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해도 괜찮다면

재수할 때 책을 몇 권 읽긴 했는데, 기억에 남을만큼 인상깊게 읽었던 책은 많지 않다. 아니 애초에 읽은 책 자체가 많지를 않지만. 어쨌든 그 때는 바빴고, 착 가라앉은(혹은 하다못해 정서가 조금 안정된) 상태에서 책을 읽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굉장히 아쉬운 일인데, 어쨌든 1년간 책을 손에서 놓게 되면서 책 자체가 조금은 더 내게 어려워진 것 같다. 그래도 개중에 인상깊게 읽었던 책을 하나 꼽자면, 김두식 교수님의 <욕망해도 괜찮아>다. 김두식 교수님의 책이(물론 초창기에 쓰셨던 <헌법의 풍경> 같은 작품은 비교적 덜하지만) 술술 잘 읽혔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당시에 아, 이건 내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읽어보고 싶지만 역시 아직 안읽어본 책 중에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한없이 미루고 있는 중인데- 그래도 문득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본다. 재수할 때라 블로그에 서평도 제대로 남겨놓지 않은 것 같은데. 사실 지하철에서 틈틈이 쪼개서 읽어서 제대로 읽었다고 표현하긴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지하철을 40여분씩 타고 다녔으니 하루에 1시간 넘게 지하철에서 보냈고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생각해도 재수때는 인간답지 못한 생활을 했고 그만큼 책을 읽으면서도 여유가 없었다. 아마 그런 이유로 서평을 못적은 것 이상으로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심도있께 생각해본 적이 없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욕망해도 괜찮아>의 주요 내용은, 우리 욕망을 그렇게 억눌러 놓고 살지 않아도 좋다..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도 잘게 쪼개 읽은 책이라 이게 전체 주제와 통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뭐 이건 서평도 아니고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게 이거니까 그냥 그렇다고 해보자. 여기에서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김두식 교수님이 쓰셨던 표현 중 하나인 '계(戒)의 인간'이라는 표현을 빌려쓰기로 하자. 내가 바로 그런 전형적인 계의 사람이었다. 글쎄, 왜일까? 우리 집이 물론 엄격하긴 했지만 그렇게 숨막힐 정도로 엄격하거나 규칙을 강조하는건 아니었고, 나는 오히려 늦둥이에 가까운 막내였던지라 이런 규율에서 엄청 자유롭게 자랐다. 오히려 형들이 어렸을 때 집안 분위기가 더 그랬겠지. 근데 내가 이야기하면서 느끼는건 형들에 비해서 내가 훨씬 계의 인간 쪽에 속해있다는거다. 


계의 인간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내 나름대로 찾아보자면, 규칙을 깨는데 큰 거부감(생리적 혐오감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규칙을 잘 못깬다. 어떻게 보면 좋은 성격이고 어떻게 보면 나쁜 성격인데, 어쨌든 원칙주의자라거나 융통성이 없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성격인것만은 확실하다. 나도 그런 성격이었다. 아직도 그렇고.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하면서 A라는 규칙을 함께 받았을 때, 그 A라는 규칙을 누구도 검사할 수 없고, 그 A라는 규칙을 무시하면서 일을 수행하면 훨씬 빨리 끝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끝까지 A라는 규칙을 지키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근데, 이런 성격은 굳이 규칙을 지키고 안지키고를 넘어서는 측면이 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나 자신에게 조금은 지나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엄격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거다. 아, 나는 오늘부터 뭘 하겠어. 이런 말을 해놓고 나서 그 일에 지나치게 집착을 보이고, 하지 못했을 때 자기 스스로한테 죄책감을 뒤집어 씌우고. 참 안좋은 습관이긴 한데, 어쨌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누구나 지치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그렇고. 그래서 요즘은 이런 성격을 좀 버리려고 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한마디로 좀 편하게 삽시다, 좀 쉽게 삽시다라는거다. 물론 그게 규칙을 깨자는건 아니고. 나는 적어도 내 규칙을 지키는 성격은 좋아하니까. 대신 나한테 이상한 규칙을 만들어서 씌우지 말자는거. 그리고 내가 포스팅에서 학기 초에 밝혔던, '바쁘게 산다는 것에 대한 동경'을 버리자는 거. 사실 요 며칠 사이에 비슷한 생각으로 막 일을 만들어서 학기 끝난 잉여로운 대학생의 생활에서 벗어나보자고 발악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전혀 부질 없음 ㅋ... 차라리 나 하고 싶은거 하면서(자는 것도 포...함...ㅋㅋㅋㅋ) 살아야겠다. 사실 학기 중엔 잠도 내가 자고싶은 만큼 못잤으니까. 쓸모없이 이유없이 바쁜 생활이었음, 1학기는.


글에서 조금 멀어져도 된다면, 어쨌든 지금이 내 중대한 터닝포인트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지금이 내가 지금까지 몇 년, 그리고 또 앞으로 몇 년간 있을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를 맞고 있고 또 맞아야하는 때니까. 이 글도 그런 변화의 일환이 되었으면.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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