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의 의미

1.

 얼마전부터 Wunderlist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 어플이 존재한다는건 얼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딱히 설치할 이유가 없어서 깔지 않고 놔두다가, 곧 내 일상패턴에는 GTD방식이 맞다는걸 깨달았다. 그래서 Wunderlist를 깔았다. 아이패드, 컴퓨터, 핸드폰에 싹 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단순히 할 일을 정리해두는 용도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 같아 몇 가지 카테고리를 더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블로그 포스팅이었다. 문득 문득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글로 바꿔보고 싶어서. 그렇게 쌓고 쌓다보니 어느새 17개가 쌓였다. Wunderlist를 사용한 이후로 저기에 올려둔 글감을 글로 만드는건, 이게 처음이다. 생각보다 글쓰기가 안됐다.


2.

 솔직히 말해서 오랫동안 글을 쉬었다. 입대하고 나니 글쓰기라는 내 나름의 재주는 그다지 쓸만한 곳이 없었다. 부대 안에서도 그다지 인정받는 글쓰기는 아니었다. 훈련소에서 겪었던 일은 군대 내에서 글쓰기라는 역량을 억누르는데 일조했다. 그래서 글을 접었다. 일상이 바빠지면서 글을 쓸 시간은 더더욱 줄어들었고, 그것보다 먼저 글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읽지 않으니 쓸 수 없었다. 그게 나의 한계였다. 나에게 독서는 읽기 위함이자 쓰기 위함이었고, 읽기를 멀리하자 자연스레 쓰기도 멀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글과 멀어졌다.


 허지웅의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 서평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나는 나의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이 있고 나름의 정체성이 있다. 적어도 내가 글만큼은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쓴다, 라고 인정받을 자신이 있었다. 항상 겸손을 가장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 그것이 내 본심이었다. 그런 자부심, 그런 정체성은 이제 희미해서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가 됐다. 글은 이미지만 남아서,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쓰지 않는게 일상처럼 되버렸다. 하루 하루를 그저 시간을 보내며 살았다. 글쓰기를 중심에 놓지는 못했을지언정 결코 글을 내 인생의 변두리로 밀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글을 밀어냈다.


3.

 그러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건 역시 허지웅의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고 나서다. 그게 허세든, 거짓이든, 위선이든, 또는 그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종류의 것이든간에, 그의 글은 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막연히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블로그에 먼지를 닦아내고 싶었다. 그 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던 터라 자연스레 무대는 다시 블로그가 됐다.


 그렇게 나는 블로그로 돌아왔다. 꽤 오랫동안 방치해놨던 것 치고는 나름 모양을 잘 지키고 있었다. 아직 모두의 발길이 뚝 끊긴것도 아니었고(이건 한동안 내가 정보를 올리는 블로그를 끌고 왔던 덕도 크다), 다행히 블로그 자체도 날아가지도 해킹당하지도 않고 그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4.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려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블로그는 이런 저런 모습을 거쳐왔다. 네이버에서 하던 시절에는 주로 불펌형 블로그였다. 수많은 블로거들의 글을 스크랩하고, 이미지를 딴 다음, 스크랩한 글은 지우고 내 블로그에 내가 다시 글을 썼다. 그런 식으로 내 블로그의 흑역사는 완성되가고 있었다. 100% 불펌형 블로그. 그 때는 사실 그냥 글쓰기가 좋았다기 보다는 설정놀음에 빠져서 소설 쓰기를 좋아했던 때였다. 그런걸 가지고 블로그를 굴리다가, 점점 정보를 올리는 블로그가 됐다. 딱히 어떤 타겟층을 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필요로 했을 뿐이었다. 우연찮은 기회에 티스토리로, 다시 텍스트큐브닷컴으로 옮겼다가 또 다시 티스토리로 돌아왔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점점 정보를 올리는 블로그에서 내 일기장과 같은 블로그가 됐다. 다른 사람들로 치자면 일종의 싸이월드같은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싸이월드처럼 여기에 내 사진을 올리면서 그렇게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의 블로그는 내 취향의 변화, 취미의 변화, 감정의 변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끔 글을 되돌이켜보면서 아니다 싶은 글을 많이 쳐내서 글 번호는 2100번을 넘어감에도 남은 글은 400개도 채 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넘겨보면 아, 이땐 이랬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그 때 그 때 내가 뭘 사고 싶어 안달이 났는지, 내가 뭐에 그렇게 빠져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게 바로 이 블로그다. 


5.

 글이 옆으로 많이 샜는데, 그래서 내게 결국 블로그는 어떤 의미일까. 나는 전업 블로거도 아니고 하드 블로거(?)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오랫동안(아마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가지) 내 일상의 중심에는 블로그가 있었다. 그런만큼 내가 의도치 않게 일종의 아카이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카이브로서의 블로그. 이건 얼마전, 내가 우연찮게 방문했떤 한 블로그에서 본 말이다. 사실 나는 많은 글들을 지워버려서 아카이브라고 부를 정도로 거창한 종류의 것은 못되는 것 같지만.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된다. 지금까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것인지, 다른 사람이 읽을 글을 쓸 것인지. 텍스트큐브닷컴에서는 블로그에 SNS의 기능까지 몽땅 밀어넣었으므로 당연히 전자의 것에 가까웠다. 이제는 다시 후자의 것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한동안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보자.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여기에는 조금의 아쉬움도 있다. 이제는 블로그와 SNS가 완전히 따로 떨어져나간 느낌이다. 사실 그건 티스토리 특유의 색채이기도 하고. 텍스트큐브닷컴, 네이버 블로그, 이글루스같은 곳은 비교적 교류하기 편하게 되어있고 실제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티스토리는 그렇지가 않다. 각자의 글을 각자가 풀어놓는 느낌이 강하고, 아무래도 교류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여기도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오르면 훨씬 쉬워지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정한 방향으로 블로그를 끌고 나가다보면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뭐 어떻겠나. 한번 끌고 나가보는거지. 지금까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막연한 독자들을 위해서 의미없는 글도 많이 썼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리라. 지금부터 나는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 그런 작은 다짐을 해본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이미지 맵

    글/글로 돌아오다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