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시리즈>의 대단원, 니시오이신 《모든 것의 래디컬》

모든 것의 래디컬 -상
10점

사실 두께만 보고, 아무리 시리즈라고는 해도 역시 상중하 세 권을 나눠서 리뷰하는게 맞지 않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해봤을 정도로(...) 두꺼웠던 책입니다. 상권 476쪽, 중권 476쪽, 하권 484쪽. 생각해보면 다 더해도 공의경계 상하권보다 조금 더 두꺼운 정도의 수준이지만, 그래도 양장이기까지 하니 두께만 보고 질려버렸다고나 할까요. 

제목처럼, <헛소리 시리즈>(저는 <헛소리꾼 시리즈>라고 불러왔지만)의 6번째. 말 그대로, 잘린머리사이클에서부터 시작해와서 시리즈로는 6번째, 권수로는 7·8·9권째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모든 것의 래디컬>입니다. 말 그대로 대단원, 말 그대로 대서사시...라고는 할 수 없는, 미스터리 소설로 시작해서 라이트노벨로 끝나는 이 시리즈의 대단원, 이라는 것이죠. 살아있는 시리즈 등장인물은 거의 1번 정도, 하다못해 죽은 사람은 이름만이라도 한 번씩은 열심히 이름을 드러냅니다. 각 권의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생각해보자면, <잘린머리사이클>의 '청색 서번트와 헛소리꾼' 쿠나기사 토모와 '이짱'은 당연히 나오고, <목조르는 로맨티스트>의 '인간실격 제로자키 히토시키'는 간드러지는 캐릭터로 재등장. <목매다는 하이스쿨>의 '헛소리꾼의 제자' 히메는 전작에서 죽어버렸지만 계속되서 회상되는 인물이고, <사이코로지컬>의 우츠리기 가이스케의 헛소리 부수기는 13계단의 대응 방식에 대해 평할 때 자주 언급되며, '매력적인 허풍쟁이 코우타'는 완벽한 서포트 캐릭터였고, <카니발 매지컬>의 '살육기술의 니오우노미야 자매'는 비록 이즈무만 남아있던 상태긴 하더라도 재등장. 그 외에도, 1권 이후로 도통 안보이던 젖은 까마귀깃섬의 이리아 일파(?)라거나,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 대거 등장합니다. 아아, 이 얼마나 대단원에 적절한 인물 대거 등장인가요.

이번 시리즈에서도 니시오 이신의 왠지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죽어라는 계속됩니다. 솔직히 쿠나기사 토모야 죽는다느 느낌으로 백날 말해도 안죽을 거라고 생각했고, 이짱이 죽으면 헛소리꾼이 없으니 시리즈 전개는 안되고, 아이카와 준이야 애초에 그렇게 쉽게 죽을 인물로 세팅되어있지 않지만, 제로자키 히토시키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안도해야할 정도랄까. 애초에 이즈무가 죽는 장면에서 아무리 강해도 죽일 놈은 죽이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였기 때문에 말이죠(...) 역시, 뭔가, 어딘가가 심각하게 삐뚤어져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니시오 이신이란 작자는. 거기다 순도100% 평범한 인물은 등장=사망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애초에 연립주택 일파는 완벽하게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데.. 하긴 후루야리 즈킨이 과연 얼마나 평범한 인물이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뭐라해도 즈킨이란 이름을 물려받았으니), 뭐 그렇게 다 죽여버리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더더욱 심해진 현상인데, 나스 기노코처럼 서술하는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오히려 그 쪽에 집착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째 나스 기노코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더군요. 물론 표현의 퀄리티라던가 하는 면은 뭐라고 해도 나스 기노코보단 니시오 이신이 위입니다만, 둘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 매력적인 설정,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우수합니다. 캐릭터에게서 나사 하나 뽑는 것도 니시오 이신이 훨씬 우월(...)합니다. 어쨌든 이런 서술이 정점을 찍는 부분이 <13계단>에 대한 설명인데, 이즈무가 설명하고나서 살인명이 어쩌고 저주명이 어쩌고 하는 설명이 몇 번에 나뉘어 자꾸 나옵니다. 솔직히 처음 <13계단>에 대해 이즈무가 설명할 때 저는 다 기억도 못했거든요. 아니 이 놈이 저 놈 같고 저 놈이 이 놈 같은걸 어떡해요. 근데 애초에 이름이 꽤나 독창적인 애들이 많고, 비등비등한 등장 비중(그 비중이 맞지 않는 캐릭터는 이름이 기억하기가 참 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노이즈라거나.. 근대 영어로 쓸 땐 일본식으로 써서 NOIZU라고 써져있었지요. 본문에서도 '잡음이란 뜻'이라고 말하는데) 때문에, 중~하권에서 다시 한 번 13계단 이름을 쭉 써주는데 아마 자기 스스로에게 감탄하게 되실 겁니다. 와, 내가 얘네들을 다 기억하고 있구나, 하고. 

니오우노미야 잡기단같은 살인명, 저주명, 뭐 이런 설정놀음을 소설에서 (조금 정신차리고 보면 억지로라도) 적당히 끼워넣어서 내용 설명을 하는 모습은 나스 기노코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아니, 적당히 끼워넣는 능력 만큼은 나스 기노코가 위죠. 니시오 이신의 <헛소리꾼 시리즈>에서는 좀 뜬금없다, 왜 갑자기 거기서?라는 느낌도 없는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적당히 풀어내는 건 니시오 이신이 좀 더 낫습니다. 아니, 애초에 나스 기노코의 소설은 조금 지나치다 싶을정도로 추상적인 것까지(특히 초기작인 공의 경계까지 가면[각주:1] 말 다했죠..) 설정을 열심히 잡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들 설정끼리 충돌하기도 하고. 니시오 이신의 설정놀음은, 물론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캐릭터를 설명하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뭐 본인도 나스 기노코를 찬양하다시피 한다고 하고, 저도 나스 기노코를 좋아하지만, 역시 소설가로서의 소설이라면 니시오 이신의 스타일이 맞겠죠. 

오히려 엉뚱하다, 라는 생각이 드는건, 우선 너무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특히 닉네임(...)이라는 것과, 우리 헛소리꾼 씨의 끊임없는 헛소리, 그리고 아무리 봐도 알고서도 회수하지 않는게 뻔히 보이는 복선들. 뭐 복선이야 회수 안해도 이미 다 읽고 나면 뭐가 복선이고 뭐가 떡밥이고 그런게 헷갈릴 정도로 두꺼운 책이긴 합니다만은(...)

사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데도 다 기억하고 또 거부감이 적은건 그만큼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이죠. 사실 주인공이 삐뚤어지기로는 여느 소설보다 최강인데다, 아무리 진지하더라도 툭툭 하나씩 던져놓는 함정같은 개그요소같은게 많아서, 캐릭터에 정 붙이기도 좋습니다. 거기다 뭐라고나 할까, 이번 작에서는 특히 '얻을 수 없는 것'으로서 자주 나오는, 헛소리꾼과 13계단 소소한 일상의 행복같은 장면들이 많아서 더욱 그랬지요. 결국 13계단에서 리타이어 되지 않고 죽은 사람이라고는 키노 라이치와 후루야리 즈킨 정도지만, 만약 시리즈의 7번째가 있었다면 13계단이 절반 쯤은 죽어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떡해요, 그게 이 작가의 특징인걸.

개인적으로는 대단원 자체는 굉장한 해피엔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고코로는 마지막에 급등장한 캐릭터인 것도 있고 해서, 가장 정을 덜 붙인 캐릭터였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결국 마고코로도 살았고, 아이카와 준도 살았고. 이짱도 살았고, 아무래도 아이카와 준의 종막에서의 대사를 보면 여우가면 남자- 사이토 타카시도 살아있는 것 같으니 결론적으론 매력적인 캐릭터는 꽤나 많이 살려줬네요. 그렇지만 작가 본인은 그다지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아니, 확실해요. 작가는 이 엔딩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요. 해피엔딩, 이라기 보다도 삐뚤어진 캐릭터는 제 궤도로 돌아오고, 불행했던 이의 불행은 끝나고, 그런 엔딩은 전혀 아니라는 소리죠. 힘든 놈은 여전히 힘들고, 불행한 놈은 여전히 불행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간다.. 라는게 전제되어있는 거겠죠. 작가님이야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겠지만.

그런 작가님의 생각은 사실 작가 후기를 보면 잘 드러납니다(...)

"이 작품의 작가라는 사람은 보통사람이 도망갈 정도로 도량이 좁고 성격 꼬인 사람이라, 기본적으로 해피엔딩, 대단원이라는 것에는 회의적이며, 특히 나쁜 녀석이 착한 녀석이 되거나 불행한 사람이 행복해지거나 하는 최후의 마지막 한 줄을 읽으면 도무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듭니다. 나쁜 녀석은 개심하지 않고 불행한 사람은 계속 불행할 뿐,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게 본 작품의 작가 신념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조건 하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하는 것이 본 작품의 작가 철학이며 철칙입니다."
— 니시오이신, <모든 것의 래디컬·下> 후기 中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마치 전부 다 어떤 일의 준비 같은 것이며, 시작되는 것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끝이 좋으면 전부 좋다는 소리를 해도 그 끝이 어딘지 아무도 보증할 수 없으니, 어떤 해피엔딩의 소설이라도 그것은 어쩌면 인쇄 미스로 ‘이렇다는 것은 거짓말이며 전부 죽었습니다.’ 하는 최후의 한 줄이 빠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일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지금을 온힘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이 되겠습니다만."
— 니시오 이신, <모든 것의 래디컬·下> 후기 中 

그리고 시리즈 내내, 양질의 번역과 함께 독자의 고충을 역자의 고충을 가득 실어 풀어내주셨던 현정수님도, 이런 후기를 남기셨죠.
 "이것으로 드디어 헛소리 시리즈 마지막의 마지막 권이 끝났습니다. 어떠셨습니까? 저는 조금 시원섭섭한 기분이 드네요. 돌이켜보면 이 시리즈는 매 권마다 독자의 입맛에 딱 맞는 엔딩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나 이 시리즈다운 대단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 현정수, <모든 것의 래디컬·下> 역자 후기 中
사실인 거에요. 이 작가라는 사람은, 독자가 원하는 엔딩을 내준 적은 한 번도 없고, 나아가 독자가 살려줬으면 한다고 해서 그런 캐릭터를 살려준 적도 별로 없어요. 조금 사이토 타카시처럼 말하자면, 산 캐릭터는 살 캐릭터였기 때문에 산 거고, 죽은 캐릭터는 죽을 캐릭터였기 때문에 죽었다, 라고 하는게, 작가의 캐릭터 처리 방식에 맞겠죠. 그렇지 않다면, 독자들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 독자들이 사랑하는 캐릭터에게 끊임없이 상처입히고 나아가 죽여버린 변태같은 작가로 밖에 이해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뭐, 생각해보면 대단원인 만큼, 캐릭터란 캐릭터는 다 등장했지만, 이런 저린 매력적인 케이스도 다 나온 것 같았네요.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길었지만, 결코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억지로 늘려쓴 것 같다, 뭐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솔직히 읽으면서 좀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놓지 않았을 정도로 재미 보장. 니시오 이신은 참 재미나게 글을 잘 쓰는 것 같다니까요.

수능 끝나고 6, 7, 8번째 읽은 책이 되려나요? 대책없이 읽어댔더니 좀 헷갈리기도 하는군요(...)


모든 것의 래디컬 -중 - 10점
니시오 이신 지음, 현정수 옮김/학산문화사(만화)

모든 것의 래디컬 -하 - 10점
니시오 이신 지음, 현정수 옮김/학산문화사(만화)


  1. 자기의 아무것도 아닌 철학(...)같은 걸 어려운 용어로 잔뜩 치장해서 가지고 나오는 소설이죠. 으하하, 저는 굉장히 좋아하는 소설이지만. [본문으로]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이미지 맵

    서평/소설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