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 책, 그리고 그에 관한 이야기

나는 대단히 롤모델에 짠 사람 중 하나다. 정확히는 롤모델을 만드려고 하질 않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많은 롤모델을 만들어왔다. 나는 어떤 사람을 보고, 거리낌없이, 주저없이 롤모델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사람을 롤모델로 해야지, 라는 생각조차 명확하게 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와 교류하거나, 또는 (책이나 TV 등을 통해서라도) 그들을 알아온지 오래된 이후,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 처했을 때 "아, 그 사람은 이렇게 했었지" 하고 그 사람을 따라하는 것, 그게 바로 내게 있어서의 롤모델이다. 내게 있어서 롤모델의 정의는 따르고 싶은 사람 이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누구나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롤모델로 삼기가 너무 힘들다. 그 사람이 정말 싫지만 어떤 면만은 배울만해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아마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싫어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모든 면을 싫어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클 것 같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롤모델로 삼아온 사람도 정말 많다. 때로는 그게 TV속에 나오는 사람이었고, 그게 연예인이기도 했으며, 금태섭씨나 김두식씨, 조영래와 같이 (그 모습들은 서로 굉장히 다르지만) 내 꿈을 앞서 이룬 법률가들이기도 했으며, 친구들이기도 했고, 가족이기도 했으며, 선생님이기도 했다. 왜, 우리 나이(고등학생) 정도에는 또래집단을 준거집단으로 삼아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 않던가. 나 역시 조금은 그렇다. 다만 내가 전면적으로 부러워하는 건 주로 성격 측면이었다.

별로 좋은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사소한 면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쓴다. 그러면서도 무신경한 면이 상당히 많다.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는 면이 있다는건 알았지만, 참 장점보단 단점이 두드러진 성격이다. 쿨하게 넘겨야할 문제와 세심하게 신경써야할 문제를 잘 분간하지 못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어째선지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성격보다도 반대되는 성격이 꽤 많다. 참 쿨하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성격들. 가끔은 너무 막가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가기도 하고. 그 범주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다. 선생님도 둘이나 있고, 딱 떠오르는 친구도 둘이다. 역시 부럽다는 생각이 앞선다. 나도 모르게, 은근히 그들처럼 행동해보려고 하는 이상한 습관도 있다.

그렇지만 또다른 측면도 있다. 3학년에 올라와서 생각보다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되게 되었다. 지금 블로그에 시간나는대로 올리고 있는 <토론동아리 기장이 말하는 토론>...이라는 어정쩡한 제목의 연재물.. 그 계기가 되고 있는 것도 이 동아리 활동이다. '늘품'. 생각보다 흔한 이름이란건 뒤늦게 알았다. 이름을 그렇게 정했던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우선 개편하기 이전의 동아리였던 새롬이라는 이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순우리말 이름이 굉장히 예쁘구나 싶었고, 그래서 붙였던 이름이 늘품이다. 김해에 다녀오고나니 확신이 생겼다. 우리... 동아리 이름 참 잘 지었구나! 아, 물론 다른 동아리 이름이 이상했단건 아니고, 순우리말 이름이 묘하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괜히 신나는 기분?

아, 이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고, 그래서 이 동아리를 개편하는 건데... 거의 새로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꽤나 고생을 했더랜다. 그래도 그 원동력이 되어줬던 선생님이 두 분 있는데, 2학년 때 영어를 배웠던 선생님과 지금 우리 동아리를 담당하고 계신 선생님이다. 사실 두 분다 우리 동아리의 베이스가 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긴데... 이건 나중에 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어쨌든, 그 두 선생님 중에 지금 동아리를 담당해주고 계신 선생님, 2학년 때는 이과 문학을 가르쳤던 선생님이신데, 겉으로 표현은 잘 안하지만 인생관 쪽에서는 꽤나 큰 롤모델이 된 선생님이기도 하다. 국어선생님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고. 사실 중학교 때부터 벌써 4번째 국어과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셨는데, 국어선생님이 괜찮은 직업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본건 뜬금없이 동아리에서였던 것 같다. 물론 힘든 면도 자주 보긴 했다. 그래도.

이야기를 여기서 계속 끌어가려면, 아무래도 내 습관을 말해야할 것 같은데, 여기서 또 롤모델을 운운하면 롤모델에 미친 것 같지만, 사실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있는데, 작은 형이다. 아무래도 나이차가 많이 나긴 하지만, 부모님이 맞벌이셨고 그러다보니 형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꽤 많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기분 나쁠 일도 아닌데 서로 기분나빠하기도 하고, 그랬던 날들이었다. 내가 동생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분명, 내 머릿속에는 형과 놀던 날들이 주로 남아있다. 좋은 것만 기억하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형이 책을 정말 조심히 봤었다. 책을 완전히 펼치지도 않는 스타일? 읽고 나서도 읽은 티를 잘 내지 않는 그런 방법이었다. 책날개는 거의 쓰지 않았고, 책을 접거나 밑줄을 긋거나... 뭐 그렇게 책에 터치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정말 기막히게 책을 깨끗하게 읽었다.

그 습관은 내가 거의 그대로 물려받았다. 어릴 땐 안그래서 형한테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지금 나같은 경우는 책을 굉장히 아껴서본다. 책을 완전히 펴지도 않고... 잘 접지도 않는다. 책이 갈라지거나 하는 일에 대해서 비정상저긍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맞다, 그것만은 인정해야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얼마전부터 스스로 과연 그게 옳은 습관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게 있는데, 꽤 복합적인 이유지만 직접적으로는 동아리 담당 선생님. 동아리 담당 선생님은 책을 읽기 전에 거의 반으로 가른다...라고 해야하는 느낌의 습관이 있다. 뭐라고 말로 옮기기는 어렵지만, 가운데를 확실하게 한 번 펴고 들어간다는 느낌? 책을 상당히 좋아하시는 선생님인데, 그렇게 읽으시는걸 보고, 어, 내가 그렇게 노력해오던 건 도대체 무엇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학원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긴데,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차를 타면서 좋은 차를 타는건 좋지만 내 차를 내가 아끼느라 조심스럽게, 신경을 극도로 기울여서 타야하는 건 싫다라고 하셨다. 아마 그 때는 어, 그런가, 하는 생각 정도였던 것 같지만, 생각해보니 책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사실 책을 사서 아끼는건 좋은 일이다는 데에는 여전히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난 여전히 책에 밑줄은 긋지 않는다. 근데 최근엔 적어도 책을 확실하게 펴는 습관은 생겼다. 근원적인 생각 변화는 책을 아껴서 읽는 것보다 내가 읽었다라는 흔적을 남기는게 좋을 일이 아니겠는가 싶은 생각.

그냥, 다른 사람들 블로그 좀 다니다, 책에 굉장한 밑줄을 그어놓은 사람들을 보고 든 생각. 옛날같으면 질색을 했겠지만, 이제 그러려니 한달까. 물론 나는 아직도 책에 연필이나 펜을 가져다대는 것은 도저히 못하겠다. 그래도 내 습관이 좋은 점도 있다. 도서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 물론 막가파로 나가는 사람들은 도서관 책을 가져다 밑줄을 긋거나 막다루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보면... 책도 최대한 안 상하게, 나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뭐 일장일단이란 소릴까. 에이, 이게 장점이 될 수는 있는건가.

P.S.)
책과 롤모델.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정도였는데, 롤모델에 대해서도 깊이있게 이야기해보고 싶고, 동아리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고, 그런 욕망(?) 비슷한 것이 글에 이곳저곳 묻어나는 것 같다. 덕분에 글이 자꾸 산으로 가려는걸 억지로 돌려새우는 느낌이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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