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에의 소고

   요즘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다른 사람의 기준과 다른 사람의 평가를 잣대로 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대학에 와서는 계속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심리학 시간에 배웠던 표현을 이용하자면 나는 '성취목표'가 아닌 '평가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나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나의 짧았던 입대 전 한 학기는 철저하게 평가목표에 의존한 채 살았던 것 같다. 모든 것을 타인의 평가에 맞추어서,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모나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그들이 바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거기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아마도 섹션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섹션을 도망친 3월의 짧은 아픔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과에 적응하지 못했다. 과의 주류문화는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누군가 장난스럽게 이런 성향을 '내츄럴본 아싸'라고 불렀다. 태어날 때부터 아싸. 완벽한 아싸는 아니었지만, 우르르 몰려다니거나 조직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맞는 사람 서너명이 돌아다니는게 훨씬 편했던 기억을 되짚어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섹션과 과를 뒤로했다. 나는 자발적 아싸이면서 만들어진 아싸였다. 나 스스로 과를 버렸고 나 스스로 동아리를 택했지만 동시에 나 스스로 과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 크다. 그때의 나에게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던 것이다. 굳이 과에 큰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군대조차 다녀오지 않은, 스물한살의 치기라고 평가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학기를 동아리에서 보냈다. 동아리는 내 학교 생활의 전부였다. 동아리 위에서 내 모든 일을 치렀고, 동아리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에서 상실감을 느끼면서도 동아리에 집착했다. 거기에서 벗어난건 2년의 군생활이었다. 군대란 곳은 그런 곳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신없이 바빴고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바빴지만,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눈 뜨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던 때문이다. 그렇게 되짚어본 내 학교생활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걸 스스로 자각했다. 지나치게 동아리에 의존했고, 지나치게 동아리에 많은 것을 바랐다. 당연히 동아리라는 곳은 그런 부분을 채워줄 수도 없었고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동아리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동아리를 조금 밀어내는 과정이었다.

 

   제대를 할 즈음, 동아리와는 따로 떨어진 건실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싶었다. 나는 나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 나가야했다. 그런데 얼떨결에 부회장 자리를 맡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라는 말이 절대적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같은 사람에겐 맞는 말이었다. 어떤 자리를 떠맡으면 그 자리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 탓이었다. 나는 그렇게 다시 동아리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나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나는 건실하고, 조금은 스스로에게 멋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학교생활을 보내고 싶었는데, 어째서인지 동아리에서는 쉬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동아리에서는 정말 많은 흑역사를 만들어왔던 곳이고, 왠지 여기에 서면 그대로 안주하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조금 위기감을 느낀 것은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즈음이었다. 이상하게도 몸도 정신도 힘들었고 정신없이 바빴지만 잡생각도 그와 비례하듯이 많아졌다. 과연 나는 어떤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인가, 에 대해 다시 고민해봐야하는 시점이었다.

 

   1학기 때, 뭔가 나의 이야기를 하면, 거기에 "1학기가 뭘 벌써 그런 생각을 하냐"며 일축하던 선배가 있었다. 아마 심리적으로 꽤나 큰 거부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나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스스로의 인생을 2년을 바라보든, 5년을 바라보든, 그 뒤를 바라보든 개인의 선택이다. 아니, 선택의 범주를 넘어서 그건 성향의 문제다. 당장의 앞을 보고 헤쳐나가면서도 제대로 큰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나처럼 자칫하면 미끄러지기 쉬운 사람은 조금 더 뒤를 보고, 큰 길을 보며 현재를 가늠하고 걸어가야만 했다. 왠지 그 시절 생각이 났던 것 같다. 상실감에 젖었던 1학기였다. 캠퍼스의 낭만 따위는 없었던 1학기였다. 뭔가 삶에 찌든 것 같은 1학기였다. 2학기를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동아리는 조금 애증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너무나도 소중하지만, 너무나도 아끼지만, 동시에 나에겐 치명적인 결함이나 약점같은 곳이었다. 내게 많은 것을 줬고, 동시에 큰 상실감을 안겨줬던 곳이었다. 나는 이 곳에서 한없이 착한 아이를 자처했고, 한없이 맹했다. 그냥 왠지 그랬다. 샤프함, 날카로움이나 예리함 같은 건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적어도 동아리에선 그랬다. 그 사실을,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절망감이나 자조감이 동아리 자체에 대한 상실감, 원망, 자조감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것이 옳은 원망이든, 그렇지 못하든간에, 그건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이제는 동아리를 대하는 나의 자세도, 모두를 대하는 나의 자세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를 대하는 나의 자세도 고쳐야할 때가 왔다. 갑자기 변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중심을 찾아야한다. 어느새 균형잡기를 포기하고 두 손을 뻗어 동아리에 내 체중을 싣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생활을 정리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한동안은, 그런 생활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동아리를 생활에서 완전히 밀어내려고 했던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첫 학기 때에도 그랬다. 아마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인 거부감이나 위기감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굳이 그럴 일이었나 싶기도 하다. 동아리는 이미 내 생활에서 밀어낼 수 없는 존재다. 휘청거릴 때면 한 손 쯤 뻗어도 좋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내 힘으로 균형을 잡고 바로 서야 할 때다. 삶의 중심을 회복한다는 것. 아마도 내 인생에 있어서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문제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을 이 과제와, 어느새 다시 마주서게 됐다. 힘든 일이 될 것이고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필요한 일인 것도 분명하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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