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姦臣, 2015)

 

 

   예고편만 보고 꽤 재밌겠다 싶어서 개봉일을 기다리고 있던 영화가 몇 편 있다. 갑자기 생활에 여유가 생겨서, 거기다 CGV에서 영화를 6,000원에 볼 수 있게 되니 아무래도 영화를 좀 더 많이 보고 싶었다. 그런 영화 중의 하나가 ≪간신≫이었다. 사극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자주 접할 수 있다보니 조선시대 사극은 더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도 많이 했고.

 

小任崇載大任洪   작은 소인은 숭재요, 큰 소인은 사홍이라.
千古姦兇是最雄   천고에 으뜸가는 간흉이구나.
天道好還應有報   천도는 돌고 돌아 보복이 있으리니,
從知汝骨赤飄風   알겠느냐. 네 뼈 또한 바람에 날려질 것을.

──중종실록


   ≪간신≫의 역사적 배경은 조선 10대왕, 연산군(이융)이다. 영화의 시작은 폐비 윤씨의 적삼을 임씨 부자에게 건네받는 장면으로 시작되며, 이 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간신 노릇을 시작하는 임씨 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위의 중종실록의 구절은 그 장면에서 나레이션되는 내용인데, 이 영화 속에서 최고는 역시 아들인 임숭재이다. 임숭재와 임사홍은 실재했던 인물으로, '제조'라고 불리는 임숭재는 궁내의 음악과 무용을 관장하는 장악원(掌樂院)의 제조(提調, 관아의 장)였다고 한다. 영화에 그려지는 시기는 연산군 11년으로, 채홍사(採紅使)로써 전국 팔도를 휩쓸었던 인물이다. 영화 속부각되지는 않으나 실제로는 성종 대에 성종의 딸인 휘숙옹주와 혼인한 인물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살아남는 것으로 그려지나 중종실록에는 부관참시된 것으로 묘사된다.[각주:1]

 

   이러한 배경은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했던 ≪왕의 남자≫가 생각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왕의 남자는 긍정은 아닐지언정 연산군에 대한 연민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왕을 바라봤으며, 따라서 연산군의 광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간신 속의 연산군은 폭군이라기 보다 광군(狂君)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자신이 죽인 인물들의 망령에 시달리며 그 망령에서 벗어나고자 색을 탐하는 인물로, 영화는 굉장히 선정적이나 실제로 이러한 선정적인 묘사의 대부분은 연산군의 광기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러한 연산군의 광기는 영화 전반을 장악하는데, 그 정점을 찍는 장면은 연회 이후의 숙청 과정에서 이미 채홍된 인물들 중 자신이 숙청하기로 한 이들의 여식이나 딸로 하여금 활을 쏴 직접 죽이게 하는 장면이다. 결국 단희에게 마음을 내주기로 한 임숭재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단희를 자신에게 달라 청할 때 울부짖으며 자신을 멈춰달라하는 연산군의 모습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나, 영화는 결코 연산군을 연민이나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그 장면 직후에도 광기에 찬 연산군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폭군이었음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선정적이고 적나라한 장면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스토리의 흐름은 단희와 녹수의 다툼, 그리고 임숭재와 연산군, 그리고 단희로 이어지는 세 남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마지막에 임숭재를 연산군을 처단하기 위한 인물로 내세움으로써 영화는 급격하게 균형을 잃는다. 철저하게 자신의 권력을 좇았던 임숭재는 단희라는 여인에게 마음을 뺏기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에게 대들고, 결국 그 원한을 품고 왕을 죽인다는 장면은 일면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미묘한 찝찝함을 남긴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권세가에서 길바닥으로 전락한(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임숭재와 단희가 거리에서 다시 만나고, 단희가 칼춤의 손짓을 해보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데,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 단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임숭재는 어떻게 살아남은 것인가에 대한 묘사는 전무해서, 될대로 되라 나는 해피엔딩으로 끝내겠다, 라는 느낌을 준다.

 

   물론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간신은 나라를 망치고, 그러한 간신은 '세대교체될 뿐 없어지지 않는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까? 우리의 역사속을 보면 절반 이상은 맞는 말인 것도 같다. 결국 '공신'이라 함은 새로운 권력자를 낳을 뿐이다. 실제로 판부사 유자광이 연산군의 측근에서 중종반정에 합류하는 과정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영화는 130분 정도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분량이며, 영화의 호흡은 굉장히 빠르지만 의외로 짧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선정적인 장면이 쉴새없이 쏟아지기 때문에 영화의 호흡은 실제보다 훨씬 더 급박하게 느껴진다. 요즈음의 사극의 트렌드인 '웃음 전담마크 캐릭터'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등장한 인물은 끊임없이 수모를 겪고, 연산군은 새로운 광기를 내비치고, 그 광기를 얻어탄 임씨 부자는 또 나름의 광기를 보여주며, 궁에서는 권력을 위한 암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이야기의 진행은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다. 2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길게 느껴지고, 거기다 피로 낭자되는 화면을 회색빛 앵글로 바라보고 있자면 속이 메스껍기까지 했다. 영화 자체는 흥미로우나 다시 보고 싶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머리 아픈 영화다.

  1. 이상의 설명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임숭재' 항목을 참조했다. http://goo.gl/RbH5Gh [본문으로]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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