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긴장감의 연속, 온다 리쿠 - <굽이치는 강가에서>


  '소녀적 감수성'이라는걸까. 이 책은 나로서는 3번째 읽는 온다 리쿠의 책이고, 동시에 2번째로 완독한 온다 리쿠의 책이다. 온다 리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다 읽지 못한 채로 도서관에 반납한 기억이 있다. 맨 먼저 접했던 책은 <밤의 피크닉>이었다. 온다 리쿠의 스타일이 워낙 변화무쌍해서, 작품과 작품간의 괴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굽이치는 강가에서>는 <밤의 피크닉>과는 서로 다른 범주에 있다. 그렇지만 온다 리쿠의 재능, 그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재능은 이번 작품에서도 충만하게 발휘된다.

  5명의 주인공- 넓게 보면 아오코까지 해서 6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도대체가 평범한 사람이 없다. 자기 자신이 하찮고 평범하다고 묘사하는 마리코까지도, 제2장에서 시점이 요시노로 옮겨 갔을 때, 그 특유의 '소녀다움'을 극찬받는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들을 아름답다고 말하면서도, 뭔가 2% 부족한-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모습으로 묘사해낸다. 아름답다, 라는 말을 서술자의 이름을 빌려서 계속해 읊지만, 1장의 마리코 시점을 벗어난 이후로는 서로의 상처를 들이파고, 다시 핥아주는 과정의 반복일 뿐이다. 왠지 풋풋한 소녀감성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가 꺼려질 정도로.

당사자들의 이야기 - 가스미, 마리코, 아키오미
  사건의 당사자라고 하면, 정확히는 이렇게 3명이다. 쓰키히코는 가스미의 어머니가 죽었던 것을 추리해 들어오는 입장이고, 아오코는 어디까지나 제3자, 요시노도 당사자라기 보다는 목격자에 가까운 입장이다. 정확히는 요시노는 가스미의 어머니의 트릭에 이용된 것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도대체 뭐하는 캐릭터인지 모르겠던 마리코는, 합숙을 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요시노의 관점에서 마리코를 서술할 때 이런 말을 사용한다.
상처받은 마리코는 아름답다. 티 없이 깨끗한 유리에 그림자가 비쳐 아른아른 빛깔을 바꾸면서 흔들리는 모습은 여리디여리면서도 변화가 풍부해 보는 사람이 싫증나지 않는다. 그녀 안의 그림자를 흔들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잔혹한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안타까워하는 나는 거의 그녀에게 빠져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어쩌면, 그게 가장 큰 마리코의 매력인 캐릭터. 온다 리쿠는 그런 마리코의 모습을 너무 잘 묘사해냈다. 무서울 정도로, 치가 떨릴 정도로. 어느새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 까지도, 그런 마리코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1장은 마리코의 관점에서, 2장은 요시노의 관점에서 진행되는데, 위 대목은 요시노의 관점에서 나오는 말이고, 이미 마리코라는 인물에 대해서 독자들은 1장에서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자꾸 대놓고 복선을 깔아놓지만, 대체로 좋아하는 선배와 함께할 수 있다는 데에서 심하게 들뜨고, 그들을 독점할 수 없다는 데에서 질투를 느끼는, 그런 캐릭터다. 미묘한 거부감이 들 정도로. 그러나, 1장의 끝자락에서 마리코가 상처입고, 2장의 앞자락에서 다시 그런 그녀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킨다.

  그런 가스미와 마리코는, 결국 '그 날의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성장(또는 변화)을 거치게 되는데- 나는 과연 마리코가 거기에서 어떤 변화를 얻어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변화, 성장이 가장 커야 했던 본인은 이후 사고로 바로 죽어버리고, 이제 세상에 유일하게 제대로 된 진실을 가지고 있는 마리코는, 과연 그걸 듣고 어떤 생각, 어떤 변화를 이뤄낸 것이었을까.

  한편으로는, 자신의 누나를 그렇게 간접적으로 죽여버린 꼴이 된, 아키오미는 또 어떤 감정으로 그 사건을 대하고 있었을까. 사실 아키오미야 마롤 제3자라는 말에 부합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누나가 죽은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스미의 어머니가 죽은 것과 관련되고, 또 어떻게는 전혀 별개의 사건이기 때문에. 가장 어정쩡한, 내부인과 외부인의 경계 선상에 서있는 셈이 된다. 그런 그가, 과연 정말로 그런 심리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아키오미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그런 심리에서가 맞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그러나 어린 아이들의 그런 심리와는 살짝 다른 그런 미묘한 감정에서 마리코를 대하는 그. 솔직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밀을 꽁꽁 감추고 있던 마리코보다도 더 알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아키오미였다.

외부인의 이야기 - 요시노, 쓰키히코, 아오코
  한편 요시노와 쓰키히코는 분명하게 외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오코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는다. 물론 쓰키히코는 가스미의 어머니를 좋아했고, 그의 부탁대로 약을 가져다 주면서 자살을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꼴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키히코가 사건에 직접적으려 연관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요시노와 쓰키히코는 20% 정도 부족한 정보로 절반만 맞는 추리를 하고 있는, 외부인들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는, 그다지 충격적이진 않지만, 왠지 온다 리쿠다, 싶은 느낌으로 종장에서 결론을 뒤집어버린다. 그렇게 뒤집힌 요시노와 쓰키히코의 추리는, 그러나 충격적이라기 보다 아쉬움을 남긴다. 요시노와 쓰기히코는 가스미가 그의 어머니를 죽였을 것이라고, 그것은 어머니보다도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으리라고 추리한다.

  트릭에 대한 추리는 맞았지만, 동기에 대한 추리가 완전히 틀어지면서 트릭 추리도 어긋나고 만다. 종장(4장)에서, 아직 죽기전으로 돌아가 가스미와 마리코가 함께 했던 마지막날 밤,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가 드러난다. 사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훨씬 사랑했고,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가 자살하는걸 도우려고 했음을, 요시노와 쓰키히코의 추리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틀어져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 가장 재밌었던 대목은 역시 요시노의 관점에서 진행되었던 2장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오코, 뒤늦게 알게되는 마리코와 다릴 요시노는 '어정쩡'하게 알고 있다. 낭만적인 긴장감을 이끌어나가는 요소 중 하나다. 뭔가 그 이야기를 풀어갈 듯 하면서도 쉽사리 풀어가지 않는다. 요시노, 쓰키히코, 그리고 외부인에 가까운 입장에 있는 아키오미는 서로 조금씩 다른 정보를 쥐고, 이런 긴장감을 계속 이끌어나간다.

  한편 철저하게 제3자로 분류되고, 사건 자체와는 아무런 연관을 짓지 못한 채로, 사건의 끝에 있어 필요한 인물로 초청된 아오코는, 자신이 가스미와 요시노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제3자일 수 밖에 없음을 아쉬워하고, 동시에 제3자로나마 거기에 있을 수 있음에 안도한다. 소설의 전반적인 전개에 있어서 이 인물은 어디서 왜 갑자기 나타나는가,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은, 이 소설에서 결코 뺄 수 없는 인물이다. 소설의 서술대로 요시노에게 있어서 이야기를 끝내기 위한 인물 이상으로, 작가 온다 리쿠와 그녀의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있어서 이 이야기를 끝내기 위한, 일종의 관찰자 시점으로서이 필요성. 그 존재가 바로 아오코다.

  1장에서 마리코의 관점에서 비쳐졌던 모습과는 또 다른 3장에서의 아오코의 모습 역시 흥미롭다. 뭐랄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이렇게나 다르다, 라는 것. 계속해서 어른스럽다, 라고 묘사되는 1장과 달리, 3장에서의 아오코는 진솔하다. 자신의 마리코를 가스미와 요시노가 그녀들의 세계로 끌고 들어감에 대한 반발심, 정작 합숙에 합류하면서 사실은 마리코가 그녀들의 세계에 들어간 것에 대해 질투를 느끼고 있었던 것, 한 발 더 나아가면 그녀들에 대한 동경까지를 모두 솔직하게 인정하는 그녀의 모습을 새로 발견하게 된다. 매력적인 캐릭터, 확정.

낭만적인 긴장감의 연속
  책을 읽다보면 의도적이라기 보다 자연스럽게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이미지로 그려내게 된다. <굽이치는 강가에서>는 후반에 도달하기 직전까지도 너무나도 화사한 모습이 계속된다. 이미 중반부터 긴장감이 역류하고, 마리코는 쓰러지고, 이야기가 가속화되는 느낌을 받지만, 가스미와 요시노라는 두 사람에 의해 합숙의 화사한 모습은 끈질길게 이어진다. 책을 덮고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보면, 노란색과 옅은 붉은 색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한 편의 그림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나가도, 아무리 상상해봐도 도대체가 그 이미지가 개운하지가 않다. 낭만적인 소설의 분위기 전반에 긴장감이 깔려있다. 애초에 1장에서 자꾸 사건이 일어난다는걸 반복해서 알려줘버렸기 때문에, 누가 죽는건 아닌가, 무슨 일이 터지는건 아닌가하는 그 미묘한 긴장감을 읽는 내내 떨쳐내기 어렵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그런 낭만적 긴장감의 연속이다. 가스미가 죽는 것으로 그 긴장감은 끊어지지 않는다. 가스미가 죽었다, 이게 그 비극인가, 하는 마음이 들지만, 영 개운치 못하다. 결국 그런 마음은, 4장에서 죽어버린 가스미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해소된다.

  나는 사람이 모질지 못해서 그런지, 누구나 다 그런건지, 도대체가 사람이 죽는 소설을 개운하게 읽어내지 못한다. 싫어하는건 아닌데, 마음속에 너무 오래 남아있는달까. 특히 이 소설처럼 그 죽는 사람이 오랫동안 소설에서 다른 인물들과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면, 아, 거기서 왜 죽는거야- 하는 심정이 먼저 들어버린다. 이번 소설도 그런 느낌이었다. 여기서 해피엔딩이 나오면 어색하다는 건 알고 있어, 가스미가 살아있었더라면 이렇게 여운이 남지 않았을 것도 알고 있어, 그렇지만 왜 거기서 죽어버려야만 했던거야.




한 가지 이야기를 하겠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그 풍경이 떠오른다.
완만하게 구부러져 흐르는 강가에는 언제나 그 그네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늘 그곳에 있었다.
──── P.298




P.S.)
'농밀하다'라는 말이 정말 자주 나온다.
농밀-하다(濃密--)
「형용사」
「1」짙고 빽빽하다.
「2」서로 사귀는 정이 두텁고 가깝다.
농밀한 시간. 그런가, 요시노가 그렇게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그 시간들은, 그렇게 농밀한 시간이었던 걸까.

#2011-16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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