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서강대] 미스터리브루잉: 뜬금없이 마포에 등장한 혜성 ★★★★★


나름 많은 식당을 다닌 사람이지만, 몇몇 내가 소개하기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드는 곳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맥주를 파는 곳들이 그렇다. 맥주의 각종 용어들, 예컨대 필스너나 IPA같은 말뜻도 제대로 모르는데다, 맥주 한 잔이면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는 주제에 무슨 맥주집 글인가 싶기도 하고. 애초에 나는 맛을 평가하는데 그 표현이 부족한 사람이라,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한 글을 쓰기는 겁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건, 방학기간 동안 학교 근처(겸 집 근처)에 괜찮은 맥주가게가 생겼고, 그 존재 자체가 신비로웠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로부터 도화동으로 이어지는 경의선 숲길 인근에, 한동안 그 동네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했던 종류의 가게들이 열심히 들어서고 있다. 이 곳도 그 중 하나다. 경의선 숲길이 끊어지는 곳 한 켠에 재화스퀘어라는 큰 건물이 있는데, 그동안 스타벅스 혼자서 쓸쓸이 지키던 1층의 빈 공간에 어느날 거대한 탱크같은 녀석이 등장했다. 워낙에 이질적이라, 뭐라고 해야할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봤던 크림붕어빵같은 느낌이었다. 속된 말로 “형이 왜 거기서 나와...?”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이 컨셉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이 곳은 한 쪽에서는 멋들어지게 MYSTERLEE BREWING이라는 글자가 보이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앞서 말했던 그 탱크들만이 즐비해있어, 이 곳이 맥주를 파는 곳인지 아니면 만들기만 하는 공장같은 곳인지 쉽게 알아보기가 어렵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곳은 그 존재 자체로 신기한 곳인데, 한적한 사람사는 동네(라고 하기에는 사실 한적하진 않지만)라는 느낌이 강했던 마포 한복판에 갑자기 질좋은 맥주집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근처에서 맥주라고 한다면 이런 소위 ‘크래프트 맥주’가 아니라, 대개 카스나 하이트같은 국산 생맥주를 주로 파는 곳들이 많았던 데다가, 시덥잖은 생맥주를 한 잔에 5,000원은 줘야 먹을 수 있는 곳이 워낙에 많았던 탓에, 그 신기함과 이질감과는 별개로 고마운 곳이다. 평상시에 맥주를 즐기지 않는 나에게도 그렇다.



Mr. Purple과 마르게리따 피자를 시켰다. 맥주는 크래프트 비어임을 생각한다면 과하지 않은 수준이고, 피자 가격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5~6000원 정도 더 나가는 수준이다. 이곳의 마르게리따 피자는 18,000원, 미스터 퍼플은 한 잔에 6,900원이다.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또 그게 못먹을 가격은 아니라서, “가끔 큰 용기를 내서 한 번쯤 들리기에” 충분한 곳이다. 물론, 평범한 대학생인 나의 기준에서 보자면 말이다.


사실 가게의 분위기를 보자면 대단히 좋은 곳은 아니다. 낮 시간대에는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꽤 밝은 분위기를 낼 것으로 보이지만, 저녁에는 당연히 그렇지 않다. 문제라고 한다면, 술집의 자연스러운 어두움보다 조금 더 어두워서, 그 자체로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단히 좋은 분위기인가, 라고 물으면 글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음식의 맛이 훌륭하게 커버하고 있다. 사실 (이 또한 내가 피자에 문외하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피자가 대단히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맥주가 압도적으로 훌륭하다는 것이다. 맥주에 일가견이 없는 나에게도 어필하기에 충분한 맛을 낸다. 같이간 모두가 만족한 것을 보면, 우리가 식사(食史)에서 보기드문, 맛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모두에게 어필하기 충분한 종류의 음식임을 알 수 있다. 


한편, 한 번 먹어보라며 받아서 마셨던 페일에일류는 썩 우리 취향이 아니었는데, 그것이 맥주에 문외한이어서 그런 것인지, 그저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았을 뿐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 맥주만큼은 정말로 좋은 맥주가 아니었는지,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강한 시트러스 향이 났는데, 원래 과일향이 나는 술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녀석도 산뜻하다기 보다는 역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내 개인적인 취향대로는, 미스터 퍼플이 최고의 선택이다.


짧은 나의 맥주사에 따르자면, 내가 먹어본 맥주 중에서 최고라 평할만한 맥주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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