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내가 재수를 끝내고 이 학교에 들어온지 어느새 2달이 되어간다. 얼마전에, 정말로 아무 이유없이 학교 곳곳에 써진 학교 교표며 학교 이름들을 보면서 "아..."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때 이 기분을 어딘가에 적어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기회가 안되서 못적어두고 있다가 블로그에라도 살짝. 사실 플래너 어딘가에 적어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워낙에 개인적으로 적어두는 공간이 적은 플래너다보니 블로그에 주절주절. 요즘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불타오르고 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엄밀히 말하면 처음부터 가고 싶었던 학교는 아니었다. 우리 학교의 꽤 많은 학생들이 그렇겠지만(아닌가?) 더 높은 곳에 있는 학교를 바라보다가 성적에 맞춰서 눈을 조금 낮춘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학교에 온 것을 후회하거나, 반수를 해서라도 학교를 옮겨야겠다거나, 애교심이 조금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학교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고, 학교의 태도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교를 좋아하는 입장이다. 학교 생활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고, 때때로 대학생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이 생활 나름의 묘미인 것 같기도 하고. 어디까지나 1학년 1학기생의 즐거움을 즐기고 있다. 


학교에 들어와서 섹션활동(다른 학교의 반과 비슷한..)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동아리에서 보냈고, 또 보내고 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섹션에는 잘 동화되지도 못했고, 다들 열심히 즐기면서 하고 있는데도 왠지 나는 섹션 활동을 자꾸 제3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이상으로 동아리 활동이 즐겁고 재밌었던 것도 있고. 예나 지금이나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 보다는 소규모로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처음에는 챈스(C.H.A.N.C.E)라는 교육봉사 동아리에도 관심을 가졌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80명이 넘는 규모였다고. 안들어가서 다행인 것 같은 느낌이도 하다.


어찌되었든 간에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예년 이 때였다면 평일주말 없이 미친듯이 자습에 시달리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아직 학원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고. 정확히 언젠지는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부터 작년 수능을 끝마치기 전까지 피로한 게 너무 기본적인 상태였다. 조금의 시간이 주어져도 뭘 하고 놀아야할지 모르겠어서 결국 다시 공부를 하는, 그런 상태였다. 그러던 생활을 끝나도 대학생이 되었다. 재수가 많은 것을 얻게 해준다고 하는데 솔직히 아직까지, 나는 재수가 나에게 얼마나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무엇이었냐고 물어보면 그냥 무미건조하게 "굳이 뽑자면 재수쯤..?"이라고 대답을 하곤 하지만, 정말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재수였을까?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사실 이런 생활은 오래되지 않을거다. 보통 남자가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는건(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보통 군대가지전 두세학기라고 하는데 나는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간다. 군대에 갔다와서 놀지 않을거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은 못하겠지만.. 여러가지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 계획들을 실천하다보면 녹록치는 않을 것 같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가졌던 생각보다 사실 대학에 들어와서 더 하고 싶었던게 많아졌고, 선배들과 지내면서 더 많아지고 있는 중이지만, 그만큼 고생도 많이하는 대학생활이 되고 있다.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만 다 해도 4년 8학기는 너무 짧지않나 싶을정도로(그렇다고 해서 그 보다 학교를 더 다니고 싶지는 않지만).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을 하면 되게 아쉽다. 중간고사가 꺾였으니, 이제 1학기가 2달 정도 남았다. 그동안 나는 되게 수동적으로 학교 생활을 했다. 뭐랄까 뭣모르는 새내기다운 생활이라고나 할까. 선배들이 하라고 하면 그 때 뭔가 하려고 했고, 내가 뭔가를 추진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얼마전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뭔가 해보고 싶은 게 더 많아지긴 했는데... 과연 어떨까. 나이는 같고 현역으로 들어온 12학번 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생각이 짧은지를 거듭 생각하게 되는데.. 그래서 저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뭔가 선뜻 나서질 못하겠다는 기분이 든다. 


이 글을 시작할 때는 분명히 학교에 들어왔다는 설렘이 주제였는데 왜 이런 푸념에 가까운 이야기로 흘러갔지?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수업의 절반이 이루어지는 K관은 작년에 내가 이 학교에 수시 원서를 썼을 때 논술을 봤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봤던 고사장 앞을 지나가기도 하는데, 그 때 찍어놨던 학교 교표 사진(벽면에 붙어있다)을 보고 지금 내가 보는 K관을 보면 뭔가 참 새롭다. 이 학교에 그렇게 목숨을 걸고, 대학에 들어오면 만사 즐겁기만 할 줄 알았던 때도 있었는데, 어느새 또 지금은 지금 나름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구나.


사실 그 논술은 떨어지고 결국 정시로 같은 학과에 오긴 했지만, 그래서 사실 논술보러 오는 후배들(경쟁이 40:1 안팎일테니 정확히는 "후배x40"정도..)을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군대가 그것보다 더 앞에 잡혀있다. 내가 보는건 15학번 후배들과 함께 다니면서 보는 예비 16학번들의 논술고사가 되겠군.


얼마전에 동아리에 같이 들어왔던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생각했던 것 보다 학교생활이 재밌지만은 않다, 라는 이야기. 나도 동감이다. 그 친구는 사실 이것저것 활동도 많이하고 나보다는 훨씬 제대로 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로서도 만사 즐겁지만은 않은 학교생활이다. 아니, 즐겁지만은 않은게 아니라 대학생만의 괴로움이 꽃피는 학교생활이다. 새내기로서, 대학생으로서 많은 것을 요구받고, 많은 것을 결정해야하고, 많은 것을 걱정해야하는. 그래도 학교에 들어가며 가끔 보는 이름에 설레이는 것은, 내가 이 학교를 싫어하지 않고, 내가 이 학교생활을 나름은 즐기고 있다는 거겠지. 


졸업한 선배들을 보면(재학생시절에 내가 아는 선배는 물론 아무도 안계시지만) 참 미묘한 기분이 든다. 어느새 저렇게 졸업을 하고 직장인이 되어, 서로 연락도 자주 하지 못하고, 동아리 단위로 가끔 모일 때 만나는 사람들. 그렇게 소원해질 수 밖에 없는 관계가 아쉬우면서도, 그렇게라도 모일 수 있는 관계가 부럽기도 하고. 참, 생각이 복잡한 요즘이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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