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야 리사, <불쌍하구나?>

저번에 썼던 황정은 작가님의 <야만적인 앨리스씨>와는 영 반대인 소설입니다. <불쌍하구나?>는 제가 우연히 봤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쓴 와타야 리사 작가님(외국인 이름 뒤에 작가님을 붙이는건 항상 어색;) 소설 중 가장 최근에 발매된 한국 소설입니다. 놀러간 도서관에서 발견해서 빌려온 책입니다. 이런게 또 깨알같은 도서관의 재미지요. 그래서 요즘은 더 도서관에서 빌릴 책을 미리 안 정하고 가는 것 같아요. 대개는 그래서, 읽지도 못할 책을 빌릴 수 있는 한도까지 꾸역 꾸역 빌려오게 되지만.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불쌍하구나?>는 꽤 두께도 있고 양장으로 깔끔하게 나온 책인데(이런 표지의 느낌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전체가 다 <불쌍하구나?>라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불쌍하구나?>가 2/3, <아미는 미인>이 1/3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자님과 같은 의견으로, <아미는 미인> 쪽이 더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도 있었고... 미묘한 여성의 심리를 대놓고 까발리는 내용..이라는 평가도 많고 아무래도 여성쪽이 조금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인듯 하지만 저도 흥미롭게 읽었어요. 뭐, 따지고 보면 <불쌍하구나?>든지, <아미는 미인>이든지, 모두 비슷하네요. 여성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란건.

 

작가가 여성이 점도 있겠지만, 처녀작이었던 <인스톨> 때부터 해서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나 <꿈을 주다>, 그리고 이번 단행본에 소개된 2편의 소설 역시 모두 주인공이 여성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다른 소설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여성의 심리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요. 사실 그동안의 소설 중 처음 두 작품,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나 <인스톨>같은 경우 제가 받은 느낌은 미묘하다...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물론 재밌었고 흥미로웠기 때문에 계속 작가 이름만 보고 반갑게 읽을 수 있었고, 실제로 우수한 작품이었지만, 그 이후의 <꿈을 주다>라던지 <불쌍하구나?>같이 명확하고 뚜렷한 메시지..를 던지지는 않았었다고 봅니다. 물론 메시지가 없는 소설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전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남자친구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하며 고민하고 있는 쥬리에의 이야기는 물론 재밌었지만, 뭔가 와타야 리사의 느낌과는 조금 동떨어지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물론 이건 분명 와타야 리사라는 작가의 성숙 과정이고 또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걸 부정할 수 없지만요. 그에 비해 그 뒤의 <아미는 미인>은 오히려 와타야 리사의 느낌이 잔뜩 묻어나는 소설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와타야 리사가 아니면 이런 글은 쓸 수 없을거야! 라는 느낌. 그래서 이 포스트의 제목도 책의 제목인 <불쌍하구나?>를 따랐지만, <아미는 미인>에 대해서 더 큰 분량을 할애하게 될거에요.

 

 

 

일단, 무엇보다도 <불쌍하구나?>라는 소설은, 딱히 이야기할게 없는 소설이거든요. 와, 정말 시원하다! 라는 느낌이 강한 소설. 그,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뭐 그런거요. 질질 끌려다니던 캐릭터가 딱 변신해서 확 쏘아붙일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요. 이 소설은 사실 대부분의 내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쥬리에의 답답한 모습이 드러나지만, 결국 그런 답답한 모습도 마지막 엔딩을 위해 존재했었던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듯한 느낌. 사실 기다리고 있었고 오랜만에 한국에 소개된 와타야 리사의 소설 치고는 조금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결코 재미없었다는 건 아니고.

 

<아미는 미인>은 아미라는, 아이돌 성향이 짙은 친구를 가잔 사카키 란이라는 여성이 겪는 이야기입니다. 아미에 대한 사카키의 복잡한 심경이 소설의 대부분을 이뤄요. 아이돌처럼 마냥 예쁘고, 마냥 순진하고 천진한(그러나, 그래서 오히려 가까운 사람에게는 상처를 주고마는)아미는 사카키를 더없이 좋아하지만, 반대로 사카키는 아미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미는 사카키에게 더욱 더 친분을 표시해요.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만에 사카키와 만난 아미는 자신의 약혼자를 소개해요. 다카시라는 남성으로, 음악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무언가 DJ류에 속하는 것 같고, 또 이상한 종교(또는 사상?)에 심취해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조금은 건들거리고 한 때는 나쁜 짓도 했으며 지금은 자신만의 세계를 확실하게 갖춘... 뭐 그런 사람이요. 아미의 주변 사람들은 그런 결혼을 말리려고 하는데, 사카키는 복잡한 심정에 빠집니다. 이 결혼을 축하해줘야하나, 아니면 말려야하나. 거기에는 단순히 친구의 결혼이니까 축하해줘야한다, 라는 생각만이 들어있는건 아니에요. 작중 등장인물인 고이케의 생각대로, 그건 일종의 복수일 수도 있죠. 그런 고이케의 지적을 들은 사카키는 더욱 혼란스러워해요.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아미를 달래주고, 아미는 잠이 들어요. 그 뒤에 아미를 데리러 다카시가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여기에서 다카시라는 캐릭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작품 속에서 아미를 막대하는 것만으로 묘사되던 다카시는 아미가 잠들어있는걸 보고 깨우려하다가 사카키가 자제하자, 그대로 참고 사카키와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집을 나서요. 깨고 나면 자신에게 말해달라고 하면서요. 그러면서 씁쓸하다는 듯이 자신에겐 잘 자고 있다그랬다는, 변명과도 같은 말을 흘려요. 이건 어쩌면 다카시의 또 다른 면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다카시와 이야기하던 사카키는 한가지 중요한 점을 깨달아요. 아미는 그동안 누구에게나, 모두에게나 사랑을 받아왔고 거기에 지친 나머지, 그녀가 좋아하는 인물은 자신을 멀리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런 인물이라는 사실을요. 동성친구로서는 아미의 유일한 친구나 마찬가지였던 사카키였고, 이성으로서는 그게 다카시였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아미는 단순히 '둔함, 천진난만'한 캐릭터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작품 속에서는 계속 상황파악도 못하고 둔한 아미가 사카키가 자신을 꺼려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처럼 묘사되지만, 오히려 그래서 사카키를 좋아했던 것이라면 명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이야기겠죠. 이성적으로든, 본능적으로든 말이에요.

 

과연 그건 또 어떤 비극일까요.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너무 많은 나머지 그런 사람을 자신은 좋아할 수 없고, 자신을 멀리하려하고, 부담스러워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마음을 내어줄 수 있다니. 그건 어떻게 보면 또 기약없는 마음, 기약없는 사랑이겠구나.. 싶더군요. 자신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게 되면, 아미는 그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할까요. 소설 속이 아니라면, 실제라면, 이제 사카키 란은 아미를 응원하기로 했고 아마 아미에게 한결 더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대해줄 겁니다.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된건 이미 그녀가 자신의 남자친구(나가노)와 교제하기 시작한 시점이지만, 이제는 부담스럽지 않다의 수준이 아니겠죠. 과연 그때, 아미는 그녀를 어떻게 대하게 될까요. 오히려 아미는 그런 그녀와 다시 거리를 두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처음 마음을 내어줬다면 그 이후는 상관없는 걸까요.

 

결국 아미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가며 다카시와 결혼을 합니다. 부부의 유일하다시피 한 응원자인 사카키 란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미, 너의 결혼 생활은 아마 많은 고생이 기다릴거야'라고 생각하죠. 아마 그럴겁니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인 두 사람의 만남인걸요. 그래서 더 뒷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다카시는 아미에게 마음을 열까요. 아니, 아미는 다카시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길 기대하기는 할까요. 고이케의 말대로 아미는 결혼생활에 지쳐 그 빛을 잃고 마는 걸까요. 그 뒤에, 이제 모두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게 아니게 된 아미는, 다카시와의 결혼 생활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미는 미인>을 더 좋아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와타야 리사라는 느낌이 강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어떤 느낌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요. <불쌍하구나?>는 물론 독특하고, 이런 소설 역시 와타야 리사이기 때문에 써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아미는 미인>은 <인스톨>이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에 훨씬 가까운 소설이라 더 좋았습니다. 제가 처음 반했던 와타야 리사라는 작가는 이랬지, 싶은 느낌이었달까요. 앞으로도 이런 와타야 리사의 소설이 한국에 좀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작가에요. 그런 의미에서 <불쌍하구나?>같은 소설을 쓰는 와타야 리사든, <아미는 미인>같은 소설을 쓰는 와타야 리사든, 그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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