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지역감정은 부활되는가

 오랫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꿍꿍 뭉쳐놨던 포스트를 써볼까 한다. 전라디언, 홍어, 기타 여러가지 말들. 모두 전라도를 공격하는 말이고, 전라도 사람들은 듣자마자 속에서 열이 끓는 말들이다. 전라도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 무엇일까. 나같이 전라도에서 자라난 고등학생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지역감정이라는건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남이 있다고 해서 우리도 있어도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전라도를 공격하는 습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실 그 뿌리를 위로 거슬러 올라가며 찾아가다보면 거기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몇가지 사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주로 서울에 살거나 살다온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듣는 좋지 못한 이야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무개 집주인이 전세금을띠묵었는데 전라도 사람이라 카더만' 이라든가, '아무개네 가게 경리직원이 돈을 빼돌리다가 들켰는데 전라도 어디 여자라 카더라' 는 식의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화재로 오르면, 사실 여부나 그런 못된 짓을 한 '바로 그 사람'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만 부각된다.

그래도 무슨 구체적인 사건을 근거로 말하면 좀 나은 편이다. 너도 나도 맞장구를 치다 보면 '전라도 사람은 배신을 잘하기 때문에아무리 충성 하는 것처럼 보여도 조심해야 한다' 거나 '군부대 철조망이 누구 때문에 생겼나' 하느 따위의 일반적 이고 추상적인주의 주장까지 거침없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유시민, <문제는 '지역감정'이 아니라 '전라도 혐오증'>中
(유시민씨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

 사실 나는 이게 얼마나 근거있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전라도에서 살아온 내가 무엇을 알 수 있껬는가. 설마하니 전라도 사람들이 이야기하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리도 없고, 기본적으로 저건 꽤나 오래된 세대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하다. 어느새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수의 전라도 사람을 전라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굉장히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전라도 사람들은 근·현대사에서 항상 약자였다. 그들은 항상 먼저 들고 있어섰다. 어떠한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도 빈번했고, 총탄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저항'했다. 그렇게해서 얻은 말은 반골이라는 말이었다. 적어도 그 사건의 내막을 기본적으로 아는, 하다못해 교과서에 짤막하게 반페이지 분량으로 서술된 것만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마 광주를, 전라도를 욕할 수 없다. 그 역사 하나로 전라도 사람들을 다 덮어주려는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그리 해왔던 역사는 그 역사 하나라고 폄하될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며(어쩌면 그 역사 하나로 전라도 사람들을 다 덮어줄 수 있는 것이 될지도 모를 정도로 그 역사의 무게는 무겁다), 동시에 지금 전라도 사람들이 받고 있는건 어떠한 잘못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그저 불평등한 대우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다.

 사실 지역감정은 식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렇게 큰 관심을 쏟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게 아닌 것 같다. 그것을 바꾸어 버린 것은 인터넷일까, 아니면 새로운 문화일까. 아마도 인터넷 문화라고 하는, 그 매체의 익명성과 신속성, 그리고 디씨인사이드 등 여러가지 커뮤니티를 통해 만들어지는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전라도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다시 한 번 차별받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조금만 질 떨어지는 부분으로 들어가더라도(나는 디씨인사이드의 일부 갤러리에 대해서 '조금만'이라는 말을 뗄 의향도 있다) 전라도 사람들은 기차게 까인다.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들에게 역사는 중요하지 않다. 막말을 내뱉는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문제는 그것의 발단이 지역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일부 조직에서는 사람을 이렇게 분류한다. 서울사람, 지방사람, 호남사람. 그것은 얼마나 끔찍한 분류란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이 여기서 태어나고 싶어요라고 해서 그곳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그 지역에 문제가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호남에 반골기질이 있다는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 역사는 한없이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사에서, 근대사에서, 그리고 한국사 그 자체에서 호남은 여러가지 이유로 이러한 봉기의 중심지가 되곤 했다. 역사에 관해서 그렇게 해박한 것은 아니나 아마 거기에느 중앙정부와 거리가 멀다는 것, 그리고 지역민으로서의 기질 모두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사람들이 비난받아야하는 이유는 없다. 통치자가 그들을 멀리할 수는 있을지언정 다른 지역 사람들이 호남을 짓밟아야할 이유도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 말 그대로 그것은 지역감정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지역감정이 아니라 타인을 까내릴 소재일 뿐이다. 그들이 학교 교육을 받았다면, 이 쪽 사람들이 얼마나 큰 아픔을 겪었는지에 대해 1할조차도 제대로 서술하지 못하고 있는 딱딱한 몇 줄의 설명으로 쓰여진 교과서라도 읽어봤다면 그들은 그 말을 절대 입에 담을 수 없다. 아니, 담아서는 안된다. 시대는 바뀌었다. 5월 18일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은 이제 '폭도'가 아니라 '민주투사'다. 5월 18일부터 이어진 시민들의 봉기와 공수부대의 파견, 그리고 발포, 광주 민중 학살, 끔찍한 진압 등의 일련의 사건은 더이상 5.18 광주사태나 광주반란이 아닌 '광주 민주화 운동'이며 민주화 항쟁이다. 시대는 바뀌었다. 지금 10대들은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이 반란이었다거나, 북한의 공작이었다는 주입식 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그런 그들이 입에 담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 것일까. 친일파, 민주항쟁, 그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우리나라는 너무 많이 안고 있다.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피해자는 억압당한다. 가해자는 권력을 획득했고 그 권력을 빼앗기지 않는다. 가해자는 자신의 지위를 굳건히 하며 자신이 저지른 것을 덮어버릴 힘을 소유하고 있다. 피해자는 자신이 입은 피해를 증명할 그 어떠한 힘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 선진국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 평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진국의 정의에서 중요한 부분이 확실히 어긋난 것이다.

 우리 나라는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적어도 이 상태로 안주하는 한은. 우리나라는 아직 증상이 드러나지 않은 암세포같은 요소를 온 몸에 가득 안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 속에서 그저 경제발전에 힘쓰며 발전해왔다. 한강의 기적, 전후 60년만에 지금과 같은 지위에 오른 것은 대단한 일이고, 나는 60년간의 발전의 과실만을 맛본 93년생의 어린 학생일 뿐이지만, 그렇게 해서 부유한 국가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은 당연하다. 그건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이 가해자와 피해자, 강자와 약자의 싸움이 계속된다면 우리 앞에 놓여있는 미래는 하향선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덧붙여 나는 이 지역감정을 단순히 호남과 영남, 전라도와 타지역 간의 정도로 끝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수많은 말들, 나는 그 말들을 장난으로라도 가볍게 입에 담는 이들을, 적어도 그들 앞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해내지는 못하더라도 경멸하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건 장난이라고 할 수 있는 무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만 더 알아주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우리가 나아가야하는 것은 그저 '지역화합합시다'라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수많은 사건, 수많은 역사, 수많은 피의 결과로 굳어져버린 지금의 현실은 그렇게 쉽게 흔들 수 없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를 타고, 그저 장난으로, 또는 진심으로 던져지는 수많은 말들은 오늘도 전라도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 한 획을 더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자료
-유시민, <문제는 '지역감정'이 아니라 '전라도 혐오증'> (게재되어있던 원자료 링크가 깨졌네요)
-이닝, <야구팬이여, 먼저 파시즘에 대항하라> 링크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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