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 일상

1.

 얼마전에,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법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사실 그런 내용을 들을줄은 상상도 못했던 강의였다. 강의라고 부르기엔 좀 뭐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육 정도였을까. 아마 그러라고 초청한 시간이 아니었던 것 같긴 한데 교육 온 사람은 주제와 관련있는 이야기보다는 인생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다 끝나고 나니 곱씹을만했다. 그러니까 요지를 꼽으라면 매사에 최선을 다해라, 나중에 무언가가 되고 싶다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라...라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서고 싶다면, 나중에 자신의 위치를 모두가 인정할만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줘야한다는 것.


조금 더 다듬자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기억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이야기일터다. 그런게 성공의 비결일 수도 있겠지.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자세와는 꽤나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지극히 정석적이고 지극히 교과서적이며 다분히 꼰대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이 발언이, 그래도 묘하게 울림이 있었던건 왜일까.


2.

 인생, 리더십같은 종류에 관한 강연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일단 하나는 워낙 그런 종류에 거부감이 커서였다. 사실 기업에서 그런 강연이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기업긔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라는 인식. 그리고 자기계발서는 현대 출판업계의 불쏘시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였다(물론 많은 자기계발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출판시장에서 자기계발서 전체를 놓고 보자면 그런 책들이 더 많다는 데에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 나에게, 이제와서 그런 교육이 무언가를 느끼게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웃긴 일이기도 하다.


 뭔가 요즘은 갑갑하다. 내 주변에서는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 같은데 나 혼자 표류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여유롭게 있어도 되는걸까? 하는 미묘한 불편함. 지금은 괜찮잖아, 하는 조금의 자기위로. 뭘 해야할지 전혀 모르겠어, 하는 조금의 혼란. 그런 것이 이리저리 뒤범벅이 된 요즘이다. 공부를 해도 공부를 한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놀아도 논 것 같지가 않고. 딱히 신나는 겁도, 딱히 화가 나는 일도 없고. 일상에 파묻힌다고 하는게 이런 것일까 싶기도 하고. 소소하게 즐겁고 슬프고 짜증나고 스트레스받고 하는 일들은 있찌만 그게 결과적으로 일상을 흔들어놓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나는 아직도 답을 내지 못했다. 지금의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나는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


3.

 요즘 내 일상의 한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역시 아르바이트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갔다. 어느 순간부터 꽤나 익숙해진 학원. 학원 아르바이트 경력만 다 합쳐도 이제 1년을 넘어설 것 같은 시점. 문득 한 쪽 벽에 '서울대학교 로스쿨 합격'이 붙은 것을 봤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내 학교에 큰 불만이 있는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대놓고 무시당할 정도의 학교도 아닌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학원에서 오랫동안 공부했고 또 학원에서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보다 좋은 학교에 가는 수많은 학생들을 보면서도 그다지 찌릿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없었다. 그래, 너는 서울대 가는구나. 그래, 너는 연고대 가는구나. 그냥 그랬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재수를 끝내고 나오는 시점에서 재수반에서 연고대도 가고, 서울대도 가는걸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그건 오래 가지도 않았다. 나는 나 나름대로의 합격의 기쁨을 누리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런 내가 학교에 품고 온 꿈은 로스쿨 진학이었다. 로스쿨에 진학해서 법을 배우고 싶다. 솔직하게 말하건대 아직 어떠한 법학을 배워나가야할 지는 잘 모르겠다. 그 전까지 흐릿하게나마 그려놓았던 법학의 모습은 군생활을 하면서 많이 옅어져서 이제는 조금은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좋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것이고, 로스쿨 진학은 그런 나의 꿈과 가능의 범주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살펴보건대 지금의 내가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합격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할 것이다. 그냥 왠지 싱숭생숭하다. 부럽기도하고.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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