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이대] 북카페 파오(PAO): 내가 그렸던 가장 이상적인 북카페와 샌드위치 ★★★★☆


아마 어느 시험기간이었던 것 같다. 혀니 말 따라서 이대까지 공부를 하러 나갔었는데, 처음에는 익숙한 스타벅스를 갔다. 애초에 그렇게 갔던 이유가, 내가 이대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스타벅스가 꽤 멋들어지게 들어와있는 모습을 봤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는데 우리가 좀 늦게 갔더니, 거기다 시험기간이었어서, 스타벅스에는 제대로 된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여느 스타벅스처럼 어둑어두한 조명이 우리를 반겼다. 솔직히 말하건대 공부에 적절한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행선지를 옮기려고 주변에 다른 카페를 찾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혀니가 아는 분을 만나 이 곳을 추천받았다. 북카페 파오.


특유의 분위기가 강렬하다. 사장님의 취향이 진하게 묻어난다. 한쪽엔 레코드와 음반이 자리를 채우고 있고, 한쪽은 책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책들은 전부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일부 판매도 하고 아예 서점으로 이용하고 있는 공간도 있다. 우리 학교 근처의 몇몇 북카페는 자리가 넓지 않고 편치 않거나 북카페이면서도 책 보기에 부적합하리만치 어두운 곳도 많았는데 이곳은 일단 채광 자체가 잘 되서 대낮엔 당연히 밝고, 저녁이 되도 책 보기에 나쁘지 않다. 북카페는 태생상 열람실같은 곳보다 책 보기가 좋은 곳은 아니지만 파오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이다.


커피 두 잔을 시켰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하나는 분명히 아메리카노고, 하나는 뭐 바닐라라떼 정도 되지 않을까. 음료 자체가 최상급인 것은 아니다. 음료는 무난한 맛이 난다. 그렇다고해서 영혼이 없는, 북"카페"라기 보다는 "북"카페에요, 하는 정도는 아니고, 맛있게 먹을 정도. 가격이 꽤 나가는 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냥저냥 무난한 수준이다. 가성비 자체도 엄청나게 나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좋은 것도 아니다. 그것보다 이곳의 압권은 다른 두 녀석인데, 치아바타 샌드위치와 요거트다.


참고로 그 이후에도 꽤 여러번 이 곳을 들렸어서, 사진은 한 날 모두 찍은게 아니다. 우리가 한 날 이 모든 것을 먹을 정도로 식성이 터지는 것은 아니란 소리다. 물론 적어도 나는 먹는걸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첫번째 주자는 치아바타 샌드위치다. 내용물이 실해서 밥 대용으로 나쁘지 않다. 아무래도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빵을 먹으면 뭔가 조금 덜 먹은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크기도 큼직큼직하고 내용물도 실하다. 내용물이 실한만큼 자꾸 해체되서 먹기 아주 편하지는 않다는 단점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샌드위치를 먹게 되면 서브웨이가 아닌 이상은 가격에 비해 부실한 녀석들이 많은데, 이건 탄탄하고 무엇보다도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단점이라면, 주문을 넣는 순간 만드는 거라서(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 카페의 샌드위치는 미리 제조되어 포장되어있고, 조리 과정이라고 해봐야 끽해야 데우는 정도에 그친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상당히. 배고픈 순간보다는 슬슬 배가 고플 것 같은 시점에 주문하면 좋다. 시간 많이 걸리는 것만 빼면 가장 이상적인 샌드위치 중 하나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그렇다고 내가 이 글을 쓰고 모종의 대가를 받은 건 아니다. 그럴만큼 인기있는 블로그도 아니고... 영업하신지 얼마나 되셨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초창기이신 것 같은데 그래서이신지 학생들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샌드위치의 재료나 음료에 들어가는 설탕 같은 것들도 업체와 계약하기 보다 시간이 날 때 시장에 들러서 사시는 경우가 많다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주자는,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치아바타 샌드위치보다 이 녀석이 더 배가 든든할지도 모를 요거트다. 사실 방학한 이후로는 공부할 일이 없어서 최근에는 파오를 들리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 우리 때는 주문했을 때 사장님이 "마시는 요거트가 아니라 떠먹는, 밥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요거트"라고 설명해주셨는데 아마 보통 카페에서 파는 요거트는 마실 수 있는 연한 종류의 것이라서 그런 것 같다. 이 녀석은 뮤즐리? 씨리얼? 그런 것이 생각보다 두껍게 깔려있고, 요거트 자체도 진해서 꽤 배를 채워주는 녀석이다. 밥과 음료를 한 큐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사실 음료보단 밥에 가깝다). 맛도 좋고. 나는 평상시에 뮤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맛있게 먹었다. 



북카페가 많다. 거기서 나아가 아예 '공부할 수 있는 카페', 소위 '스터디카페'도 그 기세를 넓히고 있다. 학교 근처만 해도 숨도, 방관자, Studycafe S가 들어섰고, 이제마 스터디카페? 라는 것도 들어온 것 같았고 아예 유료형 열람실(독서실)을 테마로 한 카페로 들어선 것 같다. 사실은 그만큼이나 카페가 어떤 음료를 파는지 이상으로 어떤 공간을 빌려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도 사실 이야기를 하고 책을 읽거나 여행계획을 세우거나 하는 공간으로 카페를 더 많이 쓴다. 상대적으로 좋은 음료를 파는 곳보다 좋은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 인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많은 북카페는 일종의 '서점'의 변형이다. 많은 북카페는 책을 사랑한 사장님이 커피도 좋아해서, 또는 책을 사랑한 사장님이 트렌드에 맞추어 서점을 카페에 녹여낸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북카페가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엔 부적절하다. 대개 문제는 조명이고 빛이다. 이게 북카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어둡거나, 밝긴 한데 책을 읽기에 애매한 조명이거나. 그건 애초에 북카페가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결함일지도 모른다. 안정적인 분위기의 카페는 대개 어둑어둑한 편이지만, 책을 읽으려면 밝은 조명이 필요하기에. 그런 점에서 북카페 파오는 외려 어정쩡한 조명보다 밝은 채광과 조명으로 특유의 분위기와 책읽기 좋은, 적절한 조명을 만들어냈다. 말 그대로, "가장 이상적인" 북카페다.


시험기간에는 연장 운영도 하고, 사장님 께서는 학생들이 먹을 간단한 요깃거리 메뉴도 고민하시고 있다. 앞으로 한동안은 꽤 자주 들를 카페일 듯 하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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