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닌(ソラニン, 2010)

소라닌

ソラニン, 2010

얼마전부터 계속 영화에 빠져있었습니다. 사실 독서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만큼이나 영화도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드라마같은 경우도 10편 남짓 정도 되는게 좋고, 그만큼이나 2시간 정도의 영화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소설도 영화도 장편보다는 짧지만 잔잔한 단편을 더 좋아하게 되서가 아닐까요. 단편이 조금 장황하다고 해야하나, 이야기 전개 그 자체에 중심을 맞추는데 비해 영화나 단편의 경우 작품 그 자체의 아름다움도 확실하게 묻어나는 느낌이라고 생각해서. 실제로 지금까지 봐온 작품들도 모두들 그런 기준 정도는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구요.

처음엔 무슨 영화인지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할 정도였어요. 포스터만 보면 분명 밴드와 관련된 영화고, 실제로 그런 분위기도 나지만, 내용은 그런 내용보다는 청년기가 지난, 20대의 방황이라는 정도. 실제로 주인공들이 학창시절을 끝내고 사회 전선에 투입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고등학교 밴드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여타의 밴드 영화들과는 달리, 포인트를 음악 그 자체보다는 이상(음악)과 현실(생계) 사이에서의 고민, 갈등을 그려내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짙었습니다. 여러가지로 꿈에 뛰어들었던 주인공들. 그러한 꿈은 단지 음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인 메이코와 타네다의 동거 역시도, 그들의 꿈을 실현시키는 것 중 하나였겠지요.

사실 음악도 동거도 참신한 소재는 아닙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본 영화에서 이 쪽 방향에는 더이상의 참신함을 찾는데 주력하기보다는 현재 있는 상태에서 더 많은 것을 그려내려고 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 영화의 아이콘은 잔잔함, 기복이 없는 스토리. 한국처럼 불륜, 바람 따위의 요소를 넣어서 극적인 스토리를 그려내거나 반전을 넣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려고 하는데 노력한다는 느낌이랄까. 동시에 그런 내용이 너무 상투적이기 때문에 몇 번 보다보면 질리게 되는 플롯인 것도 사실입니다. 소라닌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신하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참신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려내지요. 동시에 그 잔잔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영화인 것도 사실입니다.

저도 음악은 좋아하고.. 수능이 끝난다면 기타도 배워볼 생각이 있고(아니 그보다는 배우고 싶고), 그래서 음악에 대해 열광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깨닫게 합니다. 이 이야기는 고등학교, 그리고 나아가 대학교를 나오더라도 음악이라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를(물론 그것이 주제는 아닙니다만) 일면 엿보이게 합니다. 결국 타네다는 자신의 꿈을 정하고,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고로 죽게되는데, 그 장면도 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굳혔지만, 아니 굳히기로 했지만, 아직도 그것이 제대로 된 길일까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굳이 타네다라고 하는 한 명의 영화속의 인물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시대에 현실에의 순응과 자신의 소망을 동시에 추구하지 못하는 일본인의 모습이고, 그와 닮은 한국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 타네다와 메이코 간의 음악을 통한 연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들 사이의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묘한 느낌이 있죠. 결국 메이코가 타네다의 빈자리를 채워 밴드 활동을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리는데, 이걸 음악 영화라고 분류하는게 과연 맞는 일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묘한 여운이 남습니다. 일본 영화 특유의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그겁니다.

결국 동거라고 하는 것의 위태로움, 권태에 가까운 감정, 그렇지만 아직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자각하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결국 타네다의 죽음. 그리고 그 슬픔에 그저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밴드를 한다는 행위를 통해서 다시 일어서는 메이코의 모습. 이런 플롯은 왠지 희망적인 스크린으로 그려질 것만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화면 배색과는 무관하게 우울하고, 어두운, 그러나 까맣지는 않은 느낌입니다. 아마 회색에 가까운 느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20대의 불안함에 가장 어울리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직면하지 않은 20대. 저로서는 아직 모든걸 다 느끼지 못할지도 모를 그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학창시절에는 그 때를 즐기고자 했지만, 20대가 되어, 자신의 생계를 자신이 책임져야하는 상황에서 직면하는 그 불안을 그려내고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제겐 묘한 울림을 주는 것이었던듯 합니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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