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무네키, 백년법



소설 속의 세상은 근미래의 언젠가, 불로화바이러스 수술(HAVI)이 보편화되어 그 누구도 늙지 않는 세계. 이 세계에서 백년법이라고 하면 '생존제한법(Life limit law)'으로, HAVI를 받아 늙지 않는 이들의 법을 인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사회의 구조를 유지해나가기 위한 법률이다. 소설 속에서 한국이나 중국, 유럽등의 경우 차이는 있지만 대개 20~50년 안팎으로 적용받는 것으로 보이며, 미국과 일본만이 100년을 보장하고 있는 설정이다. 


결국 백년법이라고 하는 법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손댄 것을(HAVI) 사회적인 제도를 통해서 자연의 형태로 돌려보내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그러나 10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법률의 존재까지도 까맣게 잊고 살아온 일본인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백년법의 때는 찾아오고, 거기로부터 빚어지는 드라마..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권까지의 이야기고, 실상은 이거 그냥 근미래의 정치드라마일 뿐. HAVI와 백년법은 그 내용을 지탱해주는 설정일 뿐, 핵심소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결국 근미래 SF소설이라는 장르는 이 소설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못하고, 사실상 근미래 SF 정치소설이라는 장르 이름을 붙여야 할 것이다. 그런 내용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두꺼운 분량 두 권의 이 소설은 썩 유쾌하지 못할 것이다.


소설 속의 일본은 패전의 아픔을 깨끗이 씻어내지 못한 평행세계의 '일본공화국'이다. 일본(황실을 포함한)이 완전히 붕괴된 이후 들어선 공화국 정부. 그런 공화국 정부의 무능(일종의 관료제의 한계)에 지친 주인공, 유사는 우시지마 료이치와 결탁하여 사실상의 독재정권을 만들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무능한 정부, 무능한 관료 시스템의 관료였던 유사 아키히토는 백년법의 첫 도입이 실패하자 국민의 실패를 깨닫고(민주주의의 실패!) 료이치와 결탁,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법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시스템으로서 "국민투표"를 시행한 것도 현실과 쏙 빼닮았다.


과연 국민은 실패하는가? 국민의 실패는 생각보다 쉽게 일어난다. 흔히 말하는 '우민'을 상대로 한 정치에서 그 모습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치선전에서 자유롭게, 현실적으로 정책과 정세를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은 국민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할 수 없다. 그리고 절대다수의 의견이 곧 전체의 의견이 되는 민주주의 체계는 이런 국민의 실패를 가장 쉽게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취약한 정치체제라고 지적할 여지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서 독재정치는 과연 합당한가? 민주주의의 이념과 법치주의의 원리를 사실상 무시하는 독재라는 사실은 차치해두더라도, 민주주의보다 독재가 우월한 정치체계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사 아키히토와 같이, 자신의 정치적 야욕만을 위해서가 아닌 '국가를 위해' 독재정치를 선택하는 이들의 근본 의식 속에는 엘리트 의식, 선도 의식이 있으리라고 본다. 과연 그러한 생각은 올바른가? 국민 다수와 유능한 소수, 과연 누가 더 실패하기 쉬운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국민 다수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소설 속에서 저자는 결코 중립을 표하지 않는다. 실패한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규탄하면서 우시지마-유사 독재정권을 '국가를 위한' 결단으로 표현해낸다. 이 독재정권은 법치주의의 안에서 태어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무섭다. 이러한 우시지마-유사 정권은 '백년법'과 특례법을 통해서 절대권력화된다. 현대의 권력 또한 사실상 상대방의 생명권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수면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정적의 목숨,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정치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는 강력하게 규탄되며 이 과정에서 사회적, 국제적인 '암묵의 룰'에 의해서 제한된다.


그러나 백년법에 근거한 권력은 그렇지 않다. 특례법은 단순히 정치에 피룡한 인력의 손실을 막겠다는 의도인 것처럼 보이나 대부분의 정치인들에게 그 특례권을 행사함으로써 우시지마 료이치는 막대한 권력을 획득하였으며, 이후에는 이 권력을 이용 대놓고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독재정권은 피튀기는 정권은 아닐지언정 깨끗하지도, 건전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정권이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이러한 정권의 말미에, 그 독재정권을 내놓은 유사 아키히토와 경찰청의 쿠데타의 충돌에서 센추리온의 지령 0호로써 지휘권을 유사 아키히토에게 넘겨줌으로써 작가는 우시지마를 그저 무능하고 권력에 찌든 독재자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유사에게 휘둘렸던 그의 고충,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를 믿고 신뢰하는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독재자를 옹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며, 결국 그 뒤를 이어 유사가 대통령의 권한까지 가져가고, 아예 '독재관'이라는 제도를 도입시킴으로써 독재정치를 강권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소름끼치는 점은 유사 아키히토가 지극히 파시즘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유사 아키히토의 이념은 국가를 위해서라면 한 목숨을 바쳐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며, 유사 아키히토의 스승격인 사사하라의 경우 아예 대놓고 '가미가제 특공대' 출신으로, 결국 국가를 위해 자결을 선택하는 극단적인 전체주의자로 그려진다. 소설 속에서 사사하라는 국가를 위해 결단을 내린 인물로 굉장히 긍정적으로 그려지나, 외국인의 눈에 그려지는 사사하라는 결국 패전 후 대부분 올바른 길로 되돌아선 일본인들 가운데서 아직도 전쟁과 전체주의, 군국주의의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군인 출신 관료에 지나지 않았다.


소설은 상권과 하권이 적절하게 나누어져있다 하겠다. 적어도 상권까지는 백년법 그 자체가 문제시되며, 백년법의 적용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다. 소설의 말미에 결국 HAVI의 문제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에 따라 HALLO의 통제에 따라 아마도 모든 나라에서 HAVI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과연 사회는 올바른 모습으로 찾아갈 수 있겠는가하면 그렇지 않으리라고 본다. 


사실 SF소설로서의 재미가 얼마나 있는가에 관해서는 조금 미묘하다고 본다. 백년법, HAVI라는 소재는 굉장히 참신하지만 그 과학적 근거가 그다지 납득될만큼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그보다 작가가 설명하고자 하는 의지가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그립이라거나 ID카드라거나 하는 다른 요소들의 경우 그렇게 새롭지도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소설은 정치소설에 가깝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대체적으로 하권에서 그려진다.


이 소설에서 저자는 파시즘, 전체주의, 유능한 사람에 의한 독재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이를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 우시지마의 몰락과 경찰청의 쿠데타는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가 얼마나 불안정할 것이냐를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과연 독재관 제도는 올바르게 굴러갈 것인가? 사실 이러한 정치 체제는 정말로 유능한 사람이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진행될 때에는 큰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문제는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을 계속 독재자의 위치에 올려줄만큼의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지도 않고 구축될 수도 없다는 데에 있다. 현실로 나와보면 일본인 저자가 쓴  책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책 그 자체의 발상, 우시지마와 유사 사이의 권력다툼이라거나 그려지는 정쟁, 쿠데타 등의 일련의 과정이 소름끼치기 그지 없다. 이 한 권의 책과 한 사람의 저자를 통해서 일본이 과연 그런 군국주의를 꿈꾸는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이겠지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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