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자, <메멘토모리>



보르자..라는 작가에 대해서 솔직히 터놓고 말하자면, 잘 모릅니다. 사실 메멘토모리를 사게 된걸 계기로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와 <노벨 배틀러>를 모조리 사재기했지만 사실 근거도 없이 인터넷 평가가 나쁘지 않다... 싶어서 사재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가 마이너한 취향이 아닌걸 알기 때문에 마이너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 나머지 책들이 어떻게 잘 읽힐지는 몰라서 또 내심 걱정. 보르자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 7권이 집에 차곡 차곡 다 쌓였습니다. 6권은 비닐 랩핑도 안뜯은게 함정이라면 함정...



◇초반부

메멘토모리 초반부에서 솔직한 제 느낌을 말하자면 "뭐지 이 소설?"이었습니다. 뭐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가 아니라, 정말로 무슨 소설인지 잘 감이 안왔어요. 도대체 소설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건지. 솔직히 초반부 스토리는 조금 줄였어도 괜찮지 않았나합니다. 대놓고 반복되는 부분도 꽤 많았고, 물론 앞부분에 김영재와 그 패거리(;)의 과거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한 덕분에 이야기의 뒷부분이 조금 더 납득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책이 600쪽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이 되어버린 점을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그리고 초반부부터 계속 느꼈던 점이 있는데, 이게 작가의 시점인지 아니면 김영재라는 캐릭터의 특성일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삐딱하고 부정적인 시선이 눈에 띄었습니다. 솔직한 말로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 소설에 드러나는 김영재의 관점에 따르면 세상은 모조리 다 위선이야, 가식이야! 하고 외치는 정도라서.. 작가님이 노리고 쓰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치기어린 시선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살아온 내용들이 완전히 진실하냐고 하면 그건 아니겠지만.


하긴, 김영재라는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삐딱선을 타는 것도 납득이 갑니다. 소설의 서술대로면 이미 어릴 때부터 제대로 삐딱선을 탔었고, 부모님은 딱 봐도 이상한 사람들이었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어른들 사이에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난 이래서 삐딱선을 탔어, 라는, 실제로는 그렇든 그렇지 않든간에 여러 대중매체에서 다뤄지는 삐딱한 아이의 초상과도 같았습니다.


(근데 검색해보니 그게 보르자 테이스트라는 평가가 있...네요. 그것도 메멘토 모리에서는 많이 절제한거라고. 써프라이즈!)


◆중반부

호러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아마도 중반부까지의 메멘토 모리를 설명하는 말이 아닐지. 이야기는 결과적으로는 호러가 아닌 미스터리였지만 그건 결론부에 가서야 알 수 있는거고, 중간까지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꽤 많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본격 호러라는 느낌은 <어나더>가 강했구요(결과적으로 어나더는 진짜로 호러물이었고, 메멘토모리는 미스터리였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학교라는 배경과 존재 자체의 소멸은 어나더의 그것과 굉장히 닮았죠. 망자라는 표현까지도요.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 자체가 이렇게 저렇게 닳아서 그런건지(...) 어나더를 읽을 때는 꽤 무서워하면서 읽었던 것 같은데 호러에 약한 저로서도 메멘토모리를 읽으면서 딱히 무섭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무섭다는 느낌의 소설은 아니에요. 그래서 더더욱 호러라는 표현을 쓰기 좀 그렇네요. 결과적으로 호러라고 부를만한 요소는 트릭같지 않은 트릭이 되었고... 


물론 결론을 모르고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게 호러야? 아니면 미스터리야? 하면서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결론이 딱 드러날 때까지 이게 미스터리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하는 느낌을 거의 끝까지 안고 갈 수도 있구요. 그런 의미에서 몰입감이라던지 재미는 훌륭합니다.


□후반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중반부까지는 김영재인데 중후반부에서부터 마지막까지는 사실상 김미영 팀장이라고 하는 조력자...가 아닌가 합니다. 왜, 대개 그런 캐릭터 하나 둘씩 있지 않습니까. 주연보다 훨씬 강하고 결과적으로 주연을 구해주는 역할을 하는 조연, 또는 조력자. 이 소설에서 뜬금없이 등장한 김미영 팀장이 바로 그런 캐릭터입니다. 사실 그런 것에 비해서는 등장에 비해 본격적으로 강조되기 시작하는게 중반부 이후라서 비중이 조금 약해보이긴 하지만... 그리고 동시에 이 소설이 왜 호러가 아니고 미스터리가 됐는지..를 대신 말해주는 캐릭터가 아닐까 합니다(...) 미신을 굉장히 싫어한다느니... 이런 내용은 어쩌면 작가의 관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결국 마지막에는 다른 소설처럼 주인공이 다 때려잡고 웃는 그런 이야기가 되지는 않았고... 경찰에게로 바톤이 넘어갔습니다. "경찰이 모조리 다 잡았다고 하네요. 참 잘됐군요!"하는 결말이랄까. 결과적으로 범인들은 잡혀가고(위에서 중요한 내용 다 스포해놓고 이제와서 이러는건 뭐 하지만.. 주인공 이름은 덮어두는 걸로..), 나머지는 모두 잘 먹고 잘 살 것 같은 이야기입니다. 뭐 마지막에 갑자기 우리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느니, 내 인생의 작가는 나라느니 하는 이야기로 성장소설같은 느낌을 풍기면서 끝나긴 합니다만(...) 이 소설의 중심이 성장이야기는 아닙니다. 뭐 결국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남자 김영재'는 파탄 직전이었던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 한 발 더 나아가고, '여자 김영재'는 병원과 허유경에게 갇혀있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자신의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방향으로 성장했다..라는걸 보여주는 장면이겠죠.


■마치면서

결과적으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굉장히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아쉬웠던 거라면 필요이상으로 분량이 조금 길어진 점(요즘 책을 읽어버릇하질 않았더니... 600여쪽 되는 책이 조금 부담이 되긴 했습니다 ㅠㅠ).. 정도고요. 마지막 결론에서 안서현이 갑자기 나타나고, 중반부에서 김미영 팀장이 뜬금없이 최전선으로 나서는 모습도 뭔가 좀 미묘하긴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보니 김미영 팀장이 굉장히 뜬금없었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뭐 저로서는 그러려니하고 읽었습니다. 사실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이 없었던건 아닌데 그렇다고 와 이건 아니지..했던 것도 아니거든요.


어쨌든 호러소설을 좋아해서 찾는다면 지뢰가 될 수도 있겠군요. 일단 호러가 아니니(...) 하지만 그냥 읽을 책을 찾는다면 권할 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아, 근데 소설에 비속어가 난무하는 점이 조금 아쉽더군요. 소설 속에 비속어가 나오면 안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닌데 놈년 표현이 너무 자주 나오니까 당혹스러웠습니다. 사실 김미영 팀장이 이놈아 이년아 하는건 원래 캐릭터가 그런 쪽이었으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는데 마지막에 안서현의 입에서 "난 참 나쁜 년인 것 같아."라는 표현이 나온건 굉장히 어색했어요. 뭐 사실감이고 그런거 다 좋았는데 조금 선을 넘었다는 느낌? 좀 더 다듬었더라면 훨씬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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