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인간 관계 복제의 결과

트위터는 수많은 SNS 서비스들 사이에서 우리나라에서 대성공을 거둔 거의 유일한 서비스입니다. 페이스북을 비롯해 여러가지 외국계 서비스가 미투데이, 싸이월드같은 토종 SNS에게 그 시장을 빼앗기는 동안 트위터는 그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시장을 만들어나갔습니다. 결국 SNS를 새로 정의하면서 140자의 의사소통 공간을 새로이 만들어냈습니다. 이건 분명히 트위터의 순기능입니다. 트위터는 많은 것을 해냈고, 많은 것의 가능성을 열어줬습니다. 1:1 문의, 게시판, 전화, 메일 등 지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단독적으로 이루어지던 기업-소비자간 커뮤니케이션을 더 공개적으로, 더 능동적으로, 더 친근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트위터는 메신저, 챗, 기타 SNS 등을 한데 모아서 장점을 꽤나 잘 뽑아낸 것 같습니다. 트위터는 의사소통의 도구로서도 정보전달의 도구로서도 뛰어납니다. 그 자체는 뛰어날게 없지만, 트위터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죠. 트위터라고 하는 서비스는 뭐랄까 엄청나게 대단한 요소들이 모인 것은 아닙니다. RT부터 모든 문화를 사용자들이 직접 창조해냈습니다. 트위터에서 본질적으로 시스템상 구현된 것은 Follow 관계와 도중에 만들어진 공식 RT기능, 그리고 TL과 리스트 정도죠.

그런데 트위터가 태생적으로 안고 태어난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시스템상 구현된게 저 정도인데 저 자체에 결함이 있기도 어렵겠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트위터의 문제는 어쩌면 너무나도 잘 복제되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트위터의 본질인 SNS가 인간관계를 사이버 상으로 복제해왔다는 겁니다. 이는 비단 트위터만의 문제가 아니죠. SNS 대부분이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메신저가 (물론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 인터넷으로 만났든 뭐로 만났든 기존에 알던 사람간의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기능을 해냈다고 한다면 트위터는 순전히 그 플랫폼 안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귀고 친해지는 구조죠. 결국 인간관계의 본질을 담아내지는 못했을지언정 과정만큼은 그대로 담아낸 셈입니다.

결국 그 과정에서 싸움을 유발하게 되구요. 기본적으로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인간관계는 어느 한계선 이상으로 확대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고, 대면접촉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죠. 뿐만 아니라 실제 인맥과는 달리 맺고 끊는게 상당히 냉정하고, 무엇보다 손쉽게 사라지고 변장할 수도 있습니다.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일반화되기는 어려운 이야기지만(분명 친해지게 되는 사람들은 있죠), 수많은 인터넷 인맥관계가 그렇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어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묘하죠. 친해지긴 어렵고 깨지긴 쉽습니다. 쉽게 금이가는데 그 금을 다시 매우고 붙이는건 오래걸립니다. 그런 인간관계가 그대로 적용되어버린 것, 그게 트위터의 가장 큰 문제점이겠죠.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고슴도치의 딜레마[각주:1]입니다. 친해지면 결국 상처받게되는 거거든요. 그렇게 상처받는 대가로 쓸쓸함을 치워나가는게 인간관계이기도 하구요. 에라이, 좀 씁쓸해져서 쓴 글입니다. 하하.


  1. 고슴도치 딜레마란 독일의 철학자 아더 쇼펜하우어가 쓴 우화에서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몸을 기대어 서로 온기를 나누던 두 마리의 고슴도치가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침에 찔리고 그렇다고 서로 너무 떨어져 있으면 추운 딜레마에 빠진다는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via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본문으로]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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