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 개론

*이건 에세이틱한 글을 위장한 신세한탄..글이라고 하기엔 이미 답을 낸 문제지만 어쨌든 그런 암울암울한 글.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인간 관계 개론>이라는 과목이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 내가 한창 정치학에 빠져가고 있던 즈음, 그러니까 정치학 개론 수업 중반이면서 인간 관계로 허덕이던, 내 이번 1학기 5월 꺾어질 즈음이었을거다. 갑자기 이렇게 감성팔이 글을 쓰는건 딱히 새벽이라서..일 수도 있고 물론,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문득 접했던 글이 내가 몇 달간 1학기를 보내면서 겪었던 아픔과 비슷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내가 낸 답은, 포기하지 말고, 신경쓰지 말고, 조금은 나 편한대로 살면 된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신경쓰면 신경쓸 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단 이야기다.


사실 내 1학기에 겪었던 아픔을 한창 멘붕이 심하던 종강 직후에 즈음해서 한 번 일기에는 줄글로 정리해서 쭉 써내려갔던 적이 있는데, 간단히 말해서 그 대부분의 아픔, 대부분의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너무나도 자신감이 없는 상태로 대학에 들어왔다. 대개 재수 때는 자신감을 얻어서 나간다고들 하는데 나는 반대였다. 원래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재수를 하면서 자신감을 완전히 꺾인 상태로 대학에 들어왔고(이건 입시 결과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싶은 결과였다. 사실 대학에 들어온 정도는 아주 만족은 아니더라도 꽤 만족스럽고), 그런 상태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그걸 발전시켜나가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섹션 부적응자였다.


이것과 관련해서 글을 쓰려고 했던 것도 있는데, 그냥 묶어서 글 하나로 다루자면, 나는 기본적으로 섹션 문화에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 단과대 한해 신입생은 100명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우리 때 신입생은 얼추 120명 조금 더 되는 숫자였고, 섹션당 40명 조금 넘게 해서 3개 섹션으로 배정됐었다. 나는 1차 신환회는 아예 참석도 안했고, 2차 신환회는 참석은 했지만 별로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그랬다. 기본적으로 나는 새로운 사람과 만나 친해지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는 스타일이었고, 이건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쨌든 이 문제로 2월을 끙끙 앓으면서 보냈고, 결국 3월 개강 이후에 섹션을 포기하겠다는 결론을 냈다. 지금에 와서도, 아니, 오히려 지금이라서 더, 섹션 사람들과는 마주치면 서로 어색한(또는 적어도 나 혼자는 어색한) 관계. 쉽게 말하자면 '아싸'였다. 친해지는데 미숙하고 여러모로 부딪히다보니 섹션처럼 40명을 자유방목하는 분위기보다는 규모는 훨씬 작아도, 아니 작아서 더 뭔가 소담소담한 느낌이었던 동아리를 택했다. 그건 아마 내가 1학기에 들어와서 한 선택 중에 가장 멋진, 그리고 결정적인 선택이었을거다. 아마 동아리를 선택하지 않고 어떻게든 섹션에 매달렸다면 지금쯤 반수를 하겠다며 재수학원을 다시 다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가치의 문제에서도 그랬다. 기본적으로 내가 가치고 있는 가치는, 그다지 섹션과 부합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일단은 개인주의만큼이나 그 대응되는 의미로서 전체를 중요시하긴 하지만(그렇다고 해서 물론 전체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섹션처럼 마치 빠지는 것을 죄악시하는 듯한 문화 자체에 미묘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아마 우리 섹션 뿐만은 아니었을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집단이든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까. 솔직히 봐도 우리 섹션 사람들, 사람들은 너무 좋다. 내가 그 분위기에, 섹션 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쨌든 그렇게 섹션을 밀어냈다.


그렇게 들어온 동아리였다. 내겐 너무 소중한 관계였고, 그냥 잉여롭게 시간을 보내더라도 꿏꿏이 동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솔직히 툭 까놓고 말해서 동아리가 너무 좋아서 들어온 것보다 섹션에서 도망쳐온 거였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동아리 그 자체가 너무 소중해졌다. 순서는 그렇게다. 동아리에 처음 며칠, 어색하게나마 시간을 보내면서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걸 느꼈고, 그 때부터 거의 동방에 출퇴근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3월말부터 5월 중순까지 대충 2달여를 보냈다. 동방에 가는건 이제 딱히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라 일상 그 자체이다시피 했다. 


그러다 5월 중순 쯤, 차마 글로 뭐라고 말하기 힘든(ㅋㅋㅋㅋ) 사건을 겪으면서 대차게 멘붕을 했다. 뭐 언제 멘붕하나~ 이러고 있었는데 드디어!! 라는 느낌으로. 뭐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멘붕 경험담이었지만 그 때는 꽤 큰 충격이었다. 누가 나한테 어떤 말을 해서 그렇게 멘붕했던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나 스스로 내 무덤을 파는 듯한 기분. 나를 내가 스스로 땅 깊숙한 곳에 파묻는다는 기분으로, 계속 내 안으로 침전하고 침전하고 침전했었다. 그래서 모든걸 다 놔버릴까, 이대로 잠수해버릴까 싶었던 때도 있었다. 평상시같았으면 흘려들었을 이야기들까지 모두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해석이야 물론 마음대로 할 수 밖에 없지만) 계속 우울해졌다. 감정의 기복도 엄청 심했다. 고민의 꼬리를 물고 새로운 고민이, 그 새로운 고민의 꼬리를 물고 또 새로운 고민이 나타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고민의 뿌리는 이런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있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표로 대하라. 그건 기본이 아니냐며 말하던 나 자신도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그들을 수단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1:1의 계산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며 또 해서도 안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때는 그게 그런 생각이라고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그만큼 힘들었고, 그만큼 부족했다. 물론 지금도 부족하지만. 다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건대 이런 것도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겪고 싶지는 않지만, 언젠가 한 번은 겪을 일이 아니었겠나. 


그래서 사실 한동안, 아주 짧게나마 사람들을 피했던 건 있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삼사월 때처럼 사람들과 보내는 모든 시간에 즐거워하고, 모든 자리에 쫄랑쫄랑 따라다니지는 않는다. 그건 아직도 그 상처를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게 나 자신의 즐거움 이상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3, 4월에 느꼈던 그런 자리 하나 하나의 즐거움을 이제는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술도 그랬다. 술을 먹으면 기분이 업되는 사람이 있고 다운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같이 있는 사람들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렸다. 지금에 와서도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술을 먹을 땐 대체로 업, 대학교 사람들이랑 술을 먹을 땐 대체로 다운인데, 그것도 이 즈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사람들과 달리 대학교 때 만난 사람들과는 그 마지막 한 장의 벽을 치우지 못했다. 아마 그런 미묘하게 불편한 관계가, 술자리에도 반영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관계는 내게 너무 어렵다. 그래도 지금은 그 때보다는 조금은 더 상황이 낫다. 정말로 조금은. 계속 글을 쓰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사람마냥 말했지만 사실 그런건 아니다. 아직도 여러가지 고민을 가지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거다. 한 고민을 끝내면 새로운 고민이 나타나는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고3 때 얼마나 힘들어했고, 재수 때 얼마나 힘들어했던가.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던 대학에 와서 나는 또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가. 고민을 떨쳐낸 것 보다는 나 자신의 스탠스를 어느 정도 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조금 더 가벼워진 것이리라. 딱히 뭔가 거창한 스탠스를 정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방향으로, 지금까지는 꽤나 억눌러왔던, 나 편한대로의 삶의 자세를 다시 챙겨보려고.


물론 어차피 이제 당장 학교 생활은 2년 정도 끝이고, 그러니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만.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터넷에서 본 글. 번호를 바꾸고 모든 SNS와 메신저를 다 탈퇴하고, 이젠 그냥 그렇게 지내련다, 하는 글. 그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그리고 그 행동의 의미도 이해가 갔다. 관심을 가져달라. 이런 고민을 가지고 외부와 연결될만한 끈들을 잘라내는 사람들의 심리는 나한테서 관심꺼, 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부정적으로 관심병같은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에겐 정말로 관심이 필요하다. 내가 그런 심정으로 살았으니까. 누군가 관심을 보이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의외로 생각보다 쉽게 풀릴 문제인데, 나도 그랬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었다. 나는 결국 고등학교 친구들을 자주 만났던 것 같다. 절대 빼놓지 않던 동아리 행사를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빼기도 했고. 


사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나 둘 빼보면서 느낀건 집착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거였다. 집착이 모든 관계를 파탄으로 이끈다는 건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상대방을 힘들게 하거나, 본인을 힘들게 하거나. 어떤 관계든지간에, 헌신한다는 자세는 조금은 위험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버린 나는 이제 너무 삐뚤어져버린 것일까. 어쨌든 어떤 관계에, 어떤 집단에,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줄마냥 달려들고 정신없이 거기에 빠져있는 것은, 물론 즐겁고 달콤한 일이지만, 동시에 매우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내 세 달을 돌이켜보면서 겨우 깨달았다. 내가 그런 관계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는걸. 그래서 한 번 의도적으로 밀어내보기로 했다. 내가 집착하던 관계들로부터 아주 조금을 남겨놓고 선을 모두 잘라내봤다.


내가 본 그 '인터넷에서 본 글'과 다르게 나는 아마 자신감이 없었을거다. 그러니까 완전히 쳐내지는 못하고 그렇게 조금의 여지를 남겨두고 했던 거겠지. 또 다른건 나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밀어낸 것은 아니었다는 것. 어쨌든 나는 그렇게해서 몇몇 관계에서는 조금 더 편안한 자세로 임할 수 있게 됐다. 물론 100%는 아니지만. 새삼 깨달았다. 내가 아파했던 이유는 내 집착 때문이었겠구나. 저 사람들 잘못이 아니라, 이 관계가 잘못이 아니라, 이 관계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너무 많은 부분을 기대고 너무 많은 나 자신을 쏟아부었던, 나의 잘못이었겠구나. 그래서 나를 고치기로 했다. 힘든 일이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그러나 그냥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래도 전보다 훨씬 가볍고 편안한 자세로 생활에 임할 수 있다는건 참 좋은 일이다.


생각보다 글이 너무 길어졌다. 사실은 오늘 새벽, 1시 반 쯤에 쓰기 시작했던 글. 굉장히 센티해진 상태로 본 글 하나 때문에 더 센티해져서 시작했던 글인데, 밝은 대낮에 마무리를 짓는다. 사실은 조금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다음에 풀어놓도록 해야할 것 같다. 오랜만에 글쓰는게 재밌어서, 한동안 꽤 열심히 블로그에 글을 쓸 것 같다.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고, 사실 이렇게 줄글로 가득한 블로그를 열심히 보는 사람도 많지 않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제 시아 준수의 새 노래인 <11시 그 적당함>을 들으면서 쓰기 시작했던 글인데.. 이 노래는, 노래 자체도 참 마음에 들긴 하는데,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11시 그 적당함. 나중에 글 제목으로 써먹기 참 좋을 것 같다. 물론 내가 생각했던 11시와 노래의 11시는 12시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나는 당연히 밤 11시인 줄 알았지.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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