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자와 호노부, 부러진 용골



1.

   나처럼 책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읽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작가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새로운 작가에 대한 도전보다는 이미 좋은 책을 경험한 작가의 책을 다시 고른다. 그러다보니 대개 비슷비슷한 소설을 많이 읽게 된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를 나름 재밌게 읽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내용을 대충 훑어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책으로 보는 원작의 즐거움은 역시 따로다. 5권 격인 두 사람의 거리추정, 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을 순조롭게 모두 읽었다. 오랜만에 정말 잘 읽히는 책이었다. 그 다음으로, 여러가지 책이 손에 치였다. 읽으려고 사놓은 수많은 책들. 개중에는 <나의 한국현대사>같은 교양서적, <인간, 국가, 전쟁>나 <냉전이란 무엇인가?>같은 전공과 관련된 책들, <누워서 읽는 법학이야기>같은 법학 관련된 책들도 많다. 그렇지만 평상시에 소설을 열심히 사서 쟁여놓지는 않는터라(그렇지만 또 읽는 책의 절대다수가 소설이라는 것은 역시 아이러니다) 마땅한 책이 없었다. 그렇게 고르게 된 책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이 작품, 부러진 용골이다.


2.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작가는, 아무래도 내가 읽어본 책이 고전부 시리즈 밖에 없기 때문이겠지만 역시 청춘 미스터리, 라고 부르는 장르에 가장 걸맞는 작가라고 생각된다. 다른 작품들을 이제 막 읽기 시작했으니 아마 이후의 평가는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가장 큰 장기는 <미스터리>고 명실상부 '미스터리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배경은 뜬금없이 12세기다. 


   그렇다, 12세기다. 추리소설에 왠?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작가는 이러한 장르를 작가의 말에서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고 지칭한다. 아마도 통용되는 말인 모양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추리소설에 비논리를 끌어온 작품들은 많았다. 예컨대 이제는 이쪽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이 된 것 같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 가까운 곳에서 찾아보자면 보르자의 '메멘토모리'가 있을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쪽은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는 큰 장르 안에서도 호러 미스터리라는 별도의 장르에 분류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이번 작품은 그 성질이 조금 다르다. 어나더와 메멘토모리는 모두 현대를 배경으로, 그 현대에서의 비논리를 다룬다. 일종의 도시전설을 소설화했다고 봐도 좋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부러진 용골은 여타의 판타지 소설처럼 아예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자신만의 미스터리를 끌고 나간다. 중세시대를 다룬 여느 판타지 소설처럼 마술(또는 마법)이나 저주의 존재를 긍정한다. 물론 판타지 소설처럼 널리 알려지고, 마법사가 존경을 받고, 이런 분위기는 결코 아니다. 소설 속의 묘사를 보건대 아마도 일반적으로 마술이나 마법의 존재는 상상 속의 산물 정도로 치부되는 것 같다.


3.

   저자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흥미롭다. 저자는 왜 특수 설정 미스터리를 동경했고, 또 썼는가? 앞에서 내가 말한 것처럼, 마법이나 저주받은(죽지 않는) 데인인은 한없이 비논리에 가깝다. 그리고 당연히 논리가 지배해야할 미스터리 소설에 이런 비논리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반박한다. 그가 판타지라는 특수 설정을 선택한 것은 오히려 '논리적인 작품'을 위한 것이었다.


…… 이내 완성된 소설은 치졸했지만 그 작품으로 얻은 것도 많았다. 이를테면, 특수 설정 미스터리는 '독자와의 지적 유희'라는 미스터리 본연의 매력을 끌어내기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풀어야 할 수수께끼에 고려해야 할 규칙이 더해짐으로써 쟁점이 보다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中)


   내가 어나더나 메멘토모리를 평가할 때 계속해서 썼던 말을 요약하자면 '추리소설 본연의 매력은 No'였을 것이다. 나는 그런 작품들을 사회파 추리소설과 비슷하게 봤다. 즉 논리게임이라는 추리소설의 매력을 포기한 대신 다른 소설처럼 그 안에 메시지나 스토리 자체를 담는 데에 주력했다고 봤다. 예컨대 어나더에 나오는 망자가 어떤 속성을 가졌고 어떤 존재인지는 소설의 종막에 이를 때까지 거의 알 수 없는 상태로 남아있다. 사실 명확한 해결을 짓지 않고 작품이 끝나기 때문에 결국 해결조차 되지 못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작품, 부러진 용골을 한 편의 추리소설로 만들고 싶었다. 그에게 특수 설정이란 논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논리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즉, 현실에서라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을 특수 설정이라는 이름으로 저자와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약속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덕분에 이 소설에서 저자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야기는 아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만들고 싶은 상황에는 제약이 없다. 그저 새로운 룰을 내걸면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 이 소설이 본격 미스터리는 아닐지언정 아직도 미스터리, 추리물이라는 이름을 내걸 수 있는 이유는 저자가 적정선에서 그 룰을 가지고 놀았다는 데에 있다. 저자는 이 룰에 모든 것을 맡기고 체계적인 논리를 짜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중심에는 논리가 있었다. 마술이 난무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들이 나오는 가운데에서도 대부분의 이야기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소재와 논리를 가지고 진행되었다.


   의외로 이 소설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추리소설답지 못한 점이 아니었다. 내게는 오히려 지나치게 추리소설로서의 면모(저자의 표현을 빌리건대 '독자와의 지적 유희')를 의식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소설 진행이 살짝 매끄럽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다. 물론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이 소설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4.

   2일만에 독파한 이 소설은, 엄청난 수작은 아닐지언정 나를 매료시키게 충분했다. 추리소설과 중세시대라는 배경, 그리고 거기에 가미된 판타지까지 의외의 조합은 생각보다 훨씬 잘 어울렸다. 비슷한 장르의 책을 더 찾아 읽고 싶을 정도. 거기다가 원래 소설 속의 등장인물 소개를 그다지 신경써서 보지 않는데 이번 작품은 자주 자주 보면서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도 선명하게 잘 잡을 수 있었다. 여느 추리소설답게 충분한 반전도 있고, 그 반전에 대한 실마리도 넉넉하게 준다.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한 의외의 명작이란 말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소설의 뒷맛은 쓰다. 열린결말도 닫힌결말도 아닌, 반쯤은 닫아놓고 반쯤은 열어놓은 것 같은 결말. 어느새 저자에게도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명예로운 기사가 되어있었던 팔크 피츠존의 죽음, 그리고 예상대로 무능한 차기 영주 아담 에일윈, 영웅으로 그려지지만 허망하게 죽어버린 로렌트 에일윈까지. 주인공인 아미나 에일윈의 주변은 파국으로 치닫고만 있다. 솔론에 남아, 자신의 오빠인 아담이 성장할 때까지 자신이 버티고 있겠다는 말을 남긴 아미나의 모습은 소설 자체로는 좋은 결말이 되지만, 그녀의 미래는 왠지 회색빛으로 가득한 것만 같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그만의 기사이자 팔크의 종사, 니콜라 바고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소설이 끝난 언젠가, 아미나는 "부러진 용골"이라는 말로 니콜라와 재회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6.

   덤으로, 용골(龍骨)은 배의 부재 이름이라고 한다. 나는 겉에 그려진 그림과 함께 무슨 용의 뼈라도 되는 줄 알았다. 파란만장한 모험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좁은 세상(솔론 제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처음엔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근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사람들은 거의 다 아는 것 같던데... 내가 무지한건가...?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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