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욱, <이라크 전쟁>

와, 정말 이 책만큼은 빨리 읽고 서평을 쓰고 싶었다. 서강대 정외과에서 인기가 넘치시는 ㅋㅋㅋㅋ 이근욱 교수님의 저서, <이라크 전쟁>. 내가 알기로는 이게 첫 책은 아니다. 첫 책이 <왈츠 이후>던가? 어쨌든 정치학에 폭넓은 관심을 쏟아부으면서 동시에 정치학과로 진학할 때까지만 해도 딱히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건 아니었는데, 이번에 허정수 교수님의 정치학 개론을 들으면서 가장 관심있는 부분은 국제정치학 쪽이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 국제정치이론 수업을 하시는 이근욱 교수님의 수업을 너무 너무 듣고 싶었고, 그래서 이근욱 교수님이 쓰셨던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싹쓸이해서 ㅋㅋㅋㅋㅋ 읽기 시작했다. 그 첫 책이 이 <이라크 전쟁>이다.


이라크 전쟁의 본질과 변화

우선 다 읽고 나서 가장 머릿속에 인상깊게 남은 내용은 우리가 이라크 전쟁을 얼마나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가다. 이근욱 교수님이 서문에서 지적하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알려진 이라크 전쟁은 어디까지나 작전 초기 상태에 지나지 않으며, 이후에 끊임없이 변화했고 후에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밝혀진 이라크 전쟁의 면모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예컨대 한국어판 위키피디아에 이라크 전쟁의 설명은 이라크 전쟁을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 Freedom)과 동의어로 설명하고 있고, 2011년 종전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라크 자유 작전은 2010년 8월 19일 미국의 마지막 전투여단이 이라크에서 철수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종료된 작전이며, 이후의 작전에 대해서는 미군 군사고문단을 중심으로한 새로운 새벽 작전(Operation New Dawn)이 전개되었다고 서술해야 옳다(이근욱, <이라크 전쟁> PP. 318~319). 물론 전쟁이라 부를 수 있는 미국 전투병력이 배치되어 수행한 작전은 어디까지나 이라크 자유 작전까지지만, 이라크 전쟁과 이라크 자유 작전을 동의어로 표현하는 것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함께 이라크 전쟁은 국제정치학계에서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이용한 개입이 크나큰 한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국 킹왕짱!! 미국 군사력 무시하나여?"하는 생각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단순히 장비, 병력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병력 한 명 한 명의 훈련 정도까지를 포함하여)은 초기 부시 정부가 내세웠듯이 적은 병력으로 이라크 전쟁을 단기전으로 끝내겠다는 계획을 이뤄주는 듯 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전쟁에 나서면서 내세웠던 2가지 명분(생화학무기 및 핵무기의 제거와 민주주의 이라크 정부의 수립) 중 전자를 초기에 잃어버렸으므로, 전쟁은 자연스럽게 민주주의 이라크 정부 수립이 되어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철저하게 상황파악에서 오류를 범했으며, 잘못된 상황판단과 정보를 기반으로 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이라크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다.


이라크 전쟁의 가장 인상깊은 점은 이라크 전쟁이 단순히 미군 Vs 이라크 독재정권의 구도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명이 필요하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독재정권이 무너진 후 이라크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내전 상태로 돌입했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시선이 반영된 기사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알려졌으므로 전쟁이 미국과 이라크 저항세력의 양자 구도로 흘러간 전쟁 초기 상태가 끝까지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했고, 미군/수니파/시아파/쿠르드 -> 미군/수니파 저항세력/(수니파)알카에다/시아파 민병대/이라크 보안군(시아파 중심 정부세력)/쿠르드 등으로 내전 양상을 갖추어갔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전쟁이 내전 상태로 넘어갔음을 계속해서 부정했고(전쟁 종반에 가까워져 퍼트레이어스가 인정하기 전까지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계속 이어진다), 그에 걸맞는 작전을 구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라크 전쟁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라크 전쟁은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흘러갔다. 미군은 단기전으로 끝내려고 했던 전쟁이 장기전화됨으로써 수많은 문제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그러한 상황 변화(장기전화, 내전화)에 걸맞는 작전을 적절하게 구사하는데 실패하여 전쟁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국제 여론은 물론 국내 여론까지 들끓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라크 전쟁은 끊임없는 잘못된 상황 판단과 의사 결정으로 점철되어 파국으로 치닫았다. 한편 이라크 내부 세력들에게도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빠르게 전개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라크 민간인이었으며, 그들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무기를 잡은 이들로 인해 점점 더 피해자가 커지는 위치적 군비경쟁과 같은 상황이 심화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악순환 속에서 이라크 전쟁은 나쁜 방향으로 급발전했다.


전쟁의 추악함, 이라크와 미국

또 하나는 이라크와 미국이 모두 가해자인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쟁은 미국이 개입함으로써 발발한 것이고 적절한 대책 없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혼란을 초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의 추악함만큼이나 저항세력의 추악함 역시 정점에 달했다. 하루에 1건 정도의 공격이 발생하는 것이 매우 안정적인 지역이라고 표현되었을 정도였다. 이라크 전쟁 이야기를 할 때면 미군의 부정적인 측면과 테러리스트의 자살 폭탄 테러가 부각되는데, 이러한 면모는 전쟁의 추악함을 까발리기에 충분했다. 


이근욱 교수님이 지적하시는 바와 같이, 미군은 정의로운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겠다는 대의명분과 모순되는 미군의 이라크 민간인 공격 및 고문 행위 등을 자행하고, 지역 사령관들이 "남성을 모두 체포할 것" "적군은 모두 사살할 것" 등의 명령을 하달함으로써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더이상 미군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이미지를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으며, 이라크 내의 민간인 지지를 잃었다. 한편 이라크 저항 세력은 자기 세력(수니파, 시아파, 쿠르드, 특히 수니파와 시아파. 수니파와 시아파라고 분류되는 세력은 아랍인이며, 쿠르드족은 아랍인과 인종은 다르며 종교적으로는 수니파이다)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세력의 민간을 납치, 고문, 살해했다. 


정치학개론 시간에 전쟁억지이론을 배우면서, 전쟁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를 "전쟁을 통한 이익을 전제로 하는 합리적 행위"라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미국은 과연 어떤 이익을 전제로 개입하기 시작했을까? 아니면 정말로 미국이 정의감에 불타올라 개입했던 것일까? 어쨌든간에, 미국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서 전쟁에 참전했을 것이다. 미국은 물론 그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기대했던 이익을 얻지 못했다. 전쟁의 결과 미국은 막대한 비용과 인명 손실을 경험했고, 그것이 21세기의 미국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고 평가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미국의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는 빠르게 추락했고, 중국의 부상과 함께 단극 체제에서 양극체제로 넘어가게 되는 과정에 있다고 평가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미국이 합리적인 이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윗 사람들' 또는 '국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PTSD에 시달렸다. 


거기에서, 나는 경제학을 공부할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세상의 모든 행위를 숫자로 환산할 수 있을까? 비용과 편익으로 바꿔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예컨대, 한 명의 병사를 키우기 위해서 얼마가 지출되고 그만큼의 병력이 죽은만큼보다 더 큰 이익을 얻는 전쟁이 있었다면, 그 전쟁에 참전했음을 우리는 합리적인 행위였다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 합리적이라는 것은 정말로 그런 것일까? 절대 학문의 세계에서는 가질 수 없는 의문을, 여기서 조그맣게 품어본다.


전후 한국과 이라크, 이라크 테러리스트에 대한 시선

엄밀히 말하면 한국과 이라크를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식민지로서 미군이 개입한 시점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또다른 차이점은 이라크에는 미군만이 개입하지 않았고, '다국적군'이라는 이름으로(물론 절대적으로 미군 중심이 맞다) 여러 국가의 군대가 투입되었다. 그러나 미군의 대차게 삽을 펐던 전후 한국과 미국의 이라크임시행정청 및 이라크주둔 다국적군 사령부의 모습은 상당히 닮았다. 초기 총선까지의 과정, 헌법에 대한 논란, 반대세력(우리나라에선 김구로 대표되며, 이라크에서는 수니파 세력)의 총선 참여 거부. 그리고 그 근본적인 원인은 다르므로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우리나라의 소위 '우파'와 '좌파'의 대립과 이라크 정부 수립 과정에서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알력 다툼. 전반적인 모습은 꽤 닮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의 운명을 다른 국가들이 개입해 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도를 넘은 행위인가에 관해서, 또는 그러한 이라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비틀어져있는가에 관해서 말이다. 재수학원에서 아랍어를 배우면서(물론 배운 아랍어는 매우 피상적이고 전적으로 수능을 위한 아랍어였다) 아랍 문화에 대해서도 조금씩 배웠는데, 그 때 들었던 말이, 아랍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가에 관해서였다. 물론 사람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그들도 사람이고, 이라크 인구의 절대 다수도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민간인이다. 민간인이었던 사람을 끊임없이 테러리스트가 되도록, 저항세력이 되도록 몰아넣은 것은 오히려 전쟁 상황이엇지, 그들이 전쟁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전후 한국에서 미군정의 삽질이 지금에 와서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이라크에서의 미군 개입도 비슷했다. 이라크인의 생활수준은 빠르게 추락했다. 상하수도, 전력, 실업률, 어린이 영양실조 비율 등 전반적인 이라크인의 생활수준은 미국이 그렇게 비판하던 '후세인 독재정권'때보다 훨씬 나빠졌다. 물론 독재정권은 나쁘고 그것이 무너지는 과정에서의 혼란 속에서 생활 수준이 나빠질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민간인들은 그렇게 바라보지 않을게 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라크인들은 미군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미군이 나름 머리를 굴려 썼떤 수많은 정책들은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하고 강행되기도 했다. 이라크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비슷하다. 그런데도 이라크인 = 테러리스트 또는 저항세력 동조자, 라고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시선은 서글프기까지하다.


빛을 말하는 미국의 삽질

사실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제일 인상깊었던건 미국의 선진국답지 않은 무한 삽질이었다. 어떻게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정책 결정 과정이 저렇게 삽질을 계속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부시 행정부의 개전 자체가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서 이라크가 생화학무기 및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뿐만 아니라 상황이 급속하게 내전화되고 이러한 상황이 현장 지휘관들로부터 스믈스믈 나올 때도 외면하고 끝까지 내전 상황까지 치닫지는 않았다고 부정했다. 그러한 피해는 전쟁의 교전당사자를 비롯한 민간인들이 모조리 뒤집어썼다. 지금에 와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비롯한 부시행정부의 전반적 무능(..) 덕분이었다. 왜 그렇게 부시 행정부가 욕을 먹나했더니, 여기서만 봐도 대충은 알겠다 싶었다.


한 권의 알찬 자료집같은 책

책의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 책은 전반적으로 한 권의 자료집같은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불편하기도 한게, 모든 주가 각주가 아닌 미주로 처리되어 있어서 책의 앞뒤를 자꾸 오가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내용을 보충설명한 주는 각주로, 출처를 밝힌 주는 미주로 처리했더라면 한결 낫지 않았을까 싶다. 우선 16장에 결론까지해서 총 17개 챕터로 이루어져있는데 각 챕터마다 주가 40개는 기본으로 넘기다보니 미주 부분만 50쪽이 넘어간다. 이걸 계속 오가면서 보자니 책읽기에 거슬리기까지 했다. 물론 덕분에 책은 전반적으로 깨끗한 느낌으로 잘 나왔지만.


그런 구성상의 문제점 빼고는 전반적으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앞에서 한국에 알려진 이라크 전쟁이 너무 피상적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 역시도 이라크 전쟁이란 그런거겠거니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읽는 내내 계속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기분이었다. 전쟁사 덕후 분들께도 좋은 책이지 싶음. 이라크 전쟁을 깔끔하게 잘 정리한 책이다. 물론 교수님은 전쟁사 수업도 하시는 분이시기도 하고(서강대학교 교양학부 '세계 대전의 이해'). 물론 전쟁사에서 전쟁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국제정치학적인 접근이 주된 부분이겠지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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