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 자체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즘 한창 열심히 읽고 있는 책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다. 2권까지는 서평도 썼고, 지금 4권을 마저 읽고 있다. 오랜만에 읽는 라이트노벨 풍의 소설이라(엄밀히 말해 라이트노벨은 아닌 것 같다)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듯한 재미로 읽고 있는 소설이다. 예상할 수 있지만 덕분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바로 이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건너간 '책' 그 자체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문장은 고서(헌책)를 다루는 이야기인 <비블리아~> 시리즈를 이끌어나가는 핵심이기도 하다. 즉, 책에 관해서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여자주인공, 시노카와 시오리코가 헌책 속에 담겨있는 그 '이야기'를 읽어내고 그 이야기를 실마리로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이야기다. 이전의 서평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일상추리물(고전부 시리즈의 그것)이면서도 독특한 소재로 책덕들을 설레게 하는 작품 중 하나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의 주인공, 시노카와 시오리코 삽화 일러스트.


   오늘 문득, 내 블로그에 잔뜩 쌓아둔 서평이며 영화평이며 하는걸 돌이켜보았다. 비록 실물이 있는 헌책은 아니지만, 아, 그게 대충 이런 느낌의 이야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이 친구가 추천해줘서 봤고, 이 책은 이래서 읽었구나. 이 책을 읽을 때 즈음엔 이런 일이 있었구나. 아무래도 항상 책을 한 권 끼고 다니는 편인지라 책 한 권 한 권에는, 비록 실물은 아니더라도 나름의 추억이 담겨있다. 물론 워낙에 독서가 인스턴트하고 흥미위주라 그렇지 않은 책이 절대다수이기는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건너간 책, 뿐만 아니라, 내 머릿속의 책과, 영화와, 연극과, 음악과, 그 모든 것에는 그 자체로 이야기가 있고(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나중에 가서야 어떤 사람,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저자 미카미 엔의 말도 맞다. 책 그 자체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아무래도 도서관을 자주 애용하다보니 책에 낙서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그것보다 뭐랄까, 책은 내게 있어서 연필로 손대선 안될 무언가이기도 했다), 얼마전에 읽었던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1~3>은 심지어 스포일러도 당했지만, 누군가 손 댄 책은 나름의 재미가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아 이래서 표시해놨겠구나, 하는 재미가 있고(동아리방에 굴러다니는 책을 종종 펼쳐보곤 했던 이유 중 하나다), 누군지 모를 사람이 표시해둔건 그게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재미가 있다. 위에서의 이야기가 나 자신의 일기를 되돌이켜보는 기분이라면, 이 쪽은 남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듯한, 또는 남의 추억을 떠들어보는듯한 재미가 있는 셈이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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