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 호텔선인장(ホテル カクタス) : 따뜻한 동화같은 이야기


표제: 호텔선인장(ホテル カクタス)
저자: 에쿠니 가오리
옮김: 신유희

호텔선인장을 읽었다. 요즘 책이든 뭐든 닥치는대로 읽고 보는데 노력하고 있다. 물론 거기에 대한 특별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하고 있다기보다, 얼마 되지도 않는 삶인데-싶은 것이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원래 그런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어떻게보면 인문학과도 상통하는 것.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사실 인문학에 대한 회의를 자주 느꼈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뜬간에 책을 읽다보면 그런 느낌을 탈탈 털어버릴 수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으로는 이게 몇 번째일까.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몇 번 접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걸 얼마나 어떻게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블로그를 뒤적여봐도 내가 쓴 글은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기록상으로는 맨 먼저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호텔선인장의 첫 인상은 "굉장히 가볍고 따뜻하다"라는 것이었다. 라이트노블같은 것은 아니지만, 책을 넘기다보면 곳곳에 있는 일러스트를 발견할 수 있다. 인물을 직접 그려내는게 아니라, 호텔선인장의 부분부분을 잘라내서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인지 전해질래나. 그렇지만 일러스트가 다는 아니다. 일러스트는 그저 이 책이 얼마나 가벼운 책인지를 보여주고만 있을 뿐이지. 이 책은 정말로 굉장히 따뜻하고, 가볍다.

가볍다라는 말은 여러 의미로 풀이될 수 있겠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책이 가볍게 술술 읽힌다. 진행하는 어조는 경어체를 써서 말 그대로 어릴 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던 동화책의 느낌이 짙다. 동화책 특유의 서술방식과 진행 방식이 그대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동화책이란 느낌, 즉 가벼운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뭐라고 해도 무거운 책은 아닌 것이다.

내용은.. 무엇을 주제라고 해야할까. 이게 참 줄거리가 없다고 해야하나, 각 편들이 직접적으로는 연결되지 않는 형태로 구성된 책이다. 시기등이 전혀 주어지지 않고, 모자, 2, 오이 이 3명의 하루하루를 그려낸다. 개중에는 특별한 것도 있고, 굉장히 일상적인 것도 있는데, 대체적으로 일상을 그려낸다. 어딘가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왠지 우리 바로 옆동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일상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모자, 숫자 2, 오이. 거기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작가가 주인공을 이렇게 설정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설정 자체는 어느 면에서는 웃기고, 어느 면에서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다. 모자, 숫자 2, 오이는 어떠한 사람의 애칭이 아니라 정말로 "모자"와 "2"와 "오이"다. 의인화도 이런 의인화가 있을까. 하는 행동은 사람과 같지만 모습은 사물이라니,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려내려고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장면은 미궁으로 빠지고. 뭐라고 해야할까? 두 모습을 상상해서 겹쳐서 보는 느낌이었다.

세 사람의 성격은 이들이 정말 친구일까 싶을 정도로 다르다. 어쩌면 그런 성격의 차이 때문에 친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참 묘하다. 모자는 굉장히 감성적이다. 모자는 문학을 즐기고, 도박에서는 1방에 모든걸 걸어버린다. 자기가 자신을 평할 때는 '하드보일드하다'라는 말을 쓴다. 그에 비해 숫자2는 어떻게 보면 소심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나와도 일면 통하고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볼 수 있는 형의 인간상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면서도 가장 정감이 갔고, 완전히 푹 빠져서 보고 있었던 인물이다. 오이는 운동을 좋아해서인지 건강을 굉장히 챙기고, 자기도 모르게 남을 간섭하는데, 쿨하다면 꽤나 쿨하고 제대로 표현하자면 꽤나 대범한 성격이다. 숫자 2가 부러워하고, 나 역시도 조금은 동경하고 있는 성격.

이런 세 성격은 보기 드문 성격이 아니다. 굉장히 흔한 성격들. 우리 주변에, 지금 바로 내 옆에 서잇는 사람들도 분류하자면 셋 중 어디론가 반드시 분류될 것 같을정도로 흔한 성격들이다. 이들은 서로의 성격을 동경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서로가 같은 일을 하게 되고 결국 성격별로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게 그려진다. 그러면서 성격을 이해하기도 하고, 이런 점은 이렇군- 싶은 생각도 들게한다.

결국에는 호텔 선인장이 없어지면서 모두 흩어지게 되고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은 친구- 라는 오묘한 느낌으로 끝나버린다. 동화로 치자면 새드엔딩 동화에 가깝겠지. 참, 이렇게 따뜻한 책이 나오는 세상이라면, 아직 이 세상은 따뜻하게 숨쉬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왜그랬을까? 그렇게 사회적이거나, 부조리를 비판하거나, 비극적이라거나 한 것도 아니었는데. 책은 지나치게 따뜻하고 가벼워서 나를 푹 빠져들게 해버렸던 것 같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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