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자보를 쓰다

첫 자보를 썼다. 정치적인 성향이 아주 짙지는 않지만, 그러니까 조금은 가치 중립적으로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쨌든 탈핵에 관한 자보. 사실 이건 조금은 무관심하게, 조금은 의무적으로 <목여반>에서 했던 세미나 내용을 그냥 옮기는 일이었다. 사실 글은 그냥 편안한 기분으로 썼던 컴퓨터 초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하다보니 조금 북받치는 게 있었다. 순간, 뭔가 짜증 비슷한게 났다.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불합리한가, 이 세상은 왜 이렇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걸까. 이건 리뷰를 아직도 쓰지 못한 <레즈비언의 정치 도전기>를 보면서 나왔던 시위 장면에서도 느꼈던 건데, 


사실은 겁도 난다. 특히 일베같은 사이트를 들어가 볼 때, 나는 더 겁이 난다. 그 사람들 말이 맞을까봐 겁이 나는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저렇게 당당하게 주장하는데도 내겐 얼척없는 소리로 들리는 것처럼, 내 주장도 그렇게 들리는건 아닐까. 그럼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학문적인 탐구가 필요한걸까? 내 정의는, 무엇이 어떻게 뒷받힘을 해줘야 하는 것일까? 뭐 그런 느낌이지. 지영이한테 성준이가 이야기할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진근형한테 들었던 이야기랑 얼추 비슷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가만히 보고 있을 때는 그저 평온하게 돌아가던 학교가 내막을 들춰보고 나니 권력 암투의 장이었다, 뭐 그런 느낌. 그러니까 한 마디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고. 이 학교가. 나는 되게 평화롭고 좋은 학교분위기로만 생각했었으니까.


나는 이렇게 운동권에 발을 담근걸까, 아닌걸까? 내가 알바연대를 잠깐이나마 들어가서 첫 모임에서 느꼈던건, 진보 세력도, 그러니까 운동권도 알고 있구나.. 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운동권도 알고는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모임이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비춰지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을. 옛날처럼 팔뚝질해가며, 빨간끈 머리에 매가며 하는 것에 대한 안좋은 시선들을. 알바연대에서 느꼈던 운동권의 그에 대한 대응은, 그렇게 급진적이고 행동적인 면모를 뒤로 미루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직접 극복해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안좋은 시선을 감수하겠다는 이야기. 어떻게 보면 대단하고 어떻게 보면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뭐, 중요한건 운동권인가와 무관하게 자보가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는거, 그리고 조금은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는거.


내가 그동안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왔던 운동권에 대한 의식을 조금은 고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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