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기

이건 뭐 학원 아르바이트 연재물 쯤 되는건가... 워낙 하루의 대부분을 아르바이트에 가져다 바치고 있어서 자꾸 글의 방향이 아르바이트 관련된 쪽으로 흐르는데.. 뭐, 그렇게 되서, 오늘도 아르바이트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고 아기자기 옹기종기라는 단어가 어울릴정도로 작은 학원이긴 한데, 선생님과 친분도 있고 아르바이트는 할 만 하다. 나름 재미도 있다. 과외같은 거에 비하면 박봉이라는 말을 들을만도 하지만 조교직이라는 것도 나름 할 만 한 것 같으니. 


내가 직접 수업을 하는건 아니고 조교로 애들 보충해주고 질문 받아주는 정도인데, 최근에 계속 느끼는게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의 어려움'이다. 강사는 아니고 조교이다보니 1:多수업을 할 기회는 사실 거의 없다. 딱 한 번 선생님 결근하셔서 그 자리 보충 때문에 10분 정도 간단한 내용가지고 1:4 수업은 해본 적 있는데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은 수업할 때 뿐만 아니라 평상시 조교라는 직함으로 질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읽기 시작한 책이 <쉽게 가르치는 기술>. 강사같은 사람들을 타겟팅한 것이고 다분히 기술적 측면에 주목한 면이 있는데다 아직 다 읽지도 않아서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몇 가지 공감가는 부분도 확실히 있었다.


그중 가장 크게 공감했던 부분이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가 되어야한다는 부분과 1을 안다고 해서 1을 가르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많이 안다고 해서 잘 가르치는 것도 아니라는 것. 배우가 되어야한다는 것은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크게 느끼고 또 힘들어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인데.. 책에서는 가르치는 사람은 학자, 배우, 엔터테이너, 예언가, 의사 등 5개가 모두 되어야한다고 했지만 배우와 엔터테이너가 '매끄러운 수업'을 위해서는 제일이지 싶다. 어차피 학자나 예언가, 의사로서의 측면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기 때문에. 


배우나 엔터테이너로서의 강사는 수업을 재밌게, 질리지 않게, 긴장감있게 해나가는 부분에 관한 이야기다. 평상시에 친구들에게도 뭘 잘 설명하는 편이 아니었던 나한테는 제일 어려웠던 부분. 아무래도 나 자신이 먼저 답답해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수학이라는게 옆에서 계속 잡아주지 않으면 엇나가기가 너무 쉬운 과목이라서 주의하고 있긴 한데.. 글쎄. 그러려면 강사 자신이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져야하는데 나는 나 자신에게 여유가 너무 없다.


나 자신이 수학으로 엄청나게 고생을 해봤고 재수를 하면서 그 부분을 딛고 일어섰던 기억도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수학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막 수1이나 미적분과 통계 기본을 들어가고 있는 학생들에 비해 나는 재수를 하면서까지 문과생에게 필요한 범위의 수학은 여러차례 반복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 쪽으로 아는 범위는 배우는 학생들보다는 훨씬 넓다. 그런데도 쉽게 가르치기가 어려운 것은, 우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써먹기엔' 충분하지만 '가르치기엔' 너무 얕다는 데에 있다. 내가 그동안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방식은 내가 아는걸 삽으로 그냥 퍼다주는 방식이었는데, 역시 잘 가르치려면 '중요한걸 걸러내서' 가져다줘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


내가 수학공부 하던 기억이 난다. 나도 수학으로 엄청나게 고생을 했었다. 1학년땐 20점대까지 맞아본 적도 있고. 그럴 땐 수학이란 과목이 너무 막막하다. 그럴 땐 너무 몰아치는 방식으로 끌고 나가면 안된다는 건 무엇보다 내가 체감해서 알고 있다. 수학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리미트'가 있다. 그 리미트를 넘어서는 순간 힘들다, 라는 의미 이상으로 짜증이 난다. 수학 그 자체가 스트레스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되면 그 학생의 수학은 거의 끝이 난다. 다시 되돌아오기가 어렵다. 나는 그렇게 스트레스의 대상이 되어있던 수학을 못잡아서 결국 재수까지 했다. 


최근 계속 일대일 티칭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오늘 리미트를 넘어도 너무 멀리 넘어갔던 것 같다. 계속 컨트롤해주고 싶긴 했는데 조교가 학생수만큼 많지 않으니 한 학생만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내일 학원 나오긴 나오려나. 어지간하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등학생, 그것도 3학년에게 수학이란건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는 과목이 아닌데. 내일 나오면 좀 더 이끌어줘야겠다는 깨달음, 그걸 해주지 못한 아쉬움.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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