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룰 수 없는 꿈에 설레이는가

이건 얼마전에 썼던 <그래도 그 미련한 짝사랑이 해볼만한 이유는>이라는 글과 이어지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이게 조금 더 포괄적인 글이려나. 애초에 글을 쓸 때는 한 번도 이렇게 써야겠다, 라는 계획을 가지고 써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항상 쓰고나면 아차, 싶은 글들이 나올 뿐이었다. 아차차, 이게 주제가 아니고.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 장래희망을 처음으로 설계했던건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설계도 뭣도 아니었다. 다만 할 줄 아는거라고는 책읽는 것 밖에 없었던(공부도 못했으니) 내가 커서 무엇을 하고 싶니,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만들어냈던, 그럴듯한 답변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법조인'이라는 길을 정했다. 그때는 특별히 자세한 계획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꽤나 '속물적인' 구상이기도 했다. 돈도 잘벌고, 인정받는 직업이다. 무엇보다 멋있다. 그 때까지의 나는 법조인들이 가지는 고충이라거나, 그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책무같은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정의구현? 그런 거창한 것은, 고백하건대 조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거창한 게 나의 장래희망을 포장하기 시작한건 아마도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로서 주문을 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걸, 또는 실제로 그렇지도 않은데 그냥 둘러대기 위해서, 어물쩡 넘어가기 위해서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 나 자신에게 미묘한 암시를 준다고나 할까. 어느 순간, 어라, 하고 돌이켜보면, 이미 '무심코 내뱉었던' 길을 걷고 있었다. 내 짝사랑이 그랬고, 내 장래희망이 그랬고, 내 수많은 관심사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김두식 선생님이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썼던 표현을 빌려, 철저하게 '계(戒)의 사람'이었던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을 지켜내기 위해서 해온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매번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건 이거야, 라고 말했을 때, 내가 좋아하게 되는건 그 순서가 반대였던 경우가 많다. 좋아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좋아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물론 그 전에 전혀 좋아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었겠지만, 말하는 순간 헤어나올 수 없을만큼 깊어진다. 좋아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더욱 좋아진다, 라고나 할까.


굳이 이야기를 이렇게 돌린 이유는, 내 장래희망도 일종의 그런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무심코 내 장래희망은 법조인말고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장래희망이 왔다갔다해도 좋을텐데, 중학교 때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법조인이 되기를 지망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법조인이 되는게 간절한 것은 아니었다. 간절하게 법조인이 되고 싶어, 라고 생각하기 시작한건 고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간절한 것이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한 학교에 수시전형에 원서를 넣고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느낀건데, "내가 왜 법조인이 되고 싶은거지?"라는 말에 뚜렷한 계기가 없었다. 왜, 조금 진부할지는 모르겠지만 흔히들 보면 어떤 사건이 있고, 그게 계기가 되서 무언가가 하고 싶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근데 나는 위에서처럼 그냥 어물쩡 어물쩡 했던 답변들이 내 꿈의 씨앗이 되어버렸다. 나쁘게 표현하자면 포장이겠고, 그럴듯한 명분이겠지만, 고등학교 때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을 키우면서 이런 장래희망에 조금 더 구체적인 살이 붙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의 시점에서 왜 법조인이 되고 싶은가를 묻는다면 나는 이런 저런 말을 할 수 있고, 거기엔 단 한 치의 거짓도 없다고 맹세할 수 있지만(물론 거기에 부나 명성과 같은 속물적인 가치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분명 그 '이유'들은 나중에 붙여졌다.


재수를 하면서, 별로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뜨뜻미지근하지도 않은 그런 짝사랑을 했었다.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 이후로 한 사람 때문에 그렇게 마음고생을 해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으리라. 물론 재수를 하면서 누군가를 좋아하고 거기에 가슴앓이를 하는건, 적어도 남학생에겐 재수필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비록 내가 재수로 대성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다행히라면 다행히도 그 정도로 가슴앓이를 하지는 않았고, 그렇게 끝냈다. 뭐 굳이 어떻게 결론지어졌는가까지 말할 생각은 없지만, 뭐 그래도 짧게 말하자면, 나는 고백도 하지 못하고 학원을 떴다. 종강하기 3~4일전. 이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까지 쓴 분량의 몇 배는 더 있어야할 것 같으니 접어두고, 그래서 내가 왜 걔를 좋아하게 됐는가를 생각해보면, 위의 이야기와 참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로 "나도 모르겠다". 첫눈에 반한다, 같은 낭만적인 건 아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어느 정도 호감은 있었는데 그게 짝사랑이라고 부를만한 성질의 것으로 넘어간건, 역시 그 말을 뱉은 순간부터였을 것이다(물론 걔 앞에서가 아니라,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다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여느 학생들처럼 서울대가 너무 너무 가고 싶었다. 현역 때, 3학년에 이르러서도 나는 서울대가 가고 싶었다. 갈 수 없는 성적이라는 것은 자명했다. 그래도 꼭 가보고 싶었다. 방법을 찾아봤다. 물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되는대로 부딪혀보기로 했다. 특기자 전형 원서를 넣었다. 정시를 준비하려고 수능 공부도 했다. 결과는? 특기자 전형은 깔끔하게 1차 탈락했고, 수능도 망했다. 재수를 했다. 재수를 하면서도 서울대가 그렇게나 가고 싶었더랜다. 아랍어까지 공부했다. 이번 결과도 참담..까지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울대는 커녕 연고대도 갈 수 없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법조인의 이야기를 빼두고, 짝사랑과 서울대는 내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룰 수 없는 꿈에 설레였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그 때 그런 감정들에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전자에 대해서는 NO, 후자에 대해선 YES일 것이다. 나는 현실과 타협할 줄을 몰랐다. 아니, 굳이 타협이란 말을 볼 것도 없다. 이건 여지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깔끔하게 서울대를 접었더라면? 아랍어와 국사를 포기하고 그 시간을 좀 더 나머지 과목에 투자했다면? 어쩌면 나의 수능 성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더 높아졌을 수도, 더 낮아졌을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내가 서울대를 가지 못할거라는건 은연중에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시나, 어쩔지 모르니까, 라는 이유로, 이룰 수 없는 꿈에 8개월 반을 설레인 결과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로 내게 돌아왔다.


그래도 짝사랑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그 때 나 자신을 긍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때 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시작할 때부터 결과를 알았다. 내 성격에 고백은 커녕 말도 제대로 못 걸어보고 종강할거라고. 그런 생각은 현실이 됐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은 없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리가 없다. 조금 씁쓸했다. 물론 금방 지나가긴 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 전혀 믿지 않았었는데 의외로 맞는 말이었다. 애초에 '썸씽'은 커녕 친분도 없는 상태로 시작한 짝사랑이었다. 


나는 왜 이룰 수 없는 꿈에 설레였는가. 그리고 나는 왜 이룰 수 없는 꿈에 설레이는가. 그리고, 나는 왜 앞으로도 이룰 수 없는 꿈에 설레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런 나 자신이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 살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그게 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 것 같다. 이런 성격이 언젠가는 내게 한 번쯤 좋은 결과를, 또 한 번쯤 크나큰 상처를 주지 않겠는가. 그리고, 역시 그런게 나이고 나의 인생이라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야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짝사랑을 하면서, 괴로웠지만 이 모든게 없었던 일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었으니까. 그리고 비록 후회했던 나의 서울대에 대한 바보같은 집착이었지만, 덕분에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이미지 맵

    글/글로 돌아오다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