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진하(방지나) - 2000년의 낮과 밤


전문보기(네이버 캐스트 오늘의 문학)

방지나, 라고 하는 작가분은 생각보다 유명한 모양입니다만, 사실 저는 잘 몰라요. 뭐 판타지 소설도 좋아해서 한 때 많이 읽었고 지금도 읽을 거리가 생기면 좋아라하고 읽지만, 그 당시에는 좋아하는 작가같은거 없이 재밌는 소설을 찾아 돌아다니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는 아니고 어쨌든 굉장히 중구난방으로 읽었기 때문에 말이죠. 지금도 제 독서의 모토는 장르 불문! 국적 불문!(물론 좋아하는 건 있지만!)이 기 때문에 비슷하지만 그 때는 장르불문 수준이 아니라 어 새 책이다- 하면 그냥 뽑아서 읽기 시작해버렸달까. 아 물론, 소개에서처럼 '1세대 판타지 작가'라고 하는데 저는 그 이후로 양산형 판타지가 판을 치던 세대니까, 세대적으로 조금 엇나간 것도 있겠네요.

이 글을 읽기 시작한건, 얼마전에 네이버 캐스트에 오늘의 문학이라는 굉장히 좋은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걸 안 이후에, 그렇다면 가끔 시간이 나면 읽어봐야지 했지만 사실 책으로 사놓은 글들이 많아서 그것도 다 못읽는데 무슨... 하면서 안 읽고 있었어요. 뭐 저는 모니터로 글을 읽는데 굉장히 약해서(...) 심리적으로 계속 미루고 있었던 것일지도. 그런데 정컴 시간에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항상 할게 없는 저는, 뭔가 2% 생산성이 부족해보이는 엔하 위키 미러를 뒤적이는 행위(...) 대신에 소설인 읽자는 심산으로 오늘의 문학을 들어갔어요. 그러고보니 제가 그 때 봐뒀던 <안개 속의 목소리> 이후에 한 작품이 더 올라왔더라구요. 그래서 무작정 읽기 시작했습니다.

내용은 굉장히 흥미롭지만,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한 때 나스 기노코에게 빠져있었던 사람을 향수에 젖게 만드는 아카식 레코드도 나오고... 물론 작품 내에서는 그 본연의 의미구요. 아카식 레코드 프로젝트, 였던가. 왠지 이야기 전반적으로 나스 기노코의 SF 계열같은 느낌이 좀 있었어요. 아, 표절 운운하는게 아니라, 굳이 분류하자면 그런 쪽이었다구요. 먼 미래도 근미래도 아닌 것 같은 배경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에, 문명까지 끌고 들어온 나름 방대하다면 방대한 스케일에.

사실 읽는데는 40분 남짓 걸린 것 같습니다. 네이버 캐스트에서 제공하고 있는 분량으로 49페이지 분량이구요. 실제 책 49페이지에 비하면 훨씬 적은 량입니다. 내용은 딱 적당한 길이보다 조금 더 긴 것 같은 길이의 단편이에요. 단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굉장히 빠져들어서 읽었습니다.

사실 저도 좋아하는 설정이에요. 기록을 차곡 차곡 쌓아간다거나. 물론 읽으면서 이브가 불쌍하다던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런 소설을 읽다보면, 그러한 정보의 무한한 저장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목적 없이 한없이 쌓아가기만 하는 걸까. 물론 그것 자체만으로도 지식은 가치를 가지고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그것이 그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일까. 실제로 그런 것이, 즉 모든 문명을 기록한 무언가가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러나 있으면 무엇할 것이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결국은 하늘을 보지 못한채로 다시 떠난 이브. 하늘을 보지 못한다라고 하는 현실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결국 빠르게 엄청난 정보를 얻어가고 그것을 자신의 두뇌에 저장함으로써 인류 지식의 집대성이 되고 있는 그녀는, 항체가 없다는 이유로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하늘을 끝까지 접하지 못합니다. 그 누구도 한 명의 소녀로서 보아주지 않았다는 이브는, 결국 그녀를 소녀로 보아준 주인공에 의해 간접적으로나마 하늘을 접하게 되죠.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이브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종의 추억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두뇌에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정보'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해야 마땅할 '추억'을 거의 가지지못한 그녀에게는, 모든 지식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잊어버려선 안될 추억말이죠.

그렇지만 이브가 결국 떠날 때에는 같이 가는 것일까 했는데, 같이 가지 않은 것은 조금은 아쉬웠어요. 하긴, 그런 뻔하고 극적인 스토리라면 더 재미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걸 알면서도 개연성 없게라도 무언가 방법이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절대 그럴리 없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QUOTED

“정식 명칭은 아카식 레코드 프로젝트래.”
“‘우주의 모든 역사가 기록된 도서관’이라…….”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 프로젝트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아카식 레코드 프로젝트는 지난 1,000년의 세월을 총망라하는 제7분기 문명의 집대성이다. 그 자체는 현 문명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모아 방주에 담는 단순한 일이지만, 그것이 가진 의미는 컸다. 방주에 자신의 업적을 남긴다는 것은 불멸의 이름을 손에 넣는 것과도 같다. 방주와 이브라는 거대한 타임캡슐 안에 담진 것들은, 아스테로이드 벨트를 떠돌며 다음 문명의 초석이 된다. 제7분기 문명이라 불리는 현재의 문명이 사라져도, 아카식 레코드 프로젝트를 통해 방주에 실린 제7분기 문명의 업적들이 다음 문명으로 이어져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다. 방주와 이브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도약자 덕분에, 문명은 퇴보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방주’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브와 함께 있는 것이 점점 괴로워졌다. 이브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고통은 배가되었다.
눈앞에 있는 소녀는 실체를 갖고 있지만 허상이었다. 세상에는 이브를 숭배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브를 연구 대상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고, 이브를 하나의 개념으로만 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처럼 작은 소녀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의 인내심을 과신하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철두철미한 과학자. 사람들의 눈에 비쳐진 나의 모습이 진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브는 나약한 인간인 진정한 나를 꿰뚫어보고 끈질기게 졸라댔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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