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무라 미즈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1~3

0.

   내가 읽은건 세 권짜리 구판이었지만 개정판이 훨씬 표지가 예뻐서 요걸로 대체.


1.

   츠지무라 미즈키의 책은 처음인줄 알았는데, 블로그를 구경하다 우연히 같은 작가의 책에 대한 서평을 발견했다. <밤과 노는 아이들><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학교 도서관에서 그런 책을 빌려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조금은 인스턴트하게 책을 소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때 같이 읽었던 책인 모양이다. 그래도 그 때도 즐겁게 책을 읽었던 것 같으니 이번 책도 괜찮았겠지. 실제로 괜찮았다. 이게 츠지무라 미즈키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매번 도서관에 갈 때마다 1권이 없어서 선뜻 뽑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제목은 뭔가 매력적이고, 이웃 중에 한 명이 읽고 썼던 글을 기억하고 있어서 한 번쯤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메인 도서관을 호수도서관으로 바꿨는데 거기에 세 권이 예쁘장하게 꽂혀있기에 바로 뽑아들었다!


2.

   학교의 제목이 뭔가 느낌있다(?)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정말로 이 소설의 큰 내용을 설명해주는 키워드다. 정말로 학교는 차고, 그런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정확히는 멈췄다가 간다고 해야겠지만. 그리고 그 안에 갇힌 8명이 겪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갑자기 시간도 멈춰버리고 나갈 수도 없어진 학교에서, 우연히 함께하게 된 8명의 학생들이, 자신들이 여기에 갇힌 것은 학교 축제 때 있었던 자살 사건 때문이며 그 자살한 학생이 자신들 8명 중에 한 명일거라는 추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추리물 정도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추리물이라기보다는 한없이 미스터리물에 가깝다. 그다지 무서운 종류의 것은 아니니 호러라는 단어는 선뜻 붙이기 좀 그렇지만. 아마 마네킹으로 변하는 장면 등은 조금 섬뜩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격 호러 미스터리라고 붙일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이런 분위기 덕분인지 전반적인 분위기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Another>와 비슷하다. 물론 섬뜩하기로는 어나더 쪽이 훨씬 심하고, 또 스토리의 흐름도 그다지 궤가 비슷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 소설의 전반적인 느낌이 어나더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소설의 배경이 학교라는 점, 그리고 기억에 대한 불신이 공포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렇다. 이 소설의 가장 주요한 공포는 내가 지금 이 학교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정체 불명의 '호스트'가 있다는 것도 아니다. <어나더>에서와 같이, 나의 기억에 대해 믿을 수도 없고, 그런 기어고가 함께 모든 물증이 변화하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조금의 기억조차도 그걸 뒷받침해줄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런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 세상일까. 그리고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무력한가. 우리의 기억은 정확한 물증이 없다면 사실 절대 명확해질 수 없다.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이고 기억력의 한계이다. 그렇다면, 모든 물증이 없어진 세상에서 우리의 기억은 의미를 잃는 것일까?


3.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미스터리 소설이기 때문에 딱히 어떤 트릭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에서처럼 한 등장인물의 이름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여 마치 두 사람인 것처럼 묘사하는 정도의 트릭은 사용했지만 그 이외에 추리소설이라고 부를만한 트릭은 거의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소설은 그런 트릭을 한 번 풀어보자고 달려드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추리라는 이미지보다는 학창시절의 고민과 다툼과... 커서 생각해보면 조금은 유치하고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었던 일들로 인해 고민하는 10대, 를 그린 이야기..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아직 꼰대라고 불릴만한 나이가 아닌데도 그런 감상이 먼저 든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어땠는가. 정확히 말하면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나는 어땠나. 요즘 부쩍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을 많이 읽었다.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고교 입시,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 그리고 이 작품까지.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에 대해 자꾸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중2병이란 단어가 있을 정도로 중학교는 불안정한 시기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허세와 불안정감 때문에 중학생은 오히려 어느 정도의 안정감을 얻는다. 자신의 불안정함을 충분히 표출해낼 수 있는 시기라고 본다. 그러나 고등학생은, 거기에 입시라는 새로운 문제가 맞물려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학창시절이 좋았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도잇에 학생들은 결코 그 말에 공감할 수 없다. 그 원인에는 인식의 격차가 있다. 사회에 나와서 여러가지 문제와 직면하면서, 여러가지 인간관계를 맞이하면서 학생 시절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때 그 시절 치기어린 생각과 치기어린 행동들에 대해서 다시 되돌이켜볼 충분한 시간을 얻는다. 그러나 학생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역시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를 꼽으라면 고등학교 3년이고, 가장 즐거웠던 시기를 꼽으라면 또한 고등학교 3년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일 게다.


4. 

   주된 등장인물은 학교에 고립되지 않은 유지와 하루코를 포함해도 주요한 등장인물은 1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 10명만을 이용해서 작가는 전형적인 고등학생들을 잘도 모아놨다 싶을 정도로 가지각색으로 모아놨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은 고민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 복잡한 기분이 든다. 나 역시도 저런 고민을 했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등장인물도 있는가하면, 실제로 이런 아이가 있었지.. 싶은 인물도 있다. 결국 힘들었지만, 그리고 하루코는 죽었지만 그들에게 학창시절은 역시 좋은 학창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혹독하고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고등학교 3년에 종지부를 찍기는 했겠지만.


   가장 평가가 갈리는 것은 역시 하루코가 아닐까 싶다. 저자와 같은 이름의 인물, 츠지무라 미즈키를 괴롭혔던 하루코. 사과의 말을 건넸던 하루코. 그런 하루코의 행동을 학급위원들은 모두 계산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저자가 마지막에 내려주는 결론은 하루코 문제도 해결! 이라는 종류의 것이다. 솔직히 마지막에 뭔가 갑작스런 급전개를 통해 모두들 사이좋게 잘 지냈답니다. 잘됐네요 잘됐어. 하고 감동적인 결말을 강요하는듯한, 굉장히 전형적이고 의도가 잔뜩 묻어나는 결말은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다들 결말이 조금 아쉽다고 말은 하던데 실제로보니 소설 두권 반 정도의 분량 내내 힘들게나마 잘 끌고오던 소설의 기장감을 허무한 결말로 갑자기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그렇게 모두 비판적이었던 하루코에게 갑자기 매년 성묘까지 가면서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고(물론 이것은 미즈키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카노가 사카키를 찾으러 갔을 때 마지막 환영인지 뭔지 모를 하루코와 마주쳐 서로를 보며 웃는 장면은 도대체 이게 뭐지... 싶을 정도다.


5.

   세 권이라는 분량이 조금 길긴 했지만 나름 재밌었음. 아 뭔가 이 책 읽으니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 아니 필요없고 대학생으로만 돌아가고 싶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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