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미 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




1.

   자신이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는가와는 별개로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독서가, 애서가라는 이름보다는 장서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법 하다. 대부분의 독서가는 장서가가 되고, 대부분의 장서가는 독서가가 된다. 그러다보니 둘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존재한다. 예컨대, 실재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이 소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이자 서술자 역할을 하고 있는 고우라 다이스케는 애서가라고는 하겠지만 독서가는 아닐 것이다. 물론 장서가는 더더욱 아니겠지만. 


   나같은 경우도 있다. 나는 독서가이지만 장서가가 아니다. 절반은 장서가가 되지 못했고 절반은 장서가가 되지 않았다. 한창 책을 열심히 읽었을 때(기묘하게도 가장 바빴다고 해도 좋을 수험생 때였다) 내 용돈으로 내가 원하는 책을 페이스에 맞춰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벌어들이는 돈이나 받는 돈은 훨씬 많아졌지만 그 때의 습관인지 책을 사서 보는 경우는 아주 많지는 않다.


   그런 나임에도 책을 사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헌 책을 사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안 아니지만 헌책방이든, 제대로 된 서점이든 책을 사러 가는 일은 좋은 일이다. 물론 나의 이런 성격 때문에 실제로 가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오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서점이라는 곳, 책을 팔고 책을 사는 장소는 항상 설렘이 있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그게 해외에서 우연히 마주친, 알지못할 언어로 가득찬 서점이라해도 그렇다.


2.

   이 소설 속의 배경은 표제의 그것처럼 '비블리아 고서당'이다. 고서당, 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이 붙었는데 결국 우리말로 제대로 옮기자면 헌책방같은 느낌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서는 아주 오래된 가치 있는 책부터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헌책까지를 통칭하는 이름인 것 같다. 배경이 고서당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겠지만 책과 관련된 이야기로, 어디까지나 주제가 되는 책 하나를 놓고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이런 배경탓에 책에대한 흥미가 근질근질해지는데, 그러다보면 저자의 폭넓은 배경지식과 독서편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만든다. 그런 책이다. 어쩌면 책덕후로서 자신의 소양을 가장 잘, 이상적으로 표현해낸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헌책(고서)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일단은 기왕이면 새 책으로 보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고,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책 그 자체에 이야기가 있을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독서를 나름 오래 하기는 했지만 그런 기간에 비하면 장서수가 많지도 않다. 책에 대한 소유욕이 다른 사람들만큼 크지는 않은 것 같다는게 요즘의 생각이다. 그렇다, 아직은 책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만 읽고 있고 딱 그 정도로만 읽으면서 살고 있는 셈이다.


   순천에서 한 번, 서울에서 한 번. 헌책방같은 헌책방을 가본 적이 있다. 알라딘 중고서점이나 북오프같이 시스템이 잘 갖춰진 헌책방을 세보라면 그것보다 훨씬 많이 갔겠지만, 그런게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 책에 나오는 '비블리아 고서당'같은 헌책방은 딱 두 번이다. 한 번은 순천에서, '형설서점'을 갔을 때였다. 거기는 헌책방이라는 이미지보다 중고로 문제집을 사러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문제는 내가 고등학교다닐 때(지금도 그렇지만) 읽어온 책이 많지 않았고 또 워낙에 도서관이 잘 되어있다보니 굳이 헌책방에서 책을 사볼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내가 재수하던 학원 근처의 중고서점을 한 번 가봤다. 우리 학원은 문과반과 이과반의 건물을 완전히 독립시켜서 지하철역 하나 거리에 두고 있었는데, 그 이과반 건물 근처에 있는 헌책방이었다. 벵기 아저씨의 소개로 같이 가서 어색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나는 한 두권을 사왔다. 거기가 거의 유일한 내 제대로 된 헌책방 체험이었다. 거기서 샀던 책에는 안에 끄적인 내용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조금 보니까 이름모를 사람과 함께 책을 읽는듯한 깨알같은 재미가 있었다. 내가 평상시에 책을 읽으면서 책에 절대 손을 안대는 쪽이라서 더더욱 그랬다.


   여전히 도서관 책은 잘 다뤄줘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일단 내 소유의 책이라도 필기구를 가져다대거나 하는 일이 없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책이 아닌 공용의 책은 깔끔하게 읽고 깔끔하게 반납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헌책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지간한 정도라면 다음에 또 헌책바엥서 책을 고른다면 아마 또 안에 밑줄과 글씨가 들어간 책을 고르지 않을까.


3.

   책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고전부 시리즈>(빙과)와 굉장히 비슷한 류의 소설이다. 대개의 라이트노블 쪽의 추리소설이 그렇다시피, 충분하지 않은 논리, 단서, 조각으로 전체의 답안을 맞추어낸다. 그러니까 엄밀히말하면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굳이 말하자면 추리소설의 틀을 빌린, 흔치않은 보이밋걸 종류의 소설이랄까.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드라마를 보기 시작해서 다 볼 즈음에 드라마도 끝냈는데, 드라마의 경우에는 훨씬 그런 느낌이 덜하다. 책 특유의 분위기를 중탕시키고, 일본드라마 특유의 색깔을 입혀놓은 것 같은 드라마다. 괴작이니 망작이니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물론 굳이 말할 것도 없이 드라마쪽도 추리드라마라는 느낌이 드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이런 소설은 둘 중 하나다. 어중간한 포지셔닝을 한 어떤 작품이나 제품처럼, 완전 흥하거나 완전 망하거나. 이 작품의 경우에는 전자다. 책은 추리소설 특유의 스릴, 밀고 당기는 듯한 느낌과, 일상물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길을 적절하게 잘 챙겼다. 아직 1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지만, 결구에는 주인공 둘이 사귄다는 걸 보니 보이밋걸, 이라는 내용도 잘 따라가고 있는 모양이다. 대충 감이 오려나 모르겠지만, 딱 그런 느낌의 소설이다.


4.

   책의 판본이 조금 어중간하다. 책 자체가 라이트노벨과 일반적인 판본의 가운데 정도로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우리나라에 번역된 녀석도 그렇다. 전반적인 표지나 디자인은 라이트노블의 그것을 따랐지만 책 자체는 다른 여타 소설들과 동등하다. 라이트노블과 일반문학의 경계선상에 있다고 보면 무방할듯하다. 내용도 그런 것이, 물론 흥미를 위한 대중문학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지만 다른 라이트노블들과는 다르게 일단 일러스트가 없다. 그리고 내용 자체도 라이트노블의 그것은 아니다. 명백하게 라이트노블의 틀을 탈출한 책이다.


5.

   1권에서 흥미로웠던 책은 단연 코야마 키요시의 <이삭 줍기>다. 다만 역시나 우리나라에서는 읽어볼 방법이 없을듯하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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