 조금씩 인정해가는 모습을 보이죠. 그레이스는 자기 자신을 '죽음의 사자'로 소개하니까요. 그런데 저 서술이 굉장히 미묘한게, 10년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나 마찬가지이면서, 동시에 거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고 신비가 온전하게 유지되어야한다.. 라고 얼렁뚱땅 넘어간다는 느낌이 강하죠. 


사실 소설은 떡밥은 잔뜩 던져두고 회수하지 않은 채 사건 전개만 딱 끝내버려서, 저런 문제가 하나도 해결이 안되어있습니다. 예컨대 위의 사후 세계 문제도 그렇지만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자꾸 언급되는 '왜 그들이 그녀를 보냈는지'. 샘이 그녀를 죽인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들'(정체도 모르지만!)이 왜 그녀를 보냈는지에 대해서 대답이 되지는 않잖아요. 뭔가 2% 부족한 전개였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전 이렇게 떡밥만 던지고 내빼는 소설들이 싫지 말입니다(...)


결론 짓자면 킬링타임용으로 참 좋은 소설.. 깊이보단 재미입니다. 확실하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 내가 이걸 왜 읽었지! 할 정도는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이 순수문학파만 아니라면(...)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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