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1.

   이전에 평했던 내부자들의 감독판이다. 이걸 감독판이라 평할 수 있을까.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감독판이라기 보다는 완전판이라는 말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뭔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좋은 영환데 개연성 부족한 그런 영화였던 내부자들의 완성이 바로 이 '디 오리지널'이다. 이게 정말 감독의 뜻에 반해서 제작사가 편집했다거나 한 거라면, 그건 상업적 선택이 아니고 그냥 서사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을 뿐이다. 이게 어느정도냐면, 감독판이 아닌 내부자들을 봤다면 내부자들을 봤다고 말하기 좀 애매할 정도다. 50분 정도의 씬 추가가 이뤄졌는데, 물론 50분의 씬 중에 이 정도라면 편집해도 괜찮지, 싶은 부분도 있었던 반면 이걸 왜 편집해..? 싶었던 부분도 많았다. 나아가 편집해버려서 소소하지만 관객이 완전히 내용을 다르게 이해할 여지가 있었던 장면도.

 

2.

   여러가지 장면이 있었지만, 내용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가장 큰 부분은 조승우에게 달라붙었던, 조국일보에서 쫓겨난 기자였다. 기존 시리즈에서는 그냥 뜬금없이 조양미래건설인지 어디인지 사장을 소개시켜주고 나중에 이게 이어져서 일이 커지는 것 처렴 그려진다. 물론 백윤식과 한 자리에 있는 장면을 보여주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딜이 오갔는지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었고, 그래서 원래부터 이 기자가 조승우를 엿먹이려고 이랬던건지,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감독판에서는 앞에 골프장 씬을 추가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인간관계를 만들어냈다. 애초에 그 기자는 악의를 품고 조승우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기자는 더욱 더 밉상 캐릭터가 된다.

 

3.

   감독판이라서가 아니라 영화를 다시 본다는 의미에서, 느낀 부분도 많다. 일단 사투리가 많고 목소리 전달이 은근히 잘 안되는 영화라서(개인적인 평가다) 처음에는 적당히 듣고 못들은건 대충 넘기면서 봤는데,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처럼 영화를 다시 보니 다시 한 번 영화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놓쳤던 대사도 거의 다 잡았다. 은근히 많은 복선, 많은 암시가 있었던 영화였다. 감독판이라서 더욱 그렇다. 감독판이 상술인 것 같고, 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감독판으로 나왔어야할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갱님이 될만한, 내 돈 주고 다시 극장까지 찾아가 다시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4.

   물론 이 영화가 폭력을 미화한다는 점은 다름이 없다. 이 영화는 폭력을 미화하고, 부패한 검찰권력, 부패한 정치권력, 부패한 언론권력, 부패한 재벌권력을 비난한다. 거기에는 오묘한 점이 있다. 조승우와 이병헌의 결탁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시작되어 정의를 이루는 것으로 끝난 일종의 '동맹'관계였다. 거기에는 '결사'라는 표현까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한 축에 서있는 조승우는 이 영화에서 바로 그 검찰조직의 일원이다. 한 편 이병헌은 재벌권력과 언론권력 사이에 있었던 일종의 하수인으로 그 자신의 '폭력'이라는 새로운 권력을 가지고 움직였던 사람이다. 조승우는 마지막에 스스로 검사의 옷을 벗어던지면서, 자신의 야욕보다는 정의를 택했다는 메시지를 주지만 이병헌이 분했던 안상구는 그런 대목조차 없다. 비록 몇몇 장면에서 그는 정의를 원한다는 말을 하지만, 그가 말하는 정의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 영화에는 인상깊은 장면이 있는데, 바로 도끼를 들고 찾아온 안상구를 대하면서 무기로 연필을 쥔 이강희다. 연필을 이용한 반격이 실패하고 오른손이 잘리는 것은 곧 폭력에 의해 정의된 권력에 의해 언론권력이 꺾이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새로운 결말에서, 이강희의 언론권력은 아직 죽지 않았으며, "기사는 다른 손으로 쓰면 된다"라며 웃는 모습에서 권력의 악순환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지만, 영화 본편 속에서 적어도 그의 언론권력은 붕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패한 권력에 맞서는 폭력적 방식은 물론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렇듯 폭력적이고, 의미심장한 코드를 담고 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라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코드를 뼛속 깊이 담고 있는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불편한 영화다. 폭력이라는 코드는 항상 그 바깥의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비록 악인이지만 그들에 대항하여 맞서는 안상구의 폭력에 우리는 맘편히 웃으며 박수를 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불편한 또다른 이유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러한 폭력조차 없기 때문이다. 영화관을 나오며, 우리는 이 영화에서 나름의 현실을 보고 나온다. 아, 이 영화에서 누구는 누구와 비슷하네, 아 이 영화에서 이런 부분은 어떤 사건이랑 비슷하네, 아 이 영화의 현실은 우리나라의 어떤 모습과 비슷하네. 거 참, 영화가 현실비판적이구먼. 그러나 우리는 영화관을 벗어나자마자 그런 권력과 부딛히게 된다. 우리는 진보와 보수의 범주를 넘어선 '기자권력'(소위 말하는 '기성언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과 맞부딛힌다. 곳곳의 현실에서 올바르지 못한 결탁, 혹은 결탁에의 의혹을 마주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안상구나 우장훈같은 '해결사'조차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조금은 무력감을 남기는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것을 대신 이뤄주는 가상의 이야기는, 엄청난 카타르시스, 쾌감을 남기지만, 동시에 그것이 현실 속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허무함을 남기기 마련이다.

 

5.

   그 이후 한국은 어떻게 변해갈까. 조국일보는? 미래자동차는? 신정당은? 이 영화 속에서, 결국 그런 현실과 맞섰던 이들의 처지는 별로 좋아진게 없다. 우장훈 검사는 검사옷을 벗고 변호사가 됐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월급 받으며 살 때가 좋았다, 라고 자평한다. 안상구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잃어버린 손은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주변의 많은 것을 잃었다. 자신의 조직이 살아있으니 아마 다시 그 삶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서, 이강희와 기존의 권력들은 다시 부활할 것임을, 아니, 애초에 죽지도 않았음을 암시한다. 과연 안상구와 우장훈, 이 두 '해결사'는 정말로 '해결'한 것이 맞을까. 어쩌면 이는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자들이 맞닥뜨리는 현실과도 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실고발자는 희생되고, 사회는 변하지 않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많은 내부고발자를 소재로 한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말미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변한 것은 없다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며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내부자들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을 보고 영화관을 나서며 그들의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장훈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경찰을 하다가, 결국 검사옷을 입었던 그런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그런 것 같다.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릴 때 동화는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답니다."라는 끝으로. 그런데 요즘은 도대체가 찝찝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래서 뭐 어떻다는거야? 주인공은 어찌 살아간단 소리야? 열린결말이든 아니든, 주인공의 끝을 알려주지 않는 영화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물론 그래서 더 좋은 이야기들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슬픈 결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주인공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이런 역경을 헤쳤지만, 어째 별로 좋아진 것은 없고 다시 그 힘든 삶으로 돌아가겠구나, 하는. 이런 좋은 일이 있었으니, 이런 의미있는 일이 있었으니, 이런 걸 가슴에 품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가자!! 라는 교훈적인 이야기에 어느새 콧방구를 뀌는 날이 왔다. 세상은 그만큼 정의롭거나 순리대로 풀리는 세상이 아니며,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곳이 아니라는걸, 어느새 우리는 알아버린 것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우장훈 변호사는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삶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할까. 그가 나이들어, 성공한 변호사가 되든 아니든, 그는 어떤 사람이 될까. 신정당 대통령 후보였던 장필우는 정의로운 검사로 여의도에 캐스팅되었지만 그렇게 나락까지 떨어졌다. 조승우는 "나보고 장필우가 되라고?"라면서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의향을 내비침으로써 그와는 다르다는 선을 분명하게 그었지만, 삶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장필우는 그렇게 타락한 삶을 살고, 뒷돈을 받아가면서도 자신의 정의로운 검사 시절을 자랑스레 떠들곤 했는데, 과연 우장훈에게도 그럴 수 있는 때가 올까. 그가 나이들 때 쯤이면, 자신의 이야기를 자랑스레 할 수 있는만큼 건강한 사회가 되어있을까. 자신의 무게를 잘 지키며 그때도 그런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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