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 사명과 영혼의 경계

사명과 영혼의 경계

使命と魂のリミット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

사명과 영혼의 경계,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은 아니었군요. 저는 신작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나온지 3년이나 지난 소설이었던거군요. 아무래도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은 좋아하면서도 막 찾아서 읽는 것도 아니고(실제로 지금도 읽은 소설은 이게 3권 째밖에 안되고..), 이번에 학교 도서관에 신간 도서로 들어왔길래 쓱 빌려서 읽었던 것 뿐이라서요. 사실 편집상 글자 크기는 좀 큰 편이지만 페이지가 적잖이 두꺼워서 걱정했는데, 중간 부분부터 완전히 빠져서 엄청 빨리 읽은 것 같습니다. 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굉장히 재밌는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어보지 않았으니 그의 작품 경향을 제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읽어본 세 편의 소설(<용의자 X의 헌신>, <게임의 이름은 유괴>, <사명과 영혼의 경계>)은 그에게 추리 소설 작가라는 이름을 선뜻 주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에는 추리소설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메디컬 스릴러'라고 이름붙은 이 소설도 그렇습니다. 현실적으로 전자 기계 공학...이라고 해야하나요? 어쨌든 기계에 관한 지식,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의학 지식까지 있지 않는 한은 트릭을 눈치채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그런 전문 지식이 난무하는걸요. 트릭을 추적하는 그런 소설은 아닙니다. 실제로 저는 그냥 소설을 읽듯이 읽었어요. 어쩌면 그게 맞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푹 빠져서 읽었어요.

거기다 일본에서 출간된 것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북스캔에서 책을 편집하면서 책의 뒷면에 상당히 중요한 정보를 꽤나 누설-_-; 하고 있는 느낌이 있어요. 유키와 니시조노의 관계라거나 말이죠. 물론 북스캔이 그렇게 써놓은 내용 때문에, 마지막 수술이 끝나고 이 사실이 뒤집어졌을 때 더 당혹스런 느낌을 주지만.

느낌은 굉장한 해피엔딩이군.. 하는 정도죠. 결국 모든 관계는 정상으로 돌아와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인물이라고 한다면 노조미와 조지 정도일까요. 사실 생각해보면, 유키와 그녀의 어머니인 유리에, 그리고 니시조노의 관계 정도는 1인칭 시점이 되어 유키에게 동화되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저처럼 1인칭 시점에 금방 동화되어버리는 사람에게는 절대 무리일 것 같지만요.

읽으면서, 아마 의사와 관련된 여러가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걸 보면서 항상 느꼈던 거겠지만, 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의사라는 직업, 이렇게 힘든데도, 이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거구나. 수련의(레지던트랑 같은 말일까요?)라는 생활은 엄청나게 힘든 것 같지만, 그 뒤에 있는 의사라는 직업은 정말 멋진거구나. 그런 느낌. 물론 이런 소설 한 편으로 의사에 대한 조금의 의심을 모두 떨쳐내기는 어렵지만요. 그것도 사실 의사라는 집단 전체에 대한건 아니지만.

결국 이 소설은 무엇이었는지,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면, 아마 일련의 범죄 과정이 아니라 왠지 T사를 생각나게 만드는 차량 결함(물론 문제 자체는 다르지만... 시기도 이 쪽이 먼저고), 그리고 그로 인해 직접적 그리고 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 그에 대해 용서를 하는 사람들과 나오이 조지처럼 용서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려내는 것이 하나의 주제이고, 동시에 의료사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두 번째 주제이고, 유키의 집안과 니시조노의 집안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그 관계의 실타래가 엉망진창으로 뒤얽히고 그것을 다시 유키에게 풀어내는 것이 세 번째 주제이자 가장 깊게 담겨있는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역자 오근영 씨가 말하기를 이 소설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합니다.
이번 작품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종래의 추리소설이 트릭을 앞세워 탐정놀이의 미로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여 등장한 것이 사회파 추리소설인데 범죄의 사회적 동기와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리얼리즘을 담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문단에서 과연 일본 문학이 얼마나 연구되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일본 문단에서 연구되고 있는 것이야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 저에게 들려오지 않을테지만, 출판사나 여러 역자들이 해주는 '경향'으로 치자면 80년대 출생의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경향 감각주의 소설'과,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사회파 추리소설'이 제 구미에 당기는 스타일이지 싶습니다. 물론 저는 모더니즘, 초현실주의, 감각주의... 이런 표면적으로는 도대체 무슨 경향인지 알 수 없는 경향을 따지는건 그다지 선호하는 바는 아니지만요. 그리고 아마 제가 처음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인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느꼈던 것은 위의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것의 영향이었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이 쪽이 더 제 스타일이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그렇습니다. 언제나 읽고나면 묘한 느낌이 들어요. 특히 <용의자 X의 헌신>과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사람이 죽을 뻔 했거나 실제로 죽었는데도,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더없이 따뜻합니다.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QUOTED

"그 사람…… 괜찮은 거니?"
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살릴 테니까. 두 번째 아버지는 절대로 죽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
결국 유키가 니시조노를 아버지로 인정하는 장면.



사명과 영혼의 경계 - 10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북스캔(대교북스캔)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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