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카와 히로 - <바다밑>, 보이밋걸 vs 심리물

#2012-12
Boy Meets Girl vs. 심리물
아리카와 히로, <바다밑>

   우선 시리즈인지는 모르겠지만, 책 자체는 <하늘속>과 쏙 닮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내용은 차이가 꽤 크죠 .보이밋걸의 느낌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역시 이번에는 괴수물에 한 발짝, 논란이 되곤 하는 '자위대 시리즈'에 또 한 발짝, 심리물에 한 발짝씩 나아가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항상 괴수물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와서 다른 곳으로 새는 것 같은데, <하늘속>이 보이밋걸로 새버린 작품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바다밑>은 심리물로 새버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먼저 평가해보자면, 어디까지나 제 취향은 하늘속 쪽이죠. 물론 심리물보다 보이밋걸을 좋아하기 때문이겠습니다만.

   이전 작품인 하늘속과 달리, 기동대-자위대-미군에 이르는 일본의 '군사 세력'들간의 미묘한 분위기가 잔뜩 드러나는 소설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 한정해서(다른 작품이라고는 하늘 속 밖에 안읽어봤으니까요;;)라면 작가는 굉장히 일본 군국주의에 가까운 성향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늘속>까지는 자위대가 나오고 뭐가 나오고간에 재밌게 볼 수 있지만, <바다밑>에서는 그런 느낌이 굉장히 농밀해져서 쉽게 넘길 수가 없습니다. 바다밑에 오면서 전투 장면도 굉장히 늘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영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를 살짝 오버했다고 볼 수 있겠죠. 아, 참고로 자위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기동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심리물이라는 건, 후유하라-나츠키로 이루어지는 잠수함 콤비, 케이스케 일파, 노조미 일파로 이루어진 삼각 구도 이야기입니다. 잠수함 내에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레갈리스와 싸우는 육지 쪽 이야기와 함께 이 이야기의 큰 축 중 하나입니다. 철없는 마마보이일 뿐인 케이스케와, 사실 잠수함에 있던 아이들 중 가장 '강했던' 노조미의 복잡 미묘한 관계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죠. 결국 케이스케가 노조미를 좋아했던 것이라니, 어쩌다 전개가 그렇게 되어버린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물론 소설을 보는 내내 나츠키-노조미 커플링을 응원했던 것도 있지만.. 심리물의 중심은 사실상 노조미라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혼자만이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노조미의 개인적인 문제, 그리고 케이스케 일파와 부딪히는 문제, 나츠키와의 문제까지.. 사실상 잠수함 안에서의 주인공은 노조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그런 노조미이니만큼 이야기 도중 '성장'을 맞이하는데, 그 성장이 영 어정쩡한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잠수함이라는 큰 틀 안에서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고 했던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또는, 많은 것을 다루면서 분량 조절에 철저하게 실패한 것 같다고나 할까.

   육지 쪽의 이야기는 잠수함 쪽의 이야기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잠수함이지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쪽은 육지 쪽이거든요. 그 말은, 결국 레갈리스와 죽고 죽이는 싸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소리입니다. 백경에 의해 공격을 받는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있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전투장면을 거의 넣지 않았던 <하늘 속>과 달리 이 쪽은 전투를 거의 생략없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묘사의 수위도 <하늘 속>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편이죠. 이 쪽에서야 앞서 말했듯이 미군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상황은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 겁니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확실한건, 일선과 '수뇌부'의 판단은 항상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라는 점이죠. 내 일도 아닌데 무척 짜증납니다.

   경찰 쪽의 인물들도 재밌는 인물들입니다. 카라스마, 아카시 경부, 이후에 합류하게 되는 세리자와까지 모두요. 그러고보면 (여느 소설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하늘 속>도 그렇고 도대체가 '평범한 인물'들은 다 어디에다 삶아먹고 이렇게 톡톡튀는 인물들이 현장을 지배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도 나츠키와 노조미를 통해서 보이밋걸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만들어두고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그 점만큼은 실망시키지 않지요. 그렇지만 <하늘속>에서처럼 풋풋한 보이밋걸은 아닙니다. 한 쪽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보이밋걸이니 만큼,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겠죠. 물론 결말은 훈훈하게 끝났습니다. 아, 이렇게 하는 걳보다 차라리 고백을 하고 한 쪽에서 받는 구도로 갔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안드는 것도 아니죠.

P.S.)
사실 상부와 일선의 문제라거나, 미군을 깐다거나하는 여러가지 구도는 진부하기까지 한 요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재미는 있죠.

단문평: 저도 개인적으로는 바다밑<하늘속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늘속 보다는 괴수물에 더 가까운 장르. 다만, 자위대니 미군이 어쩌니하는 부분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실지도. ★★★★(8)

저에 대해서는 잊어주세요.

잊으라는게 이런 뜻이었다면,
나츠키는 노조미에게 경례로 답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안내해드릴 나츠키 야마토 이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노조미가 안심한 듯이 웃었다.
부탁이니까 그렇게 웃지 마. 변명을 전부 빼아겨서 이제 도망칠 곳이 없어.
그냥 예쁘다는 생각만 하게 되잖아.
"발 밑을 조심하세요."
트랩 위에서 손을 내밀자 노조미는 옛날처럼 조심스럽게 손을 맡겼다.
가냘픈 손의 감촉은 역시 옛날과 변함이 없다.
옛날에는 어떻게 아무렇게나 잡을 수가 있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 PP.458~459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이미지 맵

    서평/소설 다른 글

    댓글 2

      • 두 작품 다 마음에 드셨다면 다음에는 단편집인 '고래 남친'을 읽으셔야겠네요-. 물론 짤막한 후일담이 세 편 나오는 것일 뿐이지만, 저는 그 쪽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요즘.. 소설책을 안 읽고 있네요.. 사놓고 읽지 않는책이 있으니.. 자연히 서점에도 안가게 되고...ㅠㅠㅠ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