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쿠라바 가즈키


#2012-04

   사쿠라바 가즈키의 소설이라고 한다면, 우선 <GOSICK>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판되기 시작하던 때 즈음, 3권까지 샀었죠(2권은 읽다가 분실했지만). 라이트노벨을 읽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카도노 코우헤이의 <부기팝> 정도는 다 모으고 싶었는데, 이 시리즈는 끝나지도 않고 잠깐 관심을 끊었던 사이 어느새 저 멀리 달려버렸네요. <고식>도 그다지 인상깊게 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로 시작해서 <반쪽달이 떠오르는 하늘>에서 피크를 찍었던, 제 라노베 독서시즌의 막바지였던 탓도 있고, 제가 읽었던 2권 까지의 <GOSICK>은 전형적인 라이트노벨이었을 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이후에 나오고 있는 종류의 소설들, 정확히는 한 권 한 권 끊어지는 소설들이 오히려 사쿠라바 가즈키는 이런 작가다, 라는 확신을 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그 이후에 접하게 된 <사탕과자 탄환은 궤뚫지 못해>를 통해, 분명히 사쿠라바 가즈키라는 작가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알라딘은 도대체 절판인지 뭔지, '품절'만 띄워놓은채 수개월 동안 사쿠라바 가즈키의 저서들을 입고시키지를 않고 있었고.. 아아 읽어봐야되는데- 읽어봐야되는데- 하다가, 때마침 순천 시립도서관 태깅 작업이 끝나서 빌려왔습니다. 처음으로 집어든게 이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삼끼님(?? March Hare님?)이 별로라고 하셨고- 플롯 자체도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확실히, 플롯은 비슷하네요. 저같은 경우는, 플롯이 비슷해서 좋았던 쪽이라고나 할까. 나기사-모쿠즈와 아오이-시즈카의 포지셔닝은 묘하게 겹치면서도, 또 묘하게 다르네요. 그래도 확실히 그 묘한 긴장감이라거나 그런건, 그러니까 전체적인 느낌은 비슷해요. 복제본? 이라는 느낌. 왜, 그런거 있잖아요. 쓰다보니 비슷한 게 또 써졌어, 그냥 읽어보지 않을래? 하는 그런 느낌의 책.

아, 스포일러 있습니다. 뭐 항상 있는거지만... '_'



   사람을 죽인다, 라고 하는 내용과 어린 소녀, 라고 하는 조합이 만들어내는 그 기묘한 느낌 자체가 이미 두 소설을 비슷한 느낌으로 몰고 갑니다. 거기다 평범할 뿐인 여학생과 굉장히 특이한 또 한 명의 여학생이 펼쳐가는 이야기, 라는 구성 자체도 비슷하죠. 모쿠즈에 비하면 시즈카는 훨씬 정상이지만, 가끔 터뜨리는 그 비정상적인 행동이 사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라는 것도 비슷한 사실이겠죠. 그렇다보니 마치 <사탕과자>의 수정본, 이랄까 좀 팬픽스럽달까 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느낌이냐고 한다면 아마 사탕과자의 틀을 전혀 깨지 못했다라고나 할까요. 사탕과자가 지녔던 달달함과 잔인함의 오묘한 조화도 많이 약해진 느낌입니다. 아, 기본적으로 살인, 이라는 행위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사탕과자>의 두 주인공과 달리 이 쪽은 둘 다 살인에 직접 뛰어들고, 둘 모두 살아서 엔딩을 맞이한다는 것도 차이점이겠죠.

   그렇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건, 그리고 동시에 공감하기도 했었던건, 오히려 시즈카보다도 아오이 때문이었습니다. <사탕과자~>의 경우 나기사의 개인사에 대한 것보다는 모쿠즈의 행적을 따라가는 느낌이 짙었는데, 이 쪽에선 아오이의 분량이 대폭 확대되었다는 느낌? <사탕과자~>가 나약한,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사탕과자 탄환)로는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면, 이 쪽은 조금씩 깨지고 부숴지는 인간관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친했다가도 사건 하나, 말 한 마디로 철저히 깨지는 인간관계, 그리고 그렇게 멀어진 친구들을 볼 때 느끼는 씁쓸함, 자괴감. 이 소설은 시즈카에 대한 내용보다 오히려 아오이의 이런 경험을 그려내는데 열심히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덧붙이자면 무너지는 가정의 모습.. 그리고 회복답지 않은 회복. 아오이의 엄마의 모습은 <고백>에서 슈야의 엄마를 연상시켰던 것 같습니다. 굳이 아오이의 문제 뿐만은 아니었다, 라는 느낌으로 그려지지만.



   개인적으로는 결과적으로 모쿠즈가 죽었던 <사탕과자>와 달리 아오이와 시즈카가 모두 산 채로 끝났다는 점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본심이 아니었던 '살의', 본인이 말하는 '배틀 모드'에서 자신의 새 아빠를 죽였고, 시즈카가 살아남기 위해 고이치로도 죽였지만. 소설은 거기서, 어떠한 결말을 주지 않고, 울면서 자수한다라는 내용으로 끝마쳐지지만, 이들에게는 어떤 미래가 앞에 있는 걸까요. 그렇네요, 참으로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하겠습니다.

    뭐, 뭐라고 해도 비슷한 소설인건 사실이고, 이번에도 역시나 시즈카의 이야기에 아오이가 개입하는 형태로 그려지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시즈카가 살아남는다, 라는 사실만 봐도 결론적으로 구해주는데 실패했던 나기사와 달리 아오이는 성공했다, 라고 할 수 있는 거겠죠. <사탕과자~>에서 강렬한 느낌을 남겼던 "Because I Miss you."처럼, 이번에도(훼이크! 긴 했지만) 인상깊은 대목이 한 구절 있었는데, 시즈카의 (결과적으로는 '부분적인') 거짓말이 밝혀지는 대목. 아오이가 <지푸라기 여자> 책을 발견하는 순간이죠. 솔직히 이 때만 해도, 아, 결국 시즈카가 거짓말한 거였나, 사실은 시즈카가 악인이었나, 하는 오묘한 느낌에 사로잡혔었어요.

   이번에도, 인간관계를 다룬 것 외에도 '동굴 이야기'로 표상되는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번처럼 결코 권할 수는 없는, 그런 성장통. 성장 소설들이 그동안 써온 이야기가 이런 이런 성장통을 이렇게 이겨내고 이런 사람이 되었답니다~라는 계통이었다고 한다면 사쿠라바 가즈키의 <사탕과자~>와 <소녀에게는~>은 이런 이런 성장통을 참혹하게 겪어내고 말았답니다, 끝! 이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출판량은 저조했던듯, 더이상 사쿠라바 가즈키의 책들이 출판되지 않는게 아쉽네요. 노블마인, 대원씨아이같은 회사들이 뛰어들어서 열심히 번역해줬는데. 왠지 일본어를 배워야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 라는 느낌? 아, 영어도 못하는 주제에, 당장 급한 영어는 내팽겨치고 무슨 일본어야, 하면서 무기한 보류하고 있었는데.. 그러고보면 이렇게 조금씩, 좋아하는 일본 작가 명단을 늘려가는거구나, 싶기도 하고요. 우선은 와타야 리사 신간도 기다리고 있는데, 이것도 번역될 조짐이 어째 영... 점점 일본 소설 번역되어 들어오는 양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흐아흐아, 일본어를 배워야겠어.


   P.S.)
   제목은 P. D. 제임스의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An Unsuitable Job for a Woman, Simon & Schuster)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글쎄, 왜 이런 제목을 지어놨는지는, <여자에게는~>을 읽어보지 않은 지라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출판되면서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라는 제목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 제목만 보면 알 수 있듯이, P. D. 제임스의 소설에서 그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란, 탐정 직입니다. 아무래도 일본에는 원제대로 출판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출판 제목보다 원제가 좋네요. 탐정물이라는걸 확실하게 어필하고 싶었던 편집부의 생각이 깃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쉽지만, 절판되었다고 하네요.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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