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작가님의 소설은 워낙에 좋아하는 터라, 항상 그 뜻을 100% 이해는 못하더라도 찾아 읽고 있었는데, 입대 언저리에는 정신이 없어서 이 책이 나온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겨우 완독. <야만적인 앨리스씨>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엘리시어-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그의 계모, 소설 속에서 씨발년이라고 묘사되는 사람을 포함해서)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엘리시어의 불우한 성장담이고, '씨발년'에 대한 투쟁입니다. 소설의 주된 흐름은 '씨발년'과 '엘리시어'의 투쟁이고, 그 가운데 '엘리시어'가 겪는 조금은 비틀린 성장담이 드러납니다.


이번 소설도 황정은 작가님 특유의 색깔이 잔뜩 묻어난다고 생각하는데, 대표적으로 환상적 요소와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는, 묘하게 뿌연, 그런 서술입니다. 덕분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고, 또 이 짧은 책(두께가 200쪽이 채 되지 않습니다)을 읽는데 하루를 통째로 바쳐도 부족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황정은 작가님 특유의 면모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저 암담하고 우울했던 엘리시어의 성장담일 뿐인 겁니다, 이 책은. 왜냐면, 이 책은 결론까지 그런 성장 환경에 대한 해결책 같은걸 내주지 않거든요. 담담하게 그냥 써내려갔다고 한다면,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이랬다고 합니다. 안타깝죠?"하는 글이 되고 말았을 겁니다.


이번 소설은 어떻게 보면 황정은 작가님의 기교가 잔뜩 묻어나기도 했고.. 갑자기 터지는 섹드립에 터지기도 했고. 뭐 그랬던 것 같아요. 황정은 작가님의 글에 비해 제 글읽는 솜씨가 별로 늘지 않아서인지 매번 신간이 나올 때마다 점점 읽기 벅차지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요. 아무래도 좀 그밯게 읽으려고 하는 성격이 거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편 동생과 엘리시어가 이야기하는 구조를 통해 진전되는 부분이 많은데, 꽤 매력적인 방식이고 또8 동시에 황정은 작가님이 그동안 따옴표를 표시하지 않는 것과 함께 계속 써오신 방법이기도 하다. 보통 이런 대화를 통한 구성은 캐릭터에 대한 친밀도를 높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인지 이 소설 속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왜였을까.


어찌됐든 황정은 작가님의 글을 워낙에 좋아하는 터라 내가 좋아할 법한 문장이 곳곳에 많아서 더 좋았다.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그래 그거. 가엾을 정도로 왕따를 당하다가 감투를 쓰고 나니 사랑받게 되었다는 얘기.

그런 얘기냐.

남들하고 다르다고 놀림을 당하고 외톨이로 지냈잖아. 그러다가 싼타한테 뽑힌 거잖아. 싼타의 썰매에 묶여 한자리 차지하게 된 거지. 그러고 나니 사랑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아니야? 루돌프 코는 그전에도 빨갰는데 이제 그 코가 뭔가 쓸모있다는 것을 보여주니까, 비로소 사랑받는 빨간 코가 되었다는 거지. 게다가 길이 길이 기억되기까지. 치사한 노래다.

-P.22


비가 내려 좋다. 이렇게 비가 올 때 이 방은 안전하게 고립된다. 바깥이 비로 촘촘하게 닫혀 있으므로 누구도 무엇도 이 방에 접근할 수 없다.

-P.26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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