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鉄道員)

철도원
鉄道員, 1999
※스포일러 있는... 아니 가득한 리뷰.

 보게 된 계기는 아마도 히로스에 료코, 라는 그 이름 때문이었으리라. 나름대로 영화도 스타배우<스토리인 사람이지만, 이번에 이해인 씨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녀에게 붙었던 수식어, 한국의 히로스에 료코라는 말을 듣고 아니 그게 도대체 누군데 그래~ 하면서 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작품, 철도원이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쓱쓱 찾아보다보니 우리나라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작품...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져있고 해서 아 그래 그럼.. 하면서 보게 된 영화. 영화 제작는 1999년, 국내 개봉은 2000년이었다고 하니까 벌써 개봉한지 10년이 되는 영화다. 확실히 스크린이 최근의 화사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 영화 특유의 어둡게 잡는 화면, 거기다 스토리 자체도 기복이 없고, 덧붙여 오래된 영화이니만큼 기법 자체도 10년전의 것이라, 화면만을 본다면 그다지 아름답다거나 하는 화면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도 일본 영화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영화다. 일본영화를 대표할 수 있는 요소란 요소들은 다 쓸어담아 꾹꾹 눌러낸 느낌이랄까? 잔잔한 스토리 전개, 기적과 같은 일, 유명인 등... 여러가지가 한데로 결집된 작품이다. 잔잔하지만 너무 잔잔해서 아예 스토리 기복 자체가 소실된(...) 전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카메라 구성으로 한층 더 잔잔해졌다. 이야기의 기복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도 그다지 뛰어난 작품은 될 수 없을 것. 특별히 실마리를 던지면서 뒷 내용을 추리케 하는 내용들도 아니고, 아주 소소한 반전이 있지만 그냥 일상생활의 한 장면처럼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하게 넘어가버린다. 그런 전개 방식이 잔잔함과 기적을 한데 접합시키는데 큰 일조를 했다.

손녀같은 나이대를 한 딸과의 만남. 물론 이 때는 알아채지도 못했다

어느날 갑자기 그를 찾아온 소녀 세명. 그들은 서로 자매라고 소개하지만... 까놓고 말해버리자면, 히로스에 료코가 맡고 있는 '사토 유키코'는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죽어버린, 오토마츠의 딸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죄책감, 회한, 그 모든 것을 껴안고 살아가는 폐선 직전의 역장이 죽은 딸을 다시 만나며 그 회한을 풀고 결국은 죽게 된다는 이야기. 대충 어떤 내용인지 알고 본다면 영화를 보면서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제는 확실히 그런건데 정작 이야기에서 딸과 대화를 나누며 회한을 풀든 뭘 하든 하는 장면은 기껏해야 15분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눈 속에서 호로마이 역을 지키는 오토마츠

그러면서도 자꾸 회상에 빠져든다

아무래도 이 부분에 있어서 꽤나 민감한 부분이 있나본데, 오토마츠가 철도원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위해 힘쓰면서 가족조차도 포기하는 것을 군국주의에 대한 찬양으로 해석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한 영화를 해석하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그렇게까지 몰고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다지 찬성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들의 논리 자체도 일견 타당성은 있기 때문에 뭐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그의 직업에 대한 헌신은 조금은 멋있었지만 역시 조금은 '어째서'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일을 위해, 전철을 위해 자신의 아내가 죽어가는데, 딸이 죽어가는데 가보지 못한다라…… 그것이 회사가 원하고 이 시대가 원하는 인물상일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씁쓸하게 느껴졌다. 지금 우리나라도, 우리 사회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자꾸 효율을, 능률을, 성실을, 이런 갖가지 수식어를 가져다 붙힘으로서 인간성의 상실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렇게 늙어가 결국은 혼자 남아 정년을 앞두고 있는 모습, 그 모습이 바로 오토마츠다.

그렇게 찾아온 딸을 처음엔 결국 알아보지 못한다


012

인형을 보여줌으로서 보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스토리를 알 수 있게 되지만 오토마츠는 끝자락에 가서야 알게 된다. 딸도 울고, 아버지도 울고. 가슴 찡한 장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급성장 그래프를 그리며 발전해온 일본이 낳아버린 불운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왜 속였느냐는 질문에 무서워하실까봐요, 라고 유키코가 답하자 자기 자식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말하는 오토마츠의 모습은 제대로 된 아버지 역할이라곤 하나도 못해본 그의 슬픔이 가득 담겨있는 것 같았다.

오토마츠는 근무 일지에 '이상무'라고 써내린다

그리고 제설차를 기다리며 호로마이 역에서 죽는다.

딸이 사라지자 그는 자신의 근무일지에 '이상무'라고 기입하고, 결국 그는 호로마이선이 폐선되기 전에 그 종착역인 호로마이 역에서 눈오는 날 제설차를 기다리며 죽는다. 과연 저 '이상무'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 앞서 말했든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물고 늘어져본다면 딸과의 만남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즉 자신에게 당연했다- 정도로, 긍정적으로 풀이해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딸과의 만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허구였다- 정도로도 해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당연했다, 이것은 딸과의 만남이 놀랍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딸과의 만남이 기뻤다 정도의 의미. 귀신이기 전에 그저 자신의 딸, 이상할게 없다- 라는 의미 정도.

결국 눈밭에 쓰러져서 죽은 그의 모습을 원경에서 잡아내며 이야기를 일단락 짓고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렇게 결국 자신의 행복이라고는 단 한번, 죽기 직전에만 맛본 그는 자신이 평생을 함께했던 철도원이라는 신분으로, 호로마이 역을 지키며 죽어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사명이라고 믿는 일을 생각하며 죽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로망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왔던 나에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죽는다는게 저렇게 쓸쓸한 일이었나.'하는 느낌의 장면이었다.

결국 내가 보기 시작한 것은 영화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 보다, 이러한 명작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건 미안하지만, 실제로 분량은 겨우 15분 나짓 되는 히로스에 료코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의 얼굴이나 보자고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아니고 그저 도대체 어떤 배우인가 싶어서. 그런데 거꾸로 그녀의 모습을 보기보다는 영화 자체에 너무 빠져버렸다.

우리나라에도 철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꽤 되는 것 같다. 트위터에도 블로그에도 보면 역 이름을 외운다거나, 이 역은 어떻고 저 역은 어떻고, 역의 여건이 어떻고 노선전환이 어떻고……하는 나같은 사람은 도저히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그런 사람들의 기차에 대한 로망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잔잔하고 좋은 영화였다.

건강을 해쳐가며 깃발을 흔들고 눈물을 삼켜가며 호각 소리를 울린다

속에 슬픔을 묻어라 철도원이여

당신은 이렇게... 죽은 딸도 깃발을 흔들며 맞이하는군요.
──시즈에

"하지만… 아빠는… 네가 죽었을 때도 플랫폼에서 눈을 치우고 있었어. 책상에서 일지도 썼지. '금일 이상무'라고."

"아빠는 철도원인걸요. 어쩔 없잖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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