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사람들은 너무나도 잔인해진다

요즘은 나 스스로의 감정을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 학교 담임선생님이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무기력해져버렸다고나 할까. 나도 이런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서, 종종 헉- 이게 정말로 나야? 하고 당황하곤 하지만, 쓸데없이 의지적이 되는가 하면 또 쓸데없이 무기력해져버려서는, 세상이 다 끝나버린 사람처럼 멍- 하게 쳐다보고 있는 날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머리는 더더욱 복잡해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차리고 보면- 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하는 수준까지 결국 다다르고 마는 것이다.

오늘은 제대로 된 계기가 있었다. 요즘 유난히 트위터에서 자주 보이는 자살 트윗이 또 한 번 올라온 것이다.
나 역시도 이런 자살 트윗이 계속해서 올라오게 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트위터의 대표적인 역기능으로 손꼽히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죽음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밝은 분위기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런 칼날같은 트윗들이 한 번씩 올라면 분위기가 좀 싸-해진다고나 할까. 트위터라고 하는게 전파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보면 한 두번 RT되다보면 계속해서 RT되고 이건 시간이 지나서까지 계속된다. 그래서 일까, 이런 자살 트윗이 올라오던 처음에는 다들 막으려고 노력했고 그렇지 안헏라도 그냥 그러려니-하고 방관하는 수준에 그쳤는데, 이제는 비판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의견 전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자꾸 이런 트윗이 올라오는건 좋은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행동에서 너무나도 차가운 면을 느끼고 있는건 그저 내가 나약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그렇게 쉽게 해버리는 이들에 대한 알 수 없는 거부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그건 너무 잔인하다. 그건 차가운 이성이기 보다 냉정한 이성, 냉정한 이성이기보다 잔인한 이성인 것만 같아서 왠지 소름이 끼친다.

무엇보다도 자살을 한다는 사람에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미는건, 그 사람이 자살을 할 마음을 굳히지 않아서, 아직 돌릴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그를 더욱 더 깊은 쪽으로 밀어버리는 것과 같다. 비판이 되는건 좋은데 적어도 자살하겠다는 사람은 막아두고 해야지, 어쩌면 그 사람이 보고 있을지도 모를 타임라인에 그런걸 휘갈기는게 냉정한 이성적에 기반한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니, 그건 오히려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살을 하겠다는 사람의 감정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것이 어린 학생의 치기에 불과할 지더라도, 자살이란 것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본 적은 있다. 아 물론, 이렇게 이렇게 해서 죽으면 어떨까- 할 정도로 진지한 생각은 아니고, 그냥 추상적으로, 아- 편해질까 이런 수준이었다. 그건 어쩌면 제대로 자살이라는 방법을 고민해본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나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가니까. 인간에게 어떤 일이 있든 간에, 궁극적으로 맞게 되는 최후는 어찌됬든 죽음이니까.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하기에 필요한 것은 계기나 상처보다도 용기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설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런 용기는, 어느날 너무나도 큰 난관에 부딪혀서 불붙고, 결국 홀로 고독함 속에서 불타오른다.

자살을 하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살에 무게를 둔게 아니라 위로받고 싶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 앞에서 자살의 정당성을 말할 정도로 차가워지지는 못하니까. 나는 나의 죽음 만큼이나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 무섭다. 그게 비록 전혀 모르는 초면일지라도. 그리고 아마 누구나 그렇겠지. 아마 그렇게 이성적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현대사회라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진짜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그런 사회의 걸림돌일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차가워지긴 어렵다.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성격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꽤나 이성적이 되실 수 있는데도. 어른들의 관록일까? 아니면 이런 감정이 그저 나의 치기일 뿐인걸까.

사실 이 감정을 그저 동정에 불과하고, 비이성적이고, 너무 감정적이라고 평가한다면 부정할 수 없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현실주의자는 아니지만 이성에 기반한 상황 판단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본질이 이성과 감정 중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실려있겠느냐라고 묻는다면 어느 한 쪽으로 확답하긴 어렵다. 이성이라고 하기에도 감정이라고 하기에도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내가 대단한 철학가도 아니고, 그런 철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만 나는 이 이상으로 잔인해질 수는 없었다. 나는 자살하겠다는 사람 앞에서 그에게 비판의 칼날을, 아니 그게 칼날이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내밀지 못했다. 뭐 어쩌겠어, 이런 나인데. 이런 내가 싫은건 아니다. 그 정도로 냉정해질 수 있는 나보단 지금 상태에서 조용히 걱정해줄 수 있는 나로 남아있고 싶어. 세상은 그렇게 차갑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도, 그렇게 차가워지지 못하고 떨어야하는 사람도 모두 필요한 법이니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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